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아들 요셉은 소년의 날에 가졌던 꿈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의 성공은 그의 독실한 신앙과 정직함의 소산이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였다. 요셉의 주위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은 그를 온유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도록 기다릴 줄 아는 인간으로 성장시키는 도구로 쓰여졌다. 그러므로 한 인간의 성공은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애굽의 통치자(the governor of the land)가 되었으며, 애굽의 경제를 그의 손으로 풀었다(the one who sold grain).
요셉은 땅의 풍요로움을 통해 기근의 날을 위하여 저축하였고, 곡물을 셀 수 없이(창41:49) 저장했다. 모든 지경은 양식을 구해야 하는 환난의 때를 맞았다. 요셉의 아비 야곱이 거하는 가나안에도 흉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가나안의 족장 야곱은 그의 아들들에게 곡물을 사 오기를 바랐다. 요셉의 형들이 곡물을 사려고 애굽에 내려왔으나 그들은 총리로부터 정탐군들이라(You are spies!)는 오해를 받는다.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이었을까? 요셉의 형들은 자신들의 신분과 정직함을 고(告)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들은 자유를 빼앗겼다.
삼일이 지나 뜻밖에 총리로부터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I fear God)는 말을 듣는다. 그것은 야곱의 아들들에게서 정직함(If you are honest men)을 보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요셉은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한다”(reverential fear)는 것은 언제나 그랬듯이 하나님을 두려워(fear)하고 있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장막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웠을 것이며, 애굽의 보디발의 집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여 두려워했다는 삶의 행동(action)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그는 옥중에서도 정직하였으며 왜곡된 방법으로 살지 않았다. 그러므로 죄수의 몸으로 2년을 더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다.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 야곱의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을 경외하며 독실하게(honest) 살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로 인하여 요셉이 동질적인(homogeneous) 신앙을 가졌다는 안도감을 주었을 것이며 자신이 정직하게(honest) 행할 것이라는 심판자적인 자세를 보였다. 그러므로 요셉은 그의 형들에게 “너희가 독실한 자이면”이라는 과제를 주었다.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은 이 두 단어의 의미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fear)할 줄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사람은 항상 정직(honest)해야 한다는 것을 자신에게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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