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주차. 그리스도인이라는 것
본문: 행5:27-33, 40-42
“저희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 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27-33)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 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40-42)
1. 사도들의 기쁨
지금 사도들은 두 번째 투옥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사도들이 예수 이름을 팔아 사기를 친 것도 아니고 군중을 자극하여 혁명을 시도한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의 부활과 예수가 그리스도 도심을 백성들에게 전파하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과는 달리 그냥 감옥에 갇히는 정도가 아니라 매질까지 당합니다. 당시 매질은 사형만 아닐 뿐이지 가장 인간이 견디기 힘든 형벌 중의 하나였습니다. 즉, 사십에 하나 감한 태장을 일컫습니다. 이 매질은 그냥 단순히 매를 맞는 것이 아닙니다. 줄 끝에 아주 작은 쇠 조각들을 붙인 채 가하는 매질입니다. 한 번 매잘할 때마다 살점이 뜯겨 나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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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사도들은 이런 고통스러운 형벌을 당하면서도 1차 투옥 때에도 그랬듯이 의연하게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29절). 뿐만 아닙니다. 41절을 보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역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엄청난 매질을 당한 뒤에 오히려 그것을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평범한 우리 상식으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을 우리는 보고 듣고 있습니다. 훗날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하다가 이런 태장을 수차례 겪었습니다.
이런 기록을 보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 이 정도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구나’ 하고 당연히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때엔 문제가 달라집니다. 그런 현실에 쉽게 동의하지 못합니다. “꼭 이렇게 고난을 당해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이 우리 머릿속에 가득차게 됩니다. 누구든지 가장 어려운 일에 빠지면 본능적으로 슬퍼하지 기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토옥당하고 매질까지 당한 사도들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매질당하는 것을 오히려 영광으로 알고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이것이 무슨 이야기입니까? 한 마디로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세상적인 가치관과 완전히 다른 가치관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모든 점에 있어서 세상과 다른 사람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정리하면 다음의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소속과 신분이 달라집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중생) 예수 그리스도의 피(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으시고 사하시고 구속받은 백성이 되게 하시어 하나님 자녀가 되게 하시고 하늘나라 백성이 되게 하십니다. 즉, 소속과 신분 자체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에서 하늘나라로 소속이 변경되고, 이 세상에 속한 자였다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얻는 것입니다. 요 15:18을 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니라”
둘째, 다른 삶으로 인해 갈등하고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 예를 들어 한국에서 오랫동안 살던 사람이 외국에 이민을 갔다고 칩시다. 그러면 많은 점에서 갈등하고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평소에 행동하던 것들이 자주 부딪치고 헷갈리게 됩니다. 법규도 다르고, 일하는 방식이 다르고, 질서체계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다. 인생의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차를 끌고 거리에 나가도 교통체계가 다르고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더라도 물건 값이 한국과 천차가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영국이나 일본의 경우엔 완전히 거구로 살아야 합니다. 도로에서 차들이 반대 방향으로 달립니다. 운전석도 우리와 반대 방향에 위치해 있습니다. 지하철도 거꾸로입니다. 정치 체제도 우리와 많은 점에서 다릅니다. 글기에 익숙해지려면 한참동안 해매야 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의식도 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해 이제는 고민하고 갈등해야 합니다. 예수 믿기 전까지는 술자리에 동석하고 음주가무를 즐겨도 고민하지 않았지만 이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고민하고 갈등해야 합니다. 직장에 취직한 청년 그리스도인이 제일 먼저 고민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직장 회식자리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상사의 눈 밖에 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이렇게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섞여 살면서 갈등을 느끼며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렇다면 이런 갈등을 통해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도대로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은 이런 갈등의 상황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께 순종함’을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사도들처럼 지독한 고통 속에서도 충성스러운 신앙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신앙고백을 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연약한 육체의 일을 벗어나기 위해 영적으로 더욱 무장하고 영적 전투를 벌이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 다시 말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다가오는 가장 일상적인 현상은 바로 고난입니다. 그것은 육적인 일에 익숙해 있던 사람의 패턴을 영적인 것으로 전환할 때 감내해야 하는 고통인 것입니다. 이것은 거듭난 사람들이 치루어야 할 하나의 전쟁입니다. 전쟁에서는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전쟁에서 지면 끝입니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맙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듭난 성도들은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영적 전쟁을 치루어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한 전쟁이고, 육에 대한 영의 전쟁이고,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충성의 전쟁인 것입니다. 이 삶은 한 마디로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입니다. 성령에 지배받았다는 것은 육체의 소욕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육체의 일을 멈추고 성령의 일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갈 5:24를 읽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셋째, 상속자가 되어 하나님의 기업을 유업으로 물려받습니다.
- 먼저 롬 8:15-17을 찾아 읽겠습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하늘의 영원한 기업을 상속할 상속자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비록 우리가 상속자의 권리를 얻었다 해도 바로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가 충분히 상속을 받을만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하실 때에 비로소 상속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상소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즉각 상속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신분은 되었지만 자격이 미달이라는 것입니다.
- 현대그룹을 일군 고 정주영 회장은 자식들을 회사에서 일하게 할 때 절대로 처음부터 높은 자리에 앉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외국 유학가지 하고 돌아온 아들들을 일단공사판에서 보내 벽돌을 나르게 하고, 말단 직원 자리에 앉히고 바닥의 업무들을 경함케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집안 식구들이 나서서 그건 너무 심하다고 말리는 겁니다. 아내도 이제 그만 하라고 부추기고 동생들도 귀한 조카들을 그리 함부로 다루지 말라고 형님한테 조릅니다. 그러나 정회장은 꿈적도 않고 자식들을 막사로 보내어 노동자들과 같이 땀 흘리고 뒹굴도록 명령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큰 교훈을 얻습니다. 정말 정 회장은 돈 밖에 모르는 자린고비요, 자식들에게 피눈물도 없는 아버지였습니까? 아닙니다. 아들들이 장차 자기의 뒤를 이어 주인 노릇을 해야 할 상속자들이기에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게 하는 것입니다. 아들들이 호화호식에 도취되어 기업을 망하게 하지 않도록 철저히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사랑이요 훈도입니다.
-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다는 것이고 하나님도 당신의 자녀에게 그냥 기업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훈련을 시킨 다음 충분히 상속받을 자격을 갖추었다고 판단할 때에 기업을 맡기시고 물려주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기업이란 세상적인 기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업은 영원한 하늘나라에 포함된 개념이지만 우리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사명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영웅들의 삶을 바라보세요.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어떻게 훈련시켰습니까? 갈대아 우르에 살던 그를 하란 당으로 부르시고 다시 가나안땅으로 들여보내신 다음 바로 기업을 일구도록 하시지 않았습니다. 극심한 가뭄을 만나 애굽 땅에서 빌어먹게 하시고 자기 아내를 빼앗길 뻔한 위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 아들 이삭도 마찬가지로 유랑하는 사람을 살아야 했고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속아 20년을 종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요셉은 또 어떠했습니까? 어릴 때 채색 옷 입고 형들 앞에서 잘난 체하던 그를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게 하신 다음 13년 동안 옥살이까지 경험케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모세는 40년을 광야에서 훈련받았습니다. 다윗은 장인되시는 사울 왕으로부터 온갖 모멸과 핍박과 굴욕을 당하며 엔게디 광야와 마므레 산지에서 13년간을 떠돌았습니다.
- 이런 혹독한 고난의 시기를 왜 겪어야 했습니까? 비록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았지만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선 그 자격을 먼저 갖추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격은 그 일에 합당한 자질을 말합니다. 이 자질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온갖 억울한 일, 답답한 일, 말 못할 일은 물론이고 참고 기다리며 밤을 새워가며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고 경청하고 다른 탐구의 열매들을 맛보고 다른 이를 섬기고 겸손히 행하고 원수를 용서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비로소 맺어지는 열매들입니다.
- 저는 모든 참 그리스도인에게는 반드시 이 시기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이 시기를 ‘광야학교’의 시기라고 부릅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상속을 받기 위해 반드시 이 광야학교를 졸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저의 졸저인 <가벼워야 산다>의 일독을 권해 드립니다.
3. 결론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해 3가지로 요약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이 땅에서 살면서 우리는 이제 이 세 가지 신분과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오늘 본문의 사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주님의 능력의 삶을 살기를 합당히 여기며 어떤 고난과 능욕에도 오히려 기뻐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도들이 가졌던 그 기쁨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확한 인식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그 기쁨의 정체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히2:10을 봅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해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다시 말해 사도들이 매질을 당하면서도 기뻐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 주님도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되시었듯이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고난을 통해 온전하게 된다는 메시지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들을 다루시는 지혜의 방식이요 훈련의 기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당하신 고난이 내게 임할 때에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그 고난을 노래하며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고난이 오면 즉시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아, 하나님이 나를 자녀로 삼으셨구나” “아, 하나님이 나에게 기업을 상속해 주시려고 하시는 구나” 그러므로 슬퍼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고난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외면 받거나 버림받은 사람일 것입니다. 아멘.
[출처] 23주차. 그리스도인이라는 것 (아리엘 개혁교회) |작성자 아리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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