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방 때는 어떤 대화를 나눠야 할까?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담임)
Ⅰ. 심방의 목적
심방의 목적
심방은 왜 하는가? 상당수의 사람들은 목사나 교역자가 성도의 가정에 방문해서 예배를 드려주거나 기도해 주는, 즉 복을 빌어주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심방을 받는 사람이 목사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목사는 음식을 대접받는 기회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심방(尋訪)이 아닌 먹방, 목회(牧會)가 아닌 먹회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심방의 목적은 예배에 있는 것이 아니고, 복을 빌어 주는 것도 아니며, 먹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는 굳이 목사가 오지 않아도 가장을 중심으로 가정기도회(가정예배)를 통해 충분히 할 수 있고, 목사가 인도하는 예배는 굳이 성도의 가정이 아닌 교회당에서 할 수 있다. 성도의 가정을 위한 기도는 꼭 가정을 방문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분자가 개인적으로 언제(새벽, 낮, 저녁) 어디서든(교회당, 목양실, 목사관, 기타 어떤 장소든) 할 수 있으며, 식사는 굳이 심방을 통해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심방은 왜 하는가? 심방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도의 영적인 형편을 살피는데 있다(행 20:28).1) 성도들의 영적 형편을 살펴 목양의 도움을 얻기 위함이요(벧전 5:2), 궁극적으로는 교회를 세우는데 있다(엡 4:12). 영적인 형편을 살핌으로써 성도의 교리와 생활의 잘못을 지적하며 교정하는 것,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도록 격려하는 것이 심방의 목적이다(딛 1:9).
그렇기에 심방은 예배나 기도, 식사에 초점을 두어서는 안 된다. 심방의 초점은 영적인 형편을 살피기 위한 ‘대화’가 주(主)를 이루어야 한다. 심방의 주체인 목사와 장로(당회)가 성도의 가정과 대화하면서 영적인 형편을 살피는 것이 심방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이때의 대화는 사적인 대화가 아닌 공적인 대화이며, 대화는 단순한 이야기를 주고받음이 아니라 영적 형편을 살피는 문답(問答)이 되어야 한다. 심방은 하나님의 찾아오심에 근거한 직분자의 방문으로 시작되지만, 그 찾아옴을 맞이하는 교인과의 대화를 통해 상호 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영적 형편
심방은 영적인 형편을 살피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영적 형편이란 무엇인가? 영적 형편이란 신앙과 생활의 형편이라고 할 수 있다. 교인이 성경이 말씀하고 있고 장로교 신앙고백이 가르치고 있는 신앙을 갖고 있는지, 교인이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지를 확인하는 것이 바로 영적 형편을 살피는 것이다.
직분자는 성도가 성경과 신앙고백에 근거한 신앙을 갖고 있으며 삶을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여, 그러하다면 계속해서 그러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하고(딛 3:8; 히 10:24) 그렇지 않다면 이유를 확인하고 교정하며(딛 1:9), 이후에 설교나 성경공부 그 외의 교회적 다스림(치리)을 통해 바른 신앙과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Ⅱ. 심방을 통해 확인해야 할 영적 형편
신앙에 관한 질문
심방의 대화를 통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신앙에 관한 부분이다. 심방의 주체인 목사와 장로는 심방의 대상인 성도들의 신앙을 확인해야 한다. 신앙에 대해 살피기 위해서는 ‘사도신경’이 질문의 좋은 도구가 된다. 신앙에 관해서는 사도신경에 잘 요약되어 있기 때문이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22문답). 사도신경은 세례를 베풀기 전에 묻는 질문이면서 또한 동시에 매주일 온 교회가 함께 예배 중에 서로가 서로에게 묻는 질문이며 또한 동시에 직분자가 심방할 때에 묻는 질문이다.
그렇기에 사도신경을 도구 삼아,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지, 성부 하나님을 믿는지, 성부 하나님을 전능하신 천지의 창조주로 믿는지, 성자 하나님을 성부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믿고 있는지, 성자 하나님의 성령잉태와 동정녀 탄생을 믿고 확신하는지, 성자 하나님의 십자가 구속의 유익을 믿는지, 성자 하나님의 부활을 확신하고 재림을 믿는지,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를 믿는지, 몸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믿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교회의 회원이 될 때에 확인된 것이지만, 계속해서 확인해야 한다(히 3:13).
성도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의심이 생길 수 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의심이 생길 수 있다. 의외로 교인들 중에 신앙의 기본적인 내용에 대해 무지한 경우가 많이 있다. 그렇기에 진부한 내용이라 여기지 말고 묻고 확인해야 한다.
이미 잘 알고 믿고 있다면 계속해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바로잡아주어야 한다.
삶에 관한 질문
심방의 대화를 통해 다음으로 확인해야 할 것은 생활에 관한 부분이다. 심방의 주체인 목사와 장로는 심방의 대상인 성도들의 삶을 확인해야 한다. 생활에 대해 살피기 위해서는 ‘십계명’이 질문의 좋은 도구가 된다. 생활에 관해서는 십계명에 잘 요약되어 있기 때문이다(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39-41문답;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91,98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92-93문답).
그렇기에 십계명을 도구 삼아,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지 물어야 한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없는지, 삼위 하나님을 형상화한 것(그림이나 우상)을 두지 않았는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는 않는지, 주일을 잘 지키고 있는지, 나머지 6일은 성실하게 살고 있는지, 부모 자녀 간에 존경하고 사랑하는지, 생명을 사랑하고 보호하기 위해 힘쓰는지, 형제를 미워하는 일은 없는지, 순결을 지키는지, 부부 간의 문제는 없는지, 도둑질을 하지는 않는지, 다른 사람에 대해 거짓말을 하지 않는지 등을 묻고 확인해야 한다.
이미 잘 하고 있다면 계속해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하고, 혹 잘못한 것이 있다면 교정하고 혹 꾸중해야 할 것이 있거나 질책해야 할 것이 있다면 해야 한다. 직분자는 사인(私人)이 아니라 공인(公人)이다. 하나님의 찾아오심을 대신한 방문이 심방이다.
교회생활에 대한 질문
또한 교회생활에 대해 확인해야 한다. 교회의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이 가정에 유익을 주고 있는지, 교회생활에 만족을 하고 있는지, 다른 교인과의 관계, 특별히 직분자(목사, 장로, 집사)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없는지 등을 물어야 한다.
개인 경건과 가정생활에 대한 질문
개인 경건과 가정생활을 살펴야 한다. 평소에 성경은 읽는지, 신앙서적은 현재 어떤 것을 읽고 있는지, 기도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를 각 개인에게 물어야 한다. 그리고 가정생활에 어려움이 없는지,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있는지, 아내는 남편의 권위를 잘 인정하고 있는지, 부부 사이는 원만한지, 혹시 각방을 쓰는 일은 없는지, 자녀들은 부모의 권위에 순종하고 있는지, 주일 설교에 대해서 가족끼리 서로 대화하는지, 가장은 가족구성원들을 말씀으로 잘 가르치는지, 가정에서 가정예배 혹은 가정기도회로 모이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자녀들에게는 부모의 관계가 자녀들이 보기에 좋아 보이는지, 부모가 자녀들에게 말씀을 잘 가르쳐 주는지, 주일날 들은 설교에 대해 부모가 물어 보는지, 부모가 평소에 성경읽기를 하는지, 부모가 자녀의 성경읽기를 점검하는지를 물어 봐야 한다.
Ⅲ. 자연스러운 질문이 되기 위해
대화의 기술을 익혀야
심방 시 주로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 ‘일방적’(?)인 방식에 익숙한 이들에게 ‘대화’가 주를 이루는 심방이 낯설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질문의 방법과 요령을 알아야 두어야 하고, 평소에 대화의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여유로운 시간의 확보
대화가 주를 이루고, 대화를 통해 성도의 영적인 형편을 살피는 심방은 짧은 시간으로 가능하지 않다. 그렇기에 ‘하루에 몇 가정’하는 식의 목표 중심의 심방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루에 한 가정을 여유롭게 방문하여 2-3시간 정도 대화를 나눠야 한다. 그래야 영적인 형편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
자연스러운 질문
대화중에 질문하되,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제가 질문하겠습니다. 첫째, .... 둘째, .... 셋째, ...... 다음 질문 하겠습니다....... 대답을 좀 더 분명하게 해 주세요.”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심방의 대화는 내용면에 있어서 ‘질문’이지만 형식면에 있어서 ‘질문의 형식’을 취해서는 안 된다. 자연스러운 대화중에 질문의 내용이 포함돼야 하는 것이지, 질문 자체에 얽매이면 절대로 안 된다. 다시 말해 전체 대화 속에 위의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한다.
혹 대화를 통해서 얻지 못한 것이 있다면, 예외적으로 몇 가지를 물어볼 수 있겠으나, 지나치게 ‘물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질문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모든 답을 얻어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편안한 대화 속에서 답을 얻어야 한다.
필자는 신학대학원에 입학하기 전에 사회복지사(경남종합사회복지관)로 일한 적이 있는데, 절대로 클라이언트에게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냥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 궁금한 내용들을 얻으려고 했다. 질문의 형식을 취하게 되면 질문을 받는 사람은 ‘취조’(取調)를 받는다는 불편한 느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심방 역시 마찬가지다. 엄숙한 예배형식이나 일방적인 질문의 분위기가 아니라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는 심방을 지향해야 한다. 장로가 심방하는 것은 탐정처럼 그 집에 무슨 잘못이 있는가를 살피러 가는 것이 아니라 각 가정의 영적인 형편을 파악하고 그리하여 어떻게 그 가정을 바르게 말씀으로 세울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데 목적이 있다.
평소에도 이루어져야 할 대화
‘질문이 담긴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평소에도 대화가 있어야 한다. 평소에 대화가 없다면 대화를 통한 질문이 불가능하다.
한국교회는 목사와 교인이 대화하는 것이 어색한 경우가 많다. 교인들 중에 목사나 장로와 단 한 번도 대화해 본적이 없는 경우도 많다. 교인들에게 목사와 장로는 종종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목사나 장로는 평소에 교인들과 대화해야 한다. 사사로운 대화도 자주 나눠야 한다. 그래야만 공적인 심방을 통해 나누는 공적인 대화도 부드러운 대화가 될 수 있다. 목사와 장로는 교인들과 대화하기 위해 힘써야 하고, 교인들도 평소에 직분자와 대화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목사, 장로, 교인 모두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성도의 교제”를 믿고 고백하는 자들이다.
항상 이루어져야 할 심방
그렇기에 심방은 평소에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 말은 심방을 자주 하라는 말은 아니다. 목사와 장로가 자주 심방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심방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자주 누군가가 찾아오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다. 심방이 평소에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은 꼭 가정에 방문해서가 아니라 주일날 만나 대화를 나눌 때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로의 회에 속한 목사와 장로는 주일 점심 식사 후 당회실에 들어가서 교인들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킬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도들이 있는 곳에 찾아가서 대화하면서 늘 물어야 하고, 성도 간에도 서로 물어야 한다(고전 12:25; 골 3:16). 이 때 의도적이고 의식적인 물음이 아니라 자연스런 대화를 통해 묻어나는 것이 제일 좋다.
주일날 만나 한 주간 잘 지냈는지를 서로 묻고, 또한 그동안 하나님께서 각자의 삶에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나눌 필요가 있다. 성경은 상호심방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다. 히브리서 3:12-13 “(12)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대답하는 성도
지금까지는 주로 심방의 주체인 목사와 장로가 어떤 대화를 이끌어야 하는지에 대해 살폈는데, 심방의 대상인 교인들도 대화에 참여함에 있어서 바른 태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심방은 일방적인 찾아옴이 아니라 상호 간에 이루어져야 할 대화다. 그래서 대답하는 교인의 역할과 태도도 중요하다. 교인들은 심방 시에 받는 질문에 대해 불편해 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자신의 영적인 형편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영적인 상태는 말 그대로 영적인 것이기에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교인에게 어떤 고민이 있는지를 목사와 장로가 평소에 알기 위해서 노력하겠으나, 그것은 분명 한계를 갖고 있다. 그래서 심방을 받는 교인은 심방을 위해 찾아온 목사와 장로에게 자신의 영적인 형편을 알려야 한다.
또한 자연스러운 대답이 되어야지, 목사나 장로에게 화를 내거나 따지거나 트집을 잡는 것은 삼가야 한다. 교회를 비방하거나, 평소 하고 싶었던 비판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혹 건의할 사항이 있을 수 있다. 그 때는 겸손하고도 부드럽게 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를 세우기 위한 목적이 되어야 한다. 때로는 개인적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목사와 장로는 어느 한 개인의 건의에 따라 교회를 움직일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며, 다수의 의견이라고 무조건 존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목사와 장로는 교인의 종이나 대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의 직분자다.
결론: 심방은 사후약방문이 아닌 예방을 위한 방문이다.
심방을 가서 위와 같은 질문들을 굳이 해야 하는가? 교인들이 귀찮아하지 않을까? 심방은 성도의 영적 형편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앞으로 잘 하도록 ‘예방’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직분자가 심방 와서 위와 같은 질문을 할 거라는 사실을 아는 성도들은 다음에 있을 심방 때도 위와 같은 질문을 받아 그 질문에 대답해야 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위의 내용들을 지키기 위해 평소에 더욱 힘쓰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자동적으로 교회와 성도에게 있을 영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심방의 궁극적인 목적은 목양에 있다. 성도들의 영적 형편을 살핀 뒤에 그에 적절한 대책과 해결방안이 뒤따라야 한다. 목사는 어떤 설교를 해야 할지, 장로는 성도들을 어떻게 돌아봐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가 영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고 날마다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야 할 것이다(행 9:31).
1)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총회 헌법(2011년판) 교회정치 제66조 (장로의 직무) 제2항 “교회의 영적 상태를 살피는 일” 제3항 “교인을 심방, 위로, 교훈하는 일” 제4항 “교인을 권면하는 일” 제5항 “교인들이 설교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여부를 살피는 일” 등은 심방이 장로의 직무 중 하나임을 말함과 동시에 심방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http://www.reformedj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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