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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로 침입하라 2 (조나단 에드워드)

조나단 에드워즈

by 김경호 진실 2012. 3. 6. 13:22

본문

하나님 나라로 침입하라 2 (조나단 에드워드)

Ⅱ. 하나님 나라로 침입하는 방식으로 각 사람이 추구해야 하는 이유들

1. 절대적인 필요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필요하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 나라를 정말 지독히도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가 아니고서는 우리는 전적으로, 영원히 멸망받습니다. 하나님 나라 밖에서는 결코 안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결코 안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른 곳에는 결코 피난처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만이 도피성입니다. 모든 경건치 않은 사람들을 추적하는 그 보수자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줄 피난처는 바로 그 하나님 나라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응은 이 나라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을 따라가 사로잡고 영원토록 파멸시킬 것입니다. 이 하나님 나라 밖에 있는 사람들은 용솟음치며 노도하는 진노의 불못에 삼킴을 당할 것입니다. 그들이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울면서 ‘주님, 주님, 문을 열어주십시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소용이 없습니다. 그들은 뒤로 던져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아무런 긍휼을 베푸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영원토록 하나님에게서 버림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보응이 그들을 사로잡을 것이고, 마귀가 그들을 붙잡을 것입니다. 모든 악이 그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거나 도와주는 자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들의 입장은 전적으로 절망일 것이요, 무한한 슬픔일 것입니다.

사생결단으로 싸워 이기면 기쁨이 더 크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하심으로 베풀어 주시는 모든 긍휼의 선물과 약속의 말씀을 끝내 그들에게서 거두어들일 것이고, 그들은 어떤 소망도 갖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안녕에 대해 어떤 관심도 갖지 않으실 것이고, 어떤 원수나 악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려는 생각을 전혀 갖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 자신이 그들에게 무서운 원수가 되실 것이며, 물론 그 진노를 집행하실 것이며, 말로 할 수 없이 무서운 방식으로 보응하실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처할 사람들은 참으로 가련하게 멸망받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파멸로 떨어져,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아래로 무한히 떨어져 내려갈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분노의 능력을 알겠습니까? 누가 그 가련한 버러지 같은 인생, 긍휼없는 그 하나님의 집행을 받고 있는 자의 고통을 알겠습니까?

2. 기회가 짧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기회가 짧고 마감시간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몇날이 지나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우리의 기회도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의 날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한계를 주셨으며 우리는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이 하나님 나라 밖에 있는 한 하나님의 진노가 사로잡힐 위험에 항상 처해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우리가 빨리 그 한계선에 도달하게 될지 알지 못합니다. 그 한계선 너머에는 아무 일도, 지혜도, 지식도, 계책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있는 힘을 다해야 할 일이 있다면 바로 그 일을 해야 합니다.

3. 쉬운 일이 아니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그와 같은 방식으로 추구해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 길에는 수많은 난관들이 있어 그것을 이긴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려고 시도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충분한 결심과 용기와 일관성을 같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포기했고 멸망했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그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 난제들이라는 것이 너무 많고 너무 큽니다. 그들은 계속 그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길로 나가지 않고 중도에 포기하였기에 결국 멸망당했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 7:1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니라”(눅 13:24).

4. 가능성이 있기에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그 하나님 나라를 얻을 ‘가능성’입니다. 비록 그 나라를 얻는 데 있어서 그처럼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전혀 불가능한 것을 아닙니다. 성경은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행 8:22)라고 하였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딤후 2:25)라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큰 죄인이고 그의 처지가 어떠하다 할지라도 그가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루실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것을 성취할 수 있으며, 그 구원을 위해 충분한 구원의 길을 예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충분성이 부족하거나 죄인이 구원받을 가능성이 없거나 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얻을 기회가 짧고 또 거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수반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확인하면 그 하나님 나라를 침노할 마음의 용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욘 3:8, 9).

5. 그 나라가 위대하기에

하나님 나라는 ‘그 나라의 탁월한 위대성 때문에’ 그렇게 추구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우리는 하찮은 가치밖에 없는 땅에 속한 것들을 얻기 위해 큰 열심을 부립니다. 아무리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속한 것보다 무한히 더 위대한 가치와 탁월성을 지닌 그 하나님의 나라를 큰 열심히 추구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에게 정말 합당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얻기 위해 그런 방식으로 추구하기를 하나님께서 바라시고 요구하시는 것이야 말로 얼마나 합당한 일입니까!

6. 기쁨이 더 크도록 준비시키기에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얻었을 때의 ‘기쁨이 더 크도록 준비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간절함과 철저한 열심을 방편으로 사용하셔서 당신이 누구인가를 알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보게 하시며 그들 자신이 무능하다는 것을 깨달아 자기 자신의 힘과 의에 대해 절망하게 만드시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그렇게 부단하고 열심있는 자세로 구하도록 영혼을 준비시켜 그 하나님의 나라를 보다 기쁘고 감사하게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또한 그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했을 때 그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더 크게 자랑하고 가치있게 여기도록 준비시키십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그 하나님의 나라를 그렇게 열심있게 구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은 그 자신의 영예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를 긍휼이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적 용

1. 필요성을 인식하고 마음을 기울이라

저는 이 교리를 이용하여 그리스도가 없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라는 ‘권면’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중 누군가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고 있습니까? 어떤 것이 구원을 얻는 길이고, 어떻게 하면 구원을 쉽게 얻을 수 있는지를 여러분이 알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거룩한 말씀이 지시하는 길에 대해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는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나라로 ‘침노하여’들어가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자들이 있습니다. 과거에 구원을 추구하였지만 이런 방식으로 구하지 않아서 결국 구원을 얻지 못해 지옥으로 가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해마다 그 구원을 구했으나 실패하였고 결국 멸망하였습니다.

잠긴 문이 아니기에 밀면 열린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에 사로잡혀 있으며, 무서운 저주의 비참을 지금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밤낮 쉬지 못하고 구원을 구할 더 이상의 기회를 얻지 못하며, 결코 끝나지 않는 고통과 비참을 겪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식으로 구원을 추구하지 말라고 권면하십시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가 여러분으로부터 침노를 당하게 하라고 권면해야 합니다.

저는 여기서 먼저 한두 가지 반론에 대해 답하고자 합니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의 나라로 침노하여 들어가는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반론]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일을 해낼 수 없다. 앞에서 말한 그 간절한 소원과 확고한 결심을 우리 스스로 할 수 없다. 내가 있는 힘을 다해서 결심하고 온 정성을 드려 추구한다 할지라도 결국 실패할 것이다. 지금 내 생각들은 그 일에서 떠나 있다.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을 지라도 나는 너무 우둔하고 집중력도 부족하다.”

[답 변]

물론 마음의 간절함이 즉시 여러분이 주장하는 대로 될 수 없다 할지라도 방금 위에서 말한 그 간절한 마음의 ‘필요성’을 생각한다면 그것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서 분발하게 하는 수단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이 없이는 이 일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방편을 통해서 사람들을 감동시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어떤 생각들을 하지 않고는 그 철저한 간절함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사람이 구원의 필요성을 절감한다면, 그 구원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너무나 많기에 구원에 이르는 길이 극히 어렵고 그 기회 또한 짧고 마감시간이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으며, 그 기회가 열려 있음을 인식한다면 이 문제에 전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결연한 자세를 가지기 위해 그 이상의 것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태만하게 그 문제를 뒤로 미루며 아직 마음에 확고한 결심이 서지 않았다면 그것은 이런 것을 충분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오직 외길이라면 힘들어도 가라

강한 소원과 결심이 여러분의 힘으로 되지 않는 일이라 해도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방편들을 사용하는 수고를 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 수고는 정말 큽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지키며 죄와 싸우는 일에 매우 열심일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서 수많은 부패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을 지라도, 그런 부패된 요소들을 주시하고 싸우기 위해 매우 큰 힘을 들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모든 규례들에 참여하고 공적인 예배나 사적인 종교의 의무를 감당해 나가는 것은 여러분에게 부여된 책임입니다. 자기가 가진 힘 이상으로 그런 것들을 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전력을 다해서도 그런 것들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순된 일입니다. 둔하고 무감각한 마음과 태만이 그들의 자원하는 심령을 방해할 수는 있어도 그들의 수고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애를 쓰는 모습이 드러나는 것은 바로 그 점에서입니다. 곧 여러분의 둔함을 깨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무디고 게으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수고를 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이 수고를 하지 못하게 하기는커녕 수고해야 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사람이 마땅한 도리를 감당하면서 싸워야 될 어려운 요점들 중에 하나입니다. 또한 투쟁하고 애를 쓸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구원을 추구하는데 아무 어려움이 없다면 힘써 싸워야 할 기회가 전혀 없게 될 것이고, 싸울 대상을 전혀 갖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모든 의무에 참여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모든 의무를 늘 생각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선한 목적을 가지는 경우라 할지라도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어렵다고 해서 애를 쓸 수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면 애를 쓸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일에는 노력하고 투쟁해야 할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간절한 마음과 부지런히 노력을 경주하는 것은 서로 보완시켜주며 서로를 촉진시켜주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을 간절히 기울이는 사람은 그것에 대해 수고를 할 것입니다. 모든 마땅한 일에 부지런하고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은 아마 머지않아서 자기 심령의 열심과 자기 마음의 분별력이 크게 증가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반 론]

어떤 사람들은 이런 반론을 펼지도 모릅니다. 간절하고 열심있는 마음으로 큰 수고를 한다면, 자기들이 하는 일에 의지하는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의무를 해놓고 그것을 의의 공로로 삼을까 두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답 변]

보편적으로 구원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게으르고 둔한 사람처럼 자기들이 하는 일을 지나치게 의뢰하지 않습니다. 물론 철저하게 겸손하지 않으면서도 구원을 추구하는 것은 다 자신들의 의를 의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자기들의 의를 더욱 온전하게 의뢰합니다. 물론 자기들의 의를 ‘의뢰’한다면 언제까지나 그 의를 믿고 ‘잠잠하게’ 있지 않습니다.

자기 확신으로 크게 떠벌리는 사람들 (그러므로 그 자기 확신에서 온전히 벗어날 가장 많은 가능성이 있는 자들임)은 무책임하게도 구원의 길을 계속 진행해 나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은 가장 간절하고 철저한 열심을 가지고 그 일에 매진해야 합니다. 부분적으로 그에 대한 이유를 말씀드리면 그런 길에서는 양심이 더 예민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경험 방식으로 열쇠를 만들어서는 안돼

각성받은 양심은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의무를 행했다고 안심하고 있지를 못합니다. 우둔한 감각으로 구원을 추구하는 사람의 양심은 자기 자신들이 한 일이나 성취한 것에 크게 만족해하며 안주할 것입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각성받은 양심은 그런 것들로는 평안을 얻지 못하고 잠잠하게 있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나태하고 게으른 방식으로 구원을 추구하는 사람들보다 자신들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들의 마음을 더 잘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체험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보통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서 발견한 것이나 체험을 이용하여 자신을 의뢰하는 모든 믿음을 끊게 만드십니다. 그러나 구원을 가장 간절한 방식으로 추구하는 것만큼 자신들에 대한 지식을 빨리 가지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이런 간절한 방식으로 원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자기들의 죄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되고, 자신들을 더 엄격하게 지켜보며 그 마음에 대해서 더 힘쓰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힘을 발휘하여 시도해 보지 않은 사람보다도 자신의 연약을 더 많이 체험합니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의로 돌아가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런 사람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안식을 찾지 못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이 일에서 저 일로 방황하며, 자기의 불안한 양심을 안돈시킬 곳을 찾아다닙니다. 그는 이 피난처에서 저 피난처로 황급히 옮겨가며,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나아가며, 안식을 찾아 헤매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조만간 그는 어떤 피조물 속에서든지 안식을 발견할 수 없으며 믿을 것이 없음을 인정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가질지 모르는 그 생각, 곧 많은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것을 더 의뢰하게 될 것이라는 관념은 아주 그릇된 것입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입니다. 많은 것을 추구하면 할수록 자기들의 행할 일을 덜 의지하게 될 것이고, 조만간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이 허망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종교적인 의무든지 공의와 사랑이라든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의무를 잘 감당하면 필경 자기들의 의를 의뢰하는 쪽으로 나가게 되고 말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런 의무를 게을리하는 사람들은 정말 그 유익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간절하게 구원을 추구할 때 자기들이 한 수고를 의뢰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공통됩니다. 그 점은 아주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보통보다 더 느슨한 방식으로 나가는 사람들은, 열심을 다해 하나님의 나라로 침입하여 들어가고 있는 사람들보다도, 자기들의 우둔한 봉사들을 완전한 것으로 더욱 의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종교에 나태한 것과, 자기 자신들의 의를 의뢰하는 것과는 아주 깊은 연관이 있어서 상호간에 그 도를 더해줍니다. 자기들이 행한 것과 자기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의뢰하는 것이야말로, 그들로 하여금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주저않게 만들며, 자기들을 일으켜 앞으로 나아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반면에. 그들의 나태함은 무감각을 부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에 대해 무지한 나머지 가장 비참한 처지에 있으면서도 어리석게도 충분한 것으로 만족하며 안주합니다. 그런 방식에 길들여진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깨우치시는데 더욱 철저한 방법을 쓰실 것입니다. 그들을 깨우치사 간절한 마음을 갖게 하려면 그들의 옛 기초를 깡그리 흔들어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옛 처소에서 빠져 나오도록 합니다. 그럴 때 그들은 이전에 자기들을 안전하게 지켜준다고 생각하던 것들에 대해 이제는 마음을 바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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