이 책을 쓰기 전에도 관상 기도가 기독교 신앙 안으로 들어왔음과,
그것이 뉴에이지 운동의 한 요소임을 입증할 수 있었다.
사실 뉴에이지 수련자들은 관상 기도를 그들 고유의 수련법 중 하나로 여긴다.
뉴에이지 심리 치료사인 재클린 스몰은 관상 기도를 자신이 속해 있는 영성으로
향하는 하나의 관문이라고 말했다. 스몰의 말을 들어보자.
일종의 기독교적인 명상, 그리고 수련자들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내면의 상징에 초점을 맞추도록 훈련을 받는다
수련자들이 이런 명상법에 깊이 빠지면, 자기 최면과 비슷한 깊은 황홀한 상태에 들어간다.
"뉴에이지 저널" 의 편잡자들이 '위로 그리고 아래로' 라는 책을 엮었다.
이 책은 편집자의 세계관에 따르면 "영적인 갱신으로 가는 길"에 대한 안내서였다.
샤머니즘, 여신숭배 그리고 통전적인 건강에 대한 장들에 이어서 관상 기도에 대한 장이 나온다.
이 장에서 편집자들은 과감하게 선언한다.
초월명상을 수련한 사람들은 기독교가 오랜 세월에 걸쳐 내려온 자체의 만트라 명상이 있는 것을 알면
놀랄지도 모른다
만트라에 의존하는 전통은 기독교 안의 신비 경전에서 오랜 역사를 두고 있다.
뉴에이지 저자인 타브 스파크스는 자신의 저서 "활짝 열린 문"의 한 장에서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 준다.
다양한 신비 사상 그리고 동방의 수련법들에서,
스파크스가 영적인 기독교라고 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
스파크스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기독교의 어떤 형태가 영적인 능력과 함께 살아 있는 것들이 있음은 좋은 소식이다."
그리고 스파크스는 예로서 몇 명의 관상 기도 옹호자들을 댄다.
아마도 모든 예들 중에서 가장 설들력 있는 사람은 관상 기도 운동 그 자체에서도
선도적인 인물인 틸덴 에드워즈일 것이다.
틸덴 에드워즈는 워싱턴 D.C.에 자리 잡은 명망 높은 샬렘 연구소의 설립자다.
이 연구소는 영적 지도자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에서 지도적 위치로 변신했다.
틸덴 에드워즈는 자신의 책 "영적인 친구"에서,
관상 기도를 수행하는 사람들과 "영적인 발전"과 여타 "비범한 체험"을 맛보기 시작한 사람들은,
"특정 단계"에서 "역동성"을 깨닫기 위해서는 "정신 합치"라는 제목의 책 내용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조언은 기독교인들에게 한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틸덴 에드워즈가 추천한 책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비 운동가 로베르토 아사기올리의 저서다.
이 "영적 발전"이라는 특정 단계에 이르는 역할은 비의학을 아는 사람들이 추구할 만한 것일 수도 있지만,
틸덴 에드워즈는 기독교인들을 이 기도의 유형으로 끌어들이길 바란다.
"이 신비주의 흐름(관상기도)은 서구를 극동의 영성에 연결하는 교량이다."
의도는 좋지만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막 교부들과 그 영적 후배들의 시도에 대한 답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 찰스 스펄전의 깊이 있는 관찰을 꺼내 놓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지혜는 십자가 교리를 손질해서 타락한 본성의 변질된 기호에 좀 더 부드럽게 다가가고
잘 맞는 체계가 되게 하길 좋아한다.
그러나 육적인 지혜는 복음을 증진하기는 커녕 복음을 오염시킨다.
아니 다른 복음이 되게 하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진리가 아닌 것이 되게 한다.
여호와의 말씀을 어떤 형태로든 변경하고 수정하는 것은 오염이고 수욕이다.
레이 윤겐, 신비주의와 손잡은 기독교, 부흥과개혁사, pp68-70
관상기도와 그 문제점 (0) | 2011.05.29 |
---|---|
혼합 영성 (0) | 2011.01.04 |
동양에서 빌려 온 사막 교부들 (0) | 2011.01.02 |
관상적인 영성의 범위 (0) | 2011.01.02 |
침묵은 신의 언어인가?? (0) | 2011.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