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주차. 당신의 신분은 무엇입니까?
본문: 22:22~29
“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공중에 날리니, 천부장이 바울을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고 그들이 무슨 일로 그에 대하여 떠드는지 알아보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심문하라 한 대, 가죽 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서 있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시민 된 자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이르되 어찌하려 하느냐 이는 로마 시민이라 하니,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시민이냐 내게 말하라 이르되 그러하다,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이르되 나는 나면서부터라 하니, 심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시민인줄 알고 또 그 결박한 것 때문에 두려워하니라”
1. 바울의 증언
결박을 당한 채 바울은 폭도들 앞에 서서 입을 열어 자신의 출생과 성장배경과 회심과 사명을 받은 것들에 대해 상세히 설명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더 이상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합니다. 처음에 폭도들은 바울이 무슨 얘기를 할까 궁금하여 일단 들으나 보자는 심사로 일순 조용해 졌습니다. 그런데 들어보니 바울의 입에서 자기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폭도들은 소리를 지르며 바울에 대한 혐오감을 분출합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 존재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필요하거나 유익한 일을 찾고 구합니다. 특별히 교육을 받고 훈련을 받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거나 이타적인 것엔 매우 등한시합니다. 이것을 심리학적 용어로는 ‘자기애’라 합니다. 그러나 ‘자기애’가 꼭 부정적인 용어가 아닙니다. 긍정적으로 보면 사람은 자기를 사랑할 줄 알아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고 봅니다. 자기를 비하하고 부정하고 멸시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 존중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자기의 삶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일이 인생입니다. 역설적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존재라는 것을 믿는 사람은 자기를 함부로 대하거나 방치하지 못합니다.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를 늘 인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걸작품이기에 자기를 더욱 더 사랑하고 존중하고 자기 인생에 충실해야 합니다. 한편으로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남을 귀하게 여기고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높입니다. 다른 이가 고통을 당할 때 긍정적인 자기애를 가진 사람은 같은 고통을 느낍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위로하고 함께 있어 주며 고통을 분담하려 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 줍니다.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저를 비롯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예외이지만 남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일은 그 사람을 배려하는 일이며 그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일이 됩니다.
그러나 오늘 바울 앞에 있는 폭도들은 그런 존재들이 아닙니다. 자기들이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과연 바울의 입에서 무슨 소리를 듣고 싶어 한 것일까요? 아마 바울이 그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잘못을 비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악인들은 늘 상대를 제압하고 이기고 싶어 합니다.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상대를 거꾸러뜨리려 합니다. 여기에 도덕과 윤리, 사회적 관행들 따위는 무용지물입니다. 오직 한 가지 목적만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군중심리가 무서운 것입니다. 지금 폭도들은 오직 한 가지 목적, 바울을 죽여 없애고자 합니다.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며 한바탕 소란을 피웁니다. 길거리에서 간혹 싸움질을 하는 사람들을 목격합니다. 싸움이 극에 달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자기 옷을 벗거나 찢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아마 자기가 지금 극도로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몸짓의 하나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옷이 무슨 죄가 있어서 분풀이의 도구가 되어야 하는지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러한 때, 만약 로마주둔군의 보호가 없었다면 바울은 폭도의 손에 의해 갈갈이 찢겨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로마군인들의 손을 사용하여 바울을 지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사람의 힘으로 무엇을 해보자고 힘을 쓰도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시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폭도들이 바울을 죽이고자 하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바울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합니다. 가령 여러분이 생을 비관하여 자살을 하고자 한다 칩시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아무리 죽고자 해도 죽지 못합니다. 인간의 생사여탈권은 하나님만이 가지고 사용하십니다.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다 하나님이 작정하심과 예정하심과 섭리에 따라 진행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더러 간절히 구하고 열심히 일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충실할 것을 원하십니다. 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셨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가 게으르고 숙명론자처럼 사는 것을 막기 위해, 또 우리의 교만 방자함을 예방키 위해 우리의 땀과 수고를 원하십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매일 이마에 땀을 흘려야 합니다. 땀을 흘리지 않고 과실나무에 열매를 맺게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열매들은 땀의 결과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2. 천부장의 조치
다시 소란이 일자 천부장이 당황하고 바빠집니다. 그는 즉시 부하들에게 바울을 요새 안으로 데려가라고 명령합니다. 천부장은 이제 바울에게서 직접 사태의 진실을 듣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대화가 아니라 고문이라는 방식이었습니다. 채찍질을 통해 진실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기둥에 매달고 가죽 줄로 묶었습니다. 당시 매를 맞는 사람은 기둥이나 말뚝에 채찍질하기에 편리한 높이로 묶였습니다. 알다시피 로마군의 채찍질은 악명이 높았습니다. 가죽 끈을 엮어 만든 채찍은 날카로운 쇠붙이나 뼈를 박았고 튼튼한 나무 손잡이가 달려 있었습니다. 이 채찍으로 맞은 사람은 죽지 않으면 최하 병신이 되었습니다. 거의 죽었다고 전해집니다. 바울은 선교여행 동안 로마의 릭토르(lictor, 형벌담당관원)에게서 세 번 태장을 맞고 유대인 관원으로부터 다섯 번 채찍질로 징계를 받았다고 했습니다(고후111:24 이하). 그럼에도 바울이 멀쩡하게 살아있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아니라면 설명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힘을 가진 자는 늘 자기 힘을 보이고 싶어합니다. 소인배이기에 그렇습니다. 소인배는 자기를 늘 나타내려 합니다. 자기가 우위에 서려 합니다. 높은 자리에 앉아 명령합니다. 자기가 주도하고 경영하고 군림하려 합니다. 천부장도 별 수 없이 그런 사람입니다. 천부장은 바울의 자기 증언을 폭도들과 함께 들었습니다. 약간의 지식과 분별력과 식견이 있었다면 바울이 배운 사람이고 인품이 훌륭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천부장은 바울의 죄를 강제로 묻기 전에 대화를 통해 충분히 바울로부터 일의 전말을 상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돈으로 로마시민권을 산 천부장은 그럴만한 위인이 되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사도라는 사실을 믿고 알았다면 감히 바울에게 채찍질을 명령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일제의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목사직을 강탈당하고 감옥에 수차례 갇혔고 결국 감옥에서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하시고 1944년 4월 21일 밤 9시 평양형무소에서 49세의 나이로 순교하셨습니다. 저는 주 목사님이 남기신 마지막 설교의 내용을 가끔 다시 읽곤 합니다. ‘다섯 종목의 나의 기원’이라는 그 설교는 읽을 때마다 심금을 울립니다. 첫째는 죽음이 권세를 이기게 해 달라는 것이고, 둘째는 장기간이 고난을 견디게 해 달라는 것이고, 셋째는 노모와 처자를 주께 부탁한다는 것이고, 네 번째는 의에 살고 의에 죽도록 해 달라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청중은 모두가 흐느끼며 통곡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 목사를 감시하던 일제 형사도 이날만큼은 눈시울을 붉히고 슬그머니 산정현교회를 빠져나가 버렸다고 합니다. 훗날 주 목사님을 고문하던 일본 형사는 주 목사님의 인품을 공경한 나머지 자기 후손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유언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제아무리 악인이라 해도 하나님의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지키시기에 고문이 아니라 온갖 고초를 가한다 해도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맙니다. 천부장은 자기 권세로 바울을 심문하고 죄목을 알아낼 것이라고 단순히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부장을 꼼작하지 못하도록 하는 비장의 카드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로마시민권’입니다. 솔직히 바울은 로마시민권자가 되기 위해 어떤 준비나 계획이나 노력을 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아버지 덕분에 날 때부터 로마시민이 되었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에서 로마시민이라 함은 특별한 신분을 가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그런 신분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 이렇게 중요하게 사용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일을 다 아시고 이미 준비하시고 결정적이 상황이 도래할 때 바울을 구하시기 위한 방편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25절 하반부를 보세요. 기둥에 매달려 채찍질을 당하기 직전에도 사도 바울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있습니다. 마치 ‘암행어사 출두요’하는 소리 같이 들리지 않습니까?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않고 채찍질 할 수 있느냐?”
이 소리에 백부장의 두 눈이 휘둥그레 뜨진 모양입니다. 아마 백부장은 로마 시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재판 절차도 거치지 않고 무조건 채찍질부터 하려고 한 사람이 그 고귀한 신분인 로마시민이라니 백부장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하마터면 자기들 모가지가 날아갈 판이었습니다. 아마 얼굴이 하얘졌을 것입니다. 그래 놀래가지고 천부장에게 달려가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26절입니다. “어찌하려 하느뇨 이는 로마 사람이라”. 이 말을 우리 식으로 풀어 설명하면 “큰일 났습니다. 저 사람은 로마 사람입니다. 어쩌면 좋습니까?”하는 식입니다.
그러자 더 놀란 사람은 천부장이었습니다. 즉시 심문장으로 달려갔습니다. 27절에는 그냥 ‘와서’라고 되어 있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프로세르쏜’이라 했는데 이는 ‘~앞으로 바짝 다가가다’, 즉 영어로는 approach입니다. 다시 말해 그냥 바울에게 갔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조급하여 바짝 다가갔다는 것으로 천부장의 위급한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속된 말로 ‘똥줄이 탄 것’입니다. 그러나 천부장은 숨을 가다듬고 바울에게 진짜 당신이 로마시민이냐고 묻습니다. 바울은 그렇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천부장은 바울의 이 말이 쉽게 믿기지가 않는 모양입니다. 왜냐하면 몰골을 보니 어디 한 군데라도 로마시민처럼 보이지가 않는 것입니다. 브루스는 이에 대해 바울이 폭도들에게 붙잡혀 성전 바깥뜰로 끌려나왔고 난폭한 취급을 받은 터라 위엄도 없고 형편없는 몰골을 하고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런 바울의 꼴을 보고 천부장은 28절에서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샀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천부장이 보기에 이렇게 불쌍히 보이는 바울 같은 사람도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시민권의 값이 자기가 구입할 때보다 턱없이 싸졌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로마시민권의 가치가 점점 땅에 떨어져 간다는 것을 에둘러 말한 것입니다. 이제는 소나 개나 다 돈만주면 로마 시민권자가 되는구나 하는 비탄의 소리인 것입니다. 베드(Bede) 목사는 이렇게 주석을 했습니다.
“네가 어찌 그리 쉽게 로마 시민임을 주장할 수 있느냐? 나는 얼마나 많은 돈을 들여 이 시민권을 샀는데 너 같은 자가 어찌 로마시민이라 하느냐?”
역사적으로 로마시민권을 돈으로 구입하게 된 계기는 글라우디오 황제 때 그의 아내인 메사리나 때문이라 합니다. 그녀는 황제와 별도로 자기 권세를 확장하기 위해 많은 추종자들을 두었는데 이를 관리하기 위해 많은 자금이 필요했고, 이를 충당하는 방법의 하나로 로마시민권을 매매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비밀리에 로마시민권은 제국 내의 많은 재력가들로부터 인기 있는 상품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울러 이방인이 로마시민이 되면 이름을 개명해야 했는데 오늘 등장하는 천부장의 경우 그 이름이 ‘글라우디오 루시아’(23:26)인데 글라우디오는 황제의 이름이고 루시아는 본명으로 헬라인의 이름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름만 보아도 이 사람은 글라우디오 황제 때 돈으로 로마시민권을 산 루시아라는 헬라인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이 즉시 “나는 나면서부터다”고 대답합니다. 이것으로 게임 끝입니다. 천부장은 바울도 자기처럼 로마 시민권을 돈을 주고 산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날 때부터 로마시민이라고 하니 할 말이 없어진 것입니다. 자기와는 완전히 신분이 다른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천부장은 즉시 바울을 기둥에서 풀어줍니다. 그러면서 혹 이 일로 인해 자기에게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 까 하고 두려워합니다. 이게 얄팍한 인간의 심사입니다.
3. 우리의 신분
오늘 이야기를 통해 두 가지 교훈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는 신분이 왜 중요한가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신분이란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로마시민이라는 신분으로 바울은 고초를 면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신분이냐에 따라 사람은 대우를 달리 받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기에 세상으로부터 배척을 당하고 어이없는 핍박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이름과 신분을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성직에 대한 파렴치한 행위를 개혁해야 합니다. 요즘 목회직에 대한 설왕설래를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종교개혁 당시 성직권을 돈으로 사고파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것이 백성들의 원성을 산 원인 중의 하나였습니다. 요즘 목사직의 값어치가 형편없이 하락했습니다. 성직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하나의 직업인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목사는 사람이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목사를 대충 절차만 밟고 안수하고 그 값으로 돈을 주고받는 일이 허다하다 합니다. 모든 것엔 수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수준이 낮으면 가치도 낮게 평가됩니다. 수준을 높이려면 책을 읽고 삶을 익히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등 인생 공부를 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공부하는 종교이고 목사는 누구보다 공부하는 학자가 되어야 합니다. 철저히 회개하고 조국교회를 개혁하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아멘.
[출처] 31주차. 당신의 신분은 무엇입니까? (아리엘 개혁교회) |작성자 아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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