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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교회란 무엇인가, 6편 : 하나님의 율법 (스테판 E. 스몰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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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진실 2011. 12. 28.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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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교회란 무엇인가,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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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율법

    

개혁교회는 항상 신자와 불신자를 위한 율법의 가치를 대단히 힘주어 말해왔습니다. 율법이 무엇입니까? 율법은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그 분께서 계시하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들은 십계명에 담겨져 있는데, 이것은 대개 사회법과 의식법과 구분하기 위해서 도덕법이라고 불립니다. 성경은 이 계명들을 '열 가지 말씀' (신명기 4장 13절에서 '계명'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사실 '말씀'이라는 뜻입니다)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이 계명들을 단지 열 가지 규칙이 적힌 목록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계명들을 기초적인 원리들로 대해야한다는 사실을 제시합니다. 율법을 가르칠 때, 다른 이들과 더불어서 개혁 그리스도인들은 이 '열 가지 말씀'의 본질이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여호와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여라"(신 6:5)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여라"(레 19:18)에 있다는 것을 말해왔습니다. 이 구약의 명령들은 율법의 본질로서 예수님에 의해 인용되었으며(마 22:34-40), 율법의 완성으로서 바울 사도님에 의해 인용되었습니다(롬 13:8-10). 그러므로 율법과 사랑은 서로 대립되는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윱법의 첫 번째 쓰임새


첫 번째 쓰임새는 일반적으로 사회를 위한 것입니다. 도덕법은 인류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인지를 알려주는 하나님의 계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쓰임새에서의 율법은 한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변화시키지는 않지만, 인간 사회의 질서를 잡고 범법을 제한하는데에 있어서는 매우 유용합니다. 개혁 그리스도인들의 정치적인 개입과 사회적인 개입은 바로 이 율법의 첫 번째 쓰임새에 대한 공감과 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는데에 모든 사람들을 돕고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구약 성경은 이스라엘의 사회적인 삶에 대한 도덕법의 광범위한 적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율법을 연구함으로써 위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지만, 이 율법 뒤에 놓인 도덕적인 원리들을 제외한 문자 그대로의 사회법 그 자체는 오늘날의 사회에 적용되지 않습니다 (웨스트민스터 19장 4절).


역자 주 - "하나님께서는 정치적 집단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러가지 재판에 관한 율법들을 주셨다. 그러나 그 재판법은 그 백성의 나라와 함께 시효가 만료되었으며, 따라서 그것의 일반적인 원리는 적용될 수 있겠으나, 지금은 다른 아무에게도 구속력이 없다(출 21, 출 22:1-29, 창 49:10, 벧전 2:13-14, 마 5:17, 38-39, 고전 9:8-10)." (웨스트민스터 19장 4절)


율법의 두 번째 쓰임새


두 번째 쓰임새는 구세주에 대한 우리의 필요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구원은 어느정도 착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보상과 같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는 절대로 '어느정도' 착해질 수조차 없으며, 이러한 결론에 반드시 도달해야 합니다. 이러한 필요에 대해서 우리를 깨우는 과정에서, 주님은 도덕법을 사용하셔서 구원을 받을만큼 '착해지는게'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회개하고 그리스도님께 돌아서서 그 분께서 복음서에 계시하신 그 긍휼을 구하는 것 뿐입니다. (율법과 반대로 복음은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를 계시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구원을 가져오시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님에 대한 기쁜 소식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 사도님께서는 율법의 이 두 번째 쓰임새를 전개하십니다(롬 1-3). 그리고 나서 사도님께서는 그리스도님께서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또한 하고 싶어하지도 않는 것을 어떻게 우리를 위해서 하셨는지를 설명하십니다(롬 3-8). 그렇게 율법은 우리를 복음으로 이끌어줍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그분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육체가 없으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그것은 율법과 선지자들에 의하여 증언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하여 모든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니, 거기에는 차별이 없다 (롬 3:20-22).

복음을 믿고난 후, 율법은 계속해서 우리가 예수님 한 분 안에서만 소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복음에 대한 우리의 필요는 회심의 때를 넘어서까지 지속됩니다. 사실 신자가 되고난 후에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거룩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지를 더욱 더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 목사님께서는 날마다 우리 자신들에게 복음을 설교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롬 8:1).


복음으로 이끄는 율법의 원리를 적용하는 한 가지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성찬식을 준비하는 과정의 한 부분으로서 회중들에게 십계명을 낭독해오고 있습니다. 율법은 계속해서 우리를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며, 성찬을 받음으로써 우리를 위해 오시고 죽으신 그리스도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을 확증하는데로 이끌어줍니다.



율법의 세 번째 쓰임새


세 번째 쓰임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입니다. 성령님의 일하심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고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순종하고자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율법은 신자들에게 주님께서 그 분의 사람들에게 원하시는 새로운 삶의 방식의 뼈대를 보여줍니다. 많은 부분에 있어서 산상수훈(마 5-7)은 '더 큰 의'의 실제적인 성취인 예수님께서 율법을 재진술하신 것입니다. 율법에 순종하는 것은 이러한 의미를 전달하는데에 매우 귀중한 것이지만, 우리의 중심되는 열정은 반드시 예수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골 3:1-5, 히 12:1-5). 십계명이 하나님께서 그 분의 백성들을 이집트로부터 구속하신 후에 주어진 것과 같이, 산상수훈 또한 이미 예수님의 제자들이 된 자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예레미야서에서 주님께서는 "내가 내 율법을 그들 속에 두며 그것을 그 마음에 기록하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에 의해 세워진) 이 새 언약 아래서 율법은 돌판이 아닌 마음에 기록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율법이 더이상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세 번째 쓰임새는 즉, 눈을 가린 율법주의가 아닌 순종의 올바른 정신을 인식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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