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에서도 제4계명을 가르치는가?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 2:27-28)
세대주의 안식일관의 허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할 의무 아래 있지 않다고 글을 쓰거나 설교해 왔습니다. 이러한 견해를 견지하는 사람들은 그 가장 주된 이유로서 신약이 제4계명에 관해 침묵을 지키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반(反) 안식일주의자’ 들은 신약이 다른 9가지의 계명들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타당한 규범으로 말하지만 제4계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안식일을 주요 의제로 말하고 있는 많은 구절과 이 도덕적 요구의 지속적인 타당성을 가르치는 구절들을 생각해볼 때 여지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마태복음 12:1-14, 마가복음 2:23~3:16, 누가복음 13:10-17, 누가복음 14:1-6, 요한복음 5:1-18, 요한복음 7:20-24 등이 신약(새로운 언약)에서 안식일에 관해 말하는 구절들입니다(히브리서 4:7-10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구절들은 우리 주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관해 매우 자주 그리고 광범위하게 가르치신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들은 제4계명의 완전한 해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의 공생애 동안 안식일을 해석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신약은 제4계명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아마 그는 신약 전체에 관해 말하기 전에 먼저 복음서들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오, 예수님은 단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던거야!’ 그러한 반응은 현대 복음주의자들과 성경과 그것의 가르침에 관해 논의할 때 생기는 큰 어려움 중 한 가지에 우리의 주의를 기울이게 합니다.
미국에서는 성경학교 운동과 스코필드 성경이 ‘세대주의’라는 사상 체계를 광범위하게 퍼뜨렸습니다. 세대주의는 성경에 대한 이해를 왜곡시키고 성경을 연구하는 학생들을 눈먼 소경으로 만드는 신학입니다. 이 장의 서두에서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인들도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2가지 주요한 원리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신약에서 반복되지 않는 모든 구약의 가르침이나 계명들을 무시해도 좋다는 인기 있는 주장을 하는 것이 바로 세대주의입니다. 그보다 더 불건전한 성경해석의 원리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전제하에서라면 그리스도인들은 신약에서 반복되지 않는 시편의 많은 부분과 잠언의 현명한 교훈들을 몽땅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그러한 많은 부분을 잃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많은 사람들도 신약은 안식일에 관해 가르치지 않는다는(거짓된) 가르침에는 유혹되기 쉽습니다.
세대주의는 또한 유대인들과 기독교회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가르치는 범죄자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메시아로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 세대주의자들의 견해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메시아로 받아들이라고 촉구하시다가 배척을 당하자 유대인들에 대한 자신의 원래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을 때까지만 교회의 주인이 되셨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예수님의 많은 가르침들이 유대인들을 위한 것이었지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산상수훈이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것을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완전히 제거해버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서의 교훈들은 유대인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필요 없는 부분을 빼 버린 얇은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사도들의 서신에서 교훈하고 있는 것들에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안식일이 신약에서 가르쳐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의 생각일 뿐입니다. 그들은 구세주께서 안식일에 관해 반복해서 가르치신 복음서의 기록들은 부적절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당신은 안식일에 관한 명령이 서신서 에서도 다시 언급되는지 아니면 그것은 단지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인지를 찾아내야 합니다.
누구든지 그러한 신학과 또 그 신학의 주장들이 대단히 축소된 성경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 것입니다.
그들은 온전한 신약 성경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즉, 창세기에서부터 요한복음까지는 유대인들을 위한 것이고,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까지가 교회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생각은 유대교와 기독교, 구약과 신약 사이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모든 가르침들로부터 연유한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변호될 수 없는 견해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안식일에 대한 세대주의의 견해는 예수님의 가르침 앞에 쉽게 무너지고 맙니다. 특히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7-28)는 우리 주님의 말씀 앞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이 말씀은 편견을 가지고 안식일이 신약시대에는 폐지되었다는 것을 찾아내려고 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아주 대조됩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의 ‘목적’을 상기시킴으로써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그의 말씀은 우리에게 유대교의 제도를 상기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예수께서 안식일을 단지 유대교의 법체계의 일부로 믿으셨다면, 우리는 안식일의 제도가 유대교가 설립될 때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형식은 우리로 하여금 창조의 1주일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때 인간이 창조된 것은 제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이 제정된 것은 제7일이었습니다. 인간과 안식일이 창조된 순서로부터 우리 주님께서는 그 중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는 사실을 도출해 내셨습니다. 안식일이 만들어지기 전에 인간이 창조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안식일이 인간의 복지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인간이 안식일에게 종속되기 위해 창조된 것은 아닙니다. 안식일이 인간을 돕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8,9에서 그와 거의 똑같은 형식을 사용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창조의 순서는 여자가 남자를 돕는 배필이 되도록 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드러내 줍니다. 그와 똑같은 방법으로 우리 주님께서는 안식일이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안식일의 유익은 인간의 유익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세주와 스승 되시는 그분은 안식일이 창조시에 만들어진 것이지 모세의 언약이나 아브라함과의 언약 때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날을 거룩하게 하신 것은 창조의 제7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창 2:3). 하나님께서 제 7일을 복 주신 날도 창조의 제 7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창 2:3). 창조의 1주일에서 그분은 안식일이 인간에게 복은 가져다주는 날이라는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이 선언 즉 약속은 안식일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것과 거의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날에 하신 일은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창조시에 인간의 행복과 안녕을 위하여 안식일을 제정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만이 아닌 온 인류를 위하여
더욱이 창조의 주간에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안식일을 만드실 때 하신 말씀은 분명히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안식일은 아담과 그의 모든 자손들을 위해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안식일은 모든 인류의 유익을 위하여 제정되었습니다. 편견이나 어떤 신학을 변호하려는 생각이 없다면 누구든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분명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안식일은 창조시에 모든 인류를 부요하게 하기 위하여 제정되었습니다. 이것은 창조의 순서와 창조행위를 해석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말씀에 의하여 분명해집니다.
안식일이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유대교를 창시했고 창세기를 기록한 모세에게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확한 가르침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변호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약이나 신약이 가르치는 성경적 입장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2장과 다른 복음서의 구절들에게 유대인들의 의식이나 유대인들의 법에 관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은 창조의 때로부터 모든 인류에게 해당되는 도덕의 문제입니다.
마가복음 2:27,28의 말씀에서 우리 주 예수님은 안식일의 계속적인 중요성을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NIV 성경에서 ‘이러므로’(so)라고 번역된 단어는 KJV 성경에서 ‘그러므로’(therefore)라고 번역되었으며, 다른 성경들에서는 ‘따라서’(so that)라고 번역되었습니다. 그 단어는 27절과 28절의 두 문장의 사상을 연결시킵니다.
안식일이 모든 인류의 유익을 위하여 제정되었고 인간이 안식일을 위하여 지음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따라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인류의 행복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은 인자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는 안식일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을 여호와께 거룩하게 지킬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을 폐지하기 위하여 안식일의 주인이 되신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이 말씀을 곡해합니다. 그는 안식일의 주인이 되셨고, 그의 공생애를 통해 안식일에 관해 광범위하게 가르치셨고, 몇 달 뒤에는 안식일을 뿌리째 뽑아버리셨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그러한 주장에는 3가지의 심각한 문제가 뒤따르게 됩니다.
첫째,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 자체를 터무니없는 것으로 만듭니다.
예수께서 안식일 제도를 제거하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창조의 때로부터 하나님은 안식일이 모든 인류를 위한 축복이 되게 하셨기 때문에, 따라서 인자는 이 축복을 폐지하기 위하여 그것의 주인이 되셨다. 인간은 이제 다시는 안식일을 지켜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안식일을 축복이 아니라 부담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만이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세대주의적 편견은 잘못된 해석으로써 우리 주님의 말씀을 모순되는 것으로 만듭니다. 그는 안식일이 인간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을 폐지하기 위하여 단지 몇 년 동안 그것의 주인이 되셨다는 가르침으로 인한 두 번째 심각한 문제는 이 사상이 신약성경의 다른 부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4은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기 위함” 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인간은 의식법과 시민법으로부터도 구원받아야 했습니다. 그는 이 규범들을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골 2:14). 그는 이 막힌 담을 허셨습니다(엡 2:14). 그러나 우리 주님은 언제나 율법에 복종하시고 율법과 함께 십자가에 목 박히신 것으로 묘사됩니다. 성경은 그가 율법을 폐지하기 위하여 율법의 주인이 되셨다고 결코 말하지 않습니다.
셋째로,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이 되는 것과 관련하여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서 ‘인자’(사람의 아들)라는 호칭을 선택하셨습니다.
인자는 선지자 다니엘로부터 취한 메시아의 호칭입니다.
다니엘서는 짐승들의 제국으로 묘사된 세상을 다스리는 이방의 나라들을 대단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자가 올 때까지 사악한 제국들이 잇달아 일어나 세상을 지배합니다. 그분은 은혜와 영광의 새로운 질서가 도래했다는 것을 알립니다.
그분의 왕국은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세상을 정복했던 다른 권력들과는 달리, 인자는 선하고 인류에게 축복이 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통치를 확립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유대적인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한 왕국입니다.
마가복음 2:27,28에서 주 예수님은 안식일이 세상이 창조된 때로부터 지금까지 인간에게 유익한 제도이기 때문에 인자가 그것을 자신의 위대한 왕국 안으로 받아들인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왕국은 온 세상에 충만하고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불러 모을 것입니다. 이 왕국에 안식일은 분명히 존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류의 유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안식일을 제거하려는 많은 열정의 배후에는 구약의 종교와 기독교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비성경적인 세대주의적인 가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세대주의는 이스라엘과 교회가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한 가르침은 신약성경의 몇몇 구절들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완전히 거짓된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에베소 교회는 대부분 이방인들로 구성된 교회였습니다.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 2:11-12). 그것은 구약 시대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신자가 된 이방인들의 위치는 어떤 것입니까? 바울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 너희도 …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13-22).
바울은 이방인의 교회와 이스라엘이 분리된 실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스라엘과 교회는 한 몸으로 융합되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그가 교회를 ‘하나님의 이스라엘’ 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갈 6:16). 교회는 ‘시온산과 하늘의 예루살렘’에 이르게 됩니다(히 12:22).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을 완전히 종결 지으셨습니다. 그는 왕국은 통일된 우주적인 왕국입니다.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모두 포함하는 영적인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교회가 제시하는 죄인들이 구원받는 길은 동일합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나 교회는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될 수 있는 다른 길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이스라엘과 교회는 죄를 정의함에 있어서 언제나 일치했습니다.
“죄는 불법이라”(요일 3:4).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이스라엘과 교회에게는 시내산에서 주어진 십계명 이라는 하나의 도덕법이 있을 뿐입니다.
십계명의 한가운데 있는 것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나 교회 안에서는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이 율법의 폐지를 결코 주장하지 않습니다.
구약과 신약에서 믿음의 사람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습니다”(엡 2:10).
구원은 우리에게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을 사는 것”(딛 2:11-12)을 가르치기 위하여 이스라엘과 교회에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과 교회가 모두 제4계명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빛 바랜 안식일 8 (월터 챈트리) (0) | 2013.04.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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