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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주차. 부활절기념설교. 살아계신 하나님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4. 5. 18.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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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주차. 부활절기념설교. 살아계신 하나님

    

 

(본문) 33:6-9, 13-15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그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 같이 쌓으시며 깊은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를 경외할지어다.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 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 살피시는도다.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 살피시는도다.”

 

 

 

1. 부활

 

 

 

주님은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이 말은 주님에게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주님의 부활 안에 있는 우리에게도 이제 죽음이 존재치 않는다는 뜻입니다. 죽음이 존재치 않는다는 것은 육신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 영혼은 이제 죽지 않는 것입니까? 그것은 주님이 우리 영혼을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위해 주님이 이 땅에 오셨고, 이 일을 이루셨고, 죽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본인이 먼저 부활로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은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심장이요, 우리 신앙의 중심입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무엇이겠습니까? 돈도 중요하고 명예도 중요하고 권력도 중요하고 학식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생명하고 바꿀 수는 없습니다.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일은 살아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죽은 존재도 아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죽은 존재는 의미 자체가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부활로 인해 우리가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으며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간의 이성적인 능력으로는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어떻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말이냐고 유대인들이 의심하고 믿지 않았듯이 지금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현대판 유대인들이 수두룩하게 존재합니다. 부활 같은 이야기는 전설이나 신화일 뿐이라고 치부하고 맙니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불신자들이 대세이므로 이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타락한 본성으로 인해 무엇이 옳고 그르냐에는 관심이 없고 항상 자신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에 따라 모든 일을 선택하는 경향을 가집니다. 지금 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 돈을 벌어 잘 살아야 행복하다는 세속주의와 실용주의, 금권주의 등에 만취해 있기에 실상 진리의 문제는 잊혀지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진리가 밥 먹여 주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진리 같은 문제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고 쓸데없이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선입견들에 싸여 있습니다.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창조와 십자가 구속과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재림등의 기독교의 진리는 이제 살아가면서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그만큼 한국사회는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역사적으로 기독교의 복음이 사라질 때마다, 또 복음을 부정하고 핍박하는 곳마다 가장 참혹한 패배의 증거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상숭배문화가 판을 치고 진리를 거역하는 무리가 대세로 작용할 때 어김없이 사회는 퇴보했습니다. 이런 것으로 보면 한국사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매우 어려운 시절을 맞이하게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 한국에는 불교의 세력이 날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산 속에 머물러 있던 그들이 어느새 도시로 내려와 건물을 임대 내어 불상을 차려놓고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부류는 소위 마음수련이라는 간판을 달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어떤 곳엔 기독교의 개척교회를 흉내 내듯이 개척사찰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불교용어들도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염불 드린다고 하더니 그들도 우리처럼 기도한다고 하고, 찬송가에서 본 따 찬불가를 부르고, 주일 설교하듯이 스님들도 일요법회를 개최합니다. 일요일마다 사찰에서 틀어놓은 확성기 소리로 인해 조용하던 산이 목탁소리와 염불소리로 뒤덮여집니다. 석가탄신일을 앞두고선 온 거리에 연등을 달아 놓고 자신들의 세를 과시합니다. 불교의 전통으로 볼 때 이것은 매우 색다른 일들입니다. 산에서 도를 닦고 수양을 통해 해탈을 추구하던 그들이 산에서 내려와 자신들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얼핏 겉으로만 보면 불교가 마치 많은 성장을 한 결과로 보이지만 사실 속내는 그렇지 못합니다. 지금 불교에선 다음 세대를 이을 승려후보생들이 지원하지 않아 큰 골칫거리라고 합니다.

 

 

 

전략적으로 안이 불안하면 겉으로 포장을 하는 법입니다. 화려하게 치장을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제아무리 우상숭배자들이 활개를 쳐도 살아계신 하나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저들이 아무리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이 세상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그냥 우연히 생겨났다고 무지한 말을 해도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오늘은 부활절을 맞아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는 지에 대해 함께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을 이론적으로 우리는 신 존재 증명이라 부릅니다.

 

 

 

2. 신 존재 증명

 

 

 

첫째, 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증거

 

우리는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작가를 알기 위해서 그의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자연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한 사람의 작가가 작품을 위해 그의 모든 지 정 의를 다 사용하여 혼신의 힘을 쏟아 붓듯이 하나님도 그냥 우연하게 자연을 만든 것이 아니라 완벽하고 철저한 계획을 가지고 만드셨다는 것이 자연의 법칙을 살펴보면 여실히 드러납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1) 무에서 저절로 나타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 이를 ‘0의 법칙이라 합니다. 0의 세계는 아무리 장구한 시간이 흘러도 그냥 0입니다. 0에다 아무리 곱셈을 하고 나눗셈을 해도 그냥 0입니다. 0에서 무엇인가 생기려면 누군가 0에다 무엇을 추가해야 합니다. 태초에는 아무 것도 없던 0의 세계였습니다. 성경은 무의 세계에서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분명히 말씀합니다.(1:1)

 

 

2) 태양계의 완벽한 질서와 운행

- 먼저 태양계가 우주상에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은 천문학자들의 연구대상입니다. 눈을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세요. 지구와 태양이 속해 있는 우리 은하는 약 2천억 개의 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우주의 지평선 안쪽 즉, 인간이 관측할 수 있는 범위의 우주 안에는 그런 은하가 약 1천억 개가 있다고 합니다.

- 태양계는 우리 은하의 중심에서 약 26천 광년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태양 주위를 여덟 개의 행성이 돌고 있습니다. 그 행성들 주위로 다시 약 160개의 작은 위성들이 돌고 있습니다. 우리 은하계에 있는 모든 항성들마다 태양계와 같은 공식을 대입하면 우리 은하계에만 약 32천억 개의 별들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 태양계를 이루는 각 행성들의 크기와 위치 역시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세 번째 있는 행성이고, 다른 행성인 화성을 지나면 목성이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목성이 없다면 지구가 어떻게 되는지 시뮬레이션 실험을 했습니다. 목성은 지구의 약 1천 배 크기입니다. 그 큰 목성이 마치 닭이 병아리를 품듯이 지구를 감싸고 있습니다. 그런 목성을 치우자 지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운석들에 맞아 파괴되고 만 것입니다. 실제로 1994716일과 22일 두 차례에 걸쳐 슈메이커-레비9’라는 혜성이 목성과 부딪쳤는데 당시 폭발과 함께 목성의 표면 온도가 수천 도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름 1km 크기의 혜성이 목성과 부딪친 자국이 지구 크기와 비슷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례를 통해 목성 하나도 그냥 우연히 그 자리에 위치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 또 태양계의 천체인 태양과 지구와 달의 관계를 보면 신기할 정도입니다. 알다시피 지구는 자전하며 태양 주의를 공전하고 달은 자전은 하지 않지만 지구 주위를 공전하고 태양은 그 자리에서 자전만 합니다. 왜 이처럼 천체들이 다른 운동을 하며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지구의 생명체를 위해 에너지를 골고루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달은 지구에 태양빛만 반사해 주면 되니까 자전은 필요 없이 지구를 공전하는 것이고, 태양은 지구에 일정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한 자리에 고정으로 위치하면서 스스로 응축되어 폭발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스스로 자전을 거듭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해와 달아 찬양하며 별들아 찬양할지어다.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 것은 저가 명하시매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저가 또 그것들을 영영히 세우고 폐치 못할 명을 정하셨도다.(148:3, 5-6)

- 모든 것은 하나님이 정하시고 하나님이 명하시므로 인하여 생겨났음을 시편 기자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명하시어 생겨났다하여 生命인 것입니다.

    

 

3) 지구의 비밀

 

왜 지구는 비스듬히 누워 도나?

- 지구는 팽이처럼 자전하며 태양을 공전합니다. 한 번 자전하면 하루이고 한 번 공전하면 1년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정확히 23.5도 가량 누워 돕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과학자들이 이것도 시뮬레이션을 해 보았습니다. 먼저 지구를 똑 바로 세워서 돌리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하면, 적도 부근은 새까맣게 타 버리고 극지역은 완전히 빙하로 덮여 결국 지구의 생명체가 존재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비스듬히 누워 도니까 적도가 1년에 한 번씩 남북회귀선을 오르내리므로 춘하추동이 생기고 지표가 골고루 데워졌다 식었다를 반복하여 생명체에 무한 에너지를 공급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런 일들이 우연히 만들어진 것일까요? 정말로 무신론자들의 주장처럼 그냥 우연히 지구가 23.5도로 눕게 된 것일까요? 과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보다 더 정확한 각도는 신이 아니면 계획하지 못하는 것으로 증언합니다. 어찌 인간이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갈 수 있습니까?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11:33)

 

 

 

지구에 쏟아지는 살인광선

- 태양에서는 지구 생명체에게 유익한 에너지만 쏟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생명을 죽일 수 있는 살인광선도 함께 발출됩니다. 이것을 우리는 자외선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외선 때문에 죽거나 다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구 둘레에 자외선을 차단해 주는 장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대기권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위는 성층권으로 싸여 있고, 또 그 위로는 오존이라는 지체로 된 오존층이 둘러싸여 있습니다. 바로 이 오존층이 자외선을 막아 지구 생명체를 보호해 줍니다. 과연 이것도 우연입니까? 누가 이 방법을 알았을까요?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기운으로 이루었도다”(33:6)

 

 

 

공기의 비율

- 지구는 공기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 공기에도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비밀의 설계도가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공기속에 있는 산소로 인해 숨을 쉬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공기가 산소와 질소가 각각 20:80%의 비율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시뮬레이션결과 산소가 1%가 부족해도 숨 쉬기가 어렵고 질소가 2-3%만 부족해도 화재시 불을 끄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산소는 물질을 태우는 가연성 기체이고 질소는 태우는 것을 방지하는 불연성 기체입니다. 우연 치고는 정말 기막힌 조합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도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모든 만물이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라고 우길 수 있습니까? 이러고도 태평하게 절간에 안자 목탁을 두드리며 하나님이 없다고 떠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결코 측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느니라”(5:9)

하늘이 다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19:1)

 

 

 

바닷물의 순환운동

- 한 가지만 더 알아보겠습니다. 지구의 바닷물은 크게 보면 한 곳에 고여 있는 물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계속 흐르고 순환운동을 합니다. 자전과 공전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은 초등학생들도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정말 신비한 일은 자전과 공전으로 움직인다면 바닷물은 일정한 방향으로 동일하게 흘러야 합니다. 그러나 지구의 바닷물은 흐르는 방향이 제각각입니다. 과학자들은 이것이 바람 때문이지, 해수면의 온도차 때문인지 아무리 그 이유를 연구해도 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해류 때문에 지구 온도가 구석구석 조절되어 남반구와 북반구 깊숙한 곳까지 사람이 살 수 있고 해양식물들이 자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우연하게 바닷물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자기가 알아서 흐르는 것일까요?

바다의 한계를 정하며 물로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8:29)

창세로부터 그이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 지니라”(1:20)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업사 하도다”(14:1)

 

 

 

둘째, 인간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증거

 

 

 

1) 지문

- 신기한 일은 유사 이래 인간의 지문이 꼭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시면 그 좁은 손가락 끝에 수천억 개의 비밀부호를 넣은 지문을 새길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지문은 하나님이 새겨 넣으신 제조번호라고 합니다. 얼굴은 형식번호요, 음성은 음향부호요, 유전자는 성능표시라고 합니다.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139:13-14)

 

 

 

2) 양심

- 사람은 본능적으로 죄를 지으면 하늘을 두려워합니다. 그것은 자기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이 죄악을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심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도덕법칙을 어기면 반드시 하나님이 형별을 내린다는 것을 의식하도록 인간 본성에 새기신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인간의 마음에 양심이 있어서 도덕적 시비를 판단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3) 잠재의식

- 인간은 평상시에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생명의 극한 상황에서 다급해지면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것은 심층심리 속에 하나님을 의식하는 영적 기재인 잠재의식을 새겨 두었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삽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의식하는 말들을 합니다.

 ‘인명을 재천이다

 ‘세상 만사가 사람 뜻대로 되는게 아니다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다

 ‘하늘은 못 속인다. 하늘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하늘을 속이면 천벌을 받는다

 ‘順天知者興, 逆天知者亡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기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삼상2:6-7)

 

    

 

3. 결론

    

 

오늘은 부활절을 맞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신존재 증명이라는 방식으로 증거해 보았습니다. 이 몇 개의 사례만 보아도 우리는 충분히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믿지 못하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주님이 자기들 눈앞에서 부활하셨는데도 일부러 믿지 않으려는 유대인들처럼 지금도 그런 부류가 우리 주변에 서성거리며 예수 부활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제아무리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해도 듣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마음으로 하나님이 없다고 결론을 내고 살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악인들의 운명일 것입니다. 악인들의 특징은 진리를 진리 그대로 믿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의 백성들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서 창조하신 자연세계와 인간의 지혜로 발견한 모든 학문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도덕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증거를 발견합니다. 물론 인간의 이성으로 신의 존재를 탐구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경이라는 특별한 계시 없이 단지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신을 아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명심해야 할 하나는 하나님의 존재는 믿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믿니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존재하시지만 모든 만물 위에 초월해 계셔서 이 세계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입니다. 독일의 디트리히트 본회퍼(Bonhoeffer, 1906-1945) 같은 이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인간사에 개입하시는 것은 구약시대와 같이 미성숙한 세계에 있었던 일이고 신약시대와 같이 성숙한 세계에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주장을 토대로 그는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율 안에서 자유로운 의지를 가지고 인간 사회를 스스로의 책임 아래 건설해 가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기독교 유신론자이면서 이 세상에는 단지 자연법칙과 도덕법칙만 존재할 뿐 하나님의 섭리는 없다고 믿은 것입니다. 본회퍼가 읽어야 할 성경구절이 잇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16:9)

 

 

 

2014년 부활절을 맞아 다시 한 번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부활은 생명을 의미합니다. 생명이 있기에 우리가 살아있는 것이고 잠시 사는 것이 아니라 부활로 인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하시기 위해 음부에까지 내려가셨다가 다시 생명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감사드리며 찬양을 드립니다. 함께 부활의 정신을 되살려 날마다 내 안에서 죽었던 생명이 되살아나는 매일의 부활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성도님들 모두에게 부활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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