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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합 영성

관상기도

by 김경호 진실 2011. 1. 4.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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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 기도의 최종적인 결과는 혼합적인 영성이다.

신비 기도에 대한 내 비판의 초점은 혼합 영성을 배경으로 이해해야 한다.

 

혼합 영성의 배후에 있는 전제는 신성이 온 세상 안에 들어 있고,

신의 임재는 모든 종교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온 세상은 서로 연결돼 있다.

그리고 신비 사상(명상)을 통해 이런 신성의 상태를 느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전제는 한 사람을 성경의 건전한 가르침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로 연결하는 일종의 자기 최면적인 황홀경 상태에 근거를 두고 있을 뿐더러,

그 경험에 의해 유지된다.

 

뉴에이지 전도사였던 브라이언 플린은 "역풍 맞으며 달리기"라는 책에서 혼합 영성을

신비주의라는 공통의 실마리를 통한 세계 종교의 연합으로 설명하고 있다.

플린은 고 웨인 티즈데일이 혼합 영성에 대해 한 말을 인용하고 있다.

"혼합 영성이란 세계 종고 가운데 존재하는 영적인 공통분모다."

티즈데일은 보편적인 교회에 대해 이렇게 진술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교회 또한 인류의 화해에 교량 역할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성령은 힌두교도, 불교도, 무슬림, 시크교도, 자이니교도, 도교도, 유고도 그리고

토착 신앙인 모두에게 문을 여는 시대의 표상을 통해 교회에 영감을 붓고 있다.

모체로서 교회는 다른 전통의 신봉자들을 더 이상 교회 밖의 존재로 보지 않는다.

교회는 이 전통에 대한 연구를 촉진하고, 공통되는 근거와 나란히 통찰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많은 선의의 사람들이 내재신론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너무나 좋게 들리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좀 덜 완고한 분으로 보이게 된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

모두를 신과 연결한다.

이 메시지에는 큰 매력이 있다.

그렇지만 성경은 인간에게 보편 구원이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예수님은 이와 반대로 말씀하셨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13-14).

 

그리스도가 전하신 메시지는 내재신론이 말하는 보편 구원론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다.

 

 

전 미국에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4퍼센트가 신이

"어디 누군에겐가"가 아니라 "어디에나 그리고 모든 것 안에"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 말은 이제는 내재신론이 좀 더 인기 있는 신관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기독교인들의 다수는 하나님의 진정한 본질에 대해 어리둥절해 할 것이다.

 

어떻게 하다가 이런 신비주의 혁명이 득세하게 됐는가?

어떻게 이런 시각이 그토록 퍼져 나갔는가?

답은 이렇다.

지난 30년 혹은 40년 전에 몇몇 저자들이 기독교계의 수많은 독자와 구도자들에게

심금을 울리는 작품을 내놓았다.

이 저자들은 이제 많은 사람이 기독교인의 생활을 "더 깊이 있게" 만들어 주는

유일한 방법으로까지 보고 있는 관조적인 견해를 드러냈고 동시에 퍼트렸다.

신비주의 운동은 사람들이 관상적인 수련에 빠져들도록 부추겼다.

"빛"과 "내면의 충고자"를 경험하도록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그들의 메시지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11:14, 15)

 

 

레이 윤겐, 신비주의와 손잡은 기독교, 부흥과개혁사, pp7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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