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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워렌과 뉴에이지

릭 워렌

by 김경호 진실 2011. 10. 2.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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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자들은 릭 워렌과 뉴에이지 운동과의 관련성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워렌이 뉴에이지 운동의 저술가들 및 그 사상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는 그들의 말을 호의적으로 인용하며 그들의 개념과 상징을 사용한다.

인기 있고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적인 목회자가 그런 행동을 할 때 그 위험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릭 워렌은 사람을 낚는 어부처럼 자신의 넓은 그물을 던지면서 효과가 있을 만한 것이면 무엇이나

닥치는 대로 사용한다.

미국의 구도자들은 복음에 뉴에이지 사상이 조금 섞여 있더라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전형적인 미국인은 뉴에이지의 믿음과 관행이 소량만 포함되어 지나치게 부각되지만 않으면

뉴에이지에 관대하다.

소량의 뉴에이지, 바로 그것이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제공하는 것이다.

그것은 영성에 대한 메리 포핀스적인 접근 방법이다.

뉴에이지를 한 스푼만 섞으면 복음을 부드럽게 삼킬 수 있다.

대중적 영성을 약간만 섞으면 기독교의 맛이 훨씬 더 좋아진다.

그런데 문제는, 독은 소량이라도 치명적이라는 점이다.

 

예수님은 여러 차례 이런 점을 지적하셨다.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마16:6)

나쁜 교리는 소량이라도 영적으로 치명적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5:6-7)

뉴에이지 사상의 적은 누룩이 "목적이 이끄는 삶" 전체에 퍼져 있다.

뉴에이지 사상가들의 말은 조금만 인용해도 메시지 전체의 성격이 바뀌어 버린다.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뉴에이지적인 요소를 빼내는 일은 빵에서 효모를 빼내는 일보다 결코

더 쉬운 일이 아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 폭발적인 성공을 거둔 요인은 바로 이 책 속에 있는 기도교적 영성과

대중적 영성으 혼합적 요소다.

워렌의 책에서 영적 실용주의를 떼어 내면 그것은 곧 책의 효과적 장치를 제거하는 것이다.

영성에 대한 뷔페식 접근 방식이야말로 "목적이 이끄는 삶"을 구도자들에게 그토록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요인이다.

교리를 약화시키고 실제적 적용을 강화하는 것이 곧 사람들을 유인하는 요소다.

기독교를 심리학과 뒤섞음으로써 구도자의 심리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주안점을 두는 것은

새들백의 복음이 그토록 큰 성공을 거두게 된 요인이다.

"목적이 이끄는 삶"의 종교적 절충주의가 문제인 것이다.

 

릭 워렌은 새로운 시대를 우해 새로운 복음을 만들어 냈다.

그 복음은 복음주의적인 기독교의 언어를 사용한다.

그 복음은 진실한 그리스도인 신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언어로 전도와 선교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교회 성장에 있어서 그가 거둔 성공은 교인 수 감소와 예산 부족에 시달리다 지친 목회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목적이 이끄는 영성에는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다.

문제는 찬양 예배의 감흥, 음악 형식, 의상 또는 기법이 아니다.

복음이 제시되는 방식도 아니다.

문제는 제시되는 복음의 본질이다.

빵 덩이리에 누룩이 있다.

 

 

 

마셜 데이비스, 목적이 이끄는 삶이 전부가 아니다, 부흥과개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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