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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자에게 징계를 행하심(히12:3-13)

임진남목사(김제)

by 김경호 진실 2018. 11. 1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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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자에게 징계를 행하심(히12:3-13)
  

오늘날도 우리주변에는 성령이 충만하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믿음이 모든 것을 다 이기고, 믿음만이 능력이라고 하는 것을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성령이 충만하고 믿음이 충만하면 자신들은 죄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살 수 있는 것입니까? 물론 육신의 정욕을 쫓아 살아가는 자들보다는 신앙이 뛰어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하나님은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으로 구원 받는 참된 신앙을 말씀하여 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성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된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주 예수를 믿는 믿음 때문에 고난과 환난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이 얼마나 위대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이 정도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격려를 받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또 다른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 안에 있는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고 계십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믿음만이 모든 것을 이루어 주기 때문에 이것을 위해 애를 쓰는 자들도 역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 안에 있는 죄입니다.

보통 신앙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스스로 판단합니다. 이정도면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나은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고난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순교를 당하는 자리에 이르지 않았지만 유대인들과 로마제국으로부터 당하는 고난과 환난을 이겨내면서 자신들 스스로 안위를 받고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고난을 당하는 것이 누구 때문인지? 주님은 아실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신앙을 가지고 이겨나가면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 내가 주님이 주신 은혜로 그 상황을 이겨냈다. 물론 이렇게 주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을 고백하고 지난날의 어려운 삶을 해쳐나가 이긴 것을 기뻐하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모든 성도는 계속 싸워야할 죄가 남아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지난날 자신의 헌신과 믿음은 결국 무너지고 말 것이며, 또 다른 죄악 가운데 빠져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 때문에 환난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한 가지 중요한 진리를 증거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때문에 자신이 당하는 고난과 환난을 기뻐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주시는 징계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허락이 되지 않고,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지난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그들 가운데 함께 계시면서 먹을 것과 마실 것, 그리고 이방나라의 침입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지켜주셨고 늘 자신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구약의 조상들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은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분이 자신들의 그리스도이며, 구원자라고 하는 것을 믿고 있는데, 이미 세상 가운데 오셔서 그 많은 능력과 권능을 가지시고 원수들을 이기며, 사탄의 궤계를 파괴하셨다고 하는 것을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들은 이렇게도 험난하고 모진 고통 가운데 살고 있는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도의 메시지는 고난당하는 것을 기뻐하라고 있으며 그것은 육신의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여 징계하는 것처럼 하늘의 아버지께서도 자신의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한다고 하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말이 사랑으로 징계하는 것이지 어떻게 그것이 징계라고 받을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자녀들과 형제들이 그리고 아내와 남편이 주 예수를 믿는 그 믿음 때문에 죽음의 자리에 이르고, 살아 있는 자들은 여전히 그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데 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도의 메시지가 얼마나 힘이 되고 그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으며 인간의 이성에 호소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성령은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보이지 않는 암흑 같은 것처럼 보이는 상황 속에서 그들에게 단 번에 그 모든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진리로 이끌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사도는 예수가 누구인지를 계속 증거하였습니다. 성도는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아뢰기 이전에 가장 먼저 자신이 믿고 있는 예수가 누구인지를 아주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참으로 연약합니다. 쉽게 무너지고 넘어지는 것이 인간입니다. 또한 아무리 성령의 충만과 믿음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것이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이런 우리들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가 누구이신지를 분명하게 알고 믿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금까지 성령께서 사도를 통해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증거해 주지 않고 고난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고난을 주신다고 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가르쳐주시기 위해 지금까지 하나님의 아들이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증거하여 준 것입니다. 

우리가 읽었던 히12:3절의 말씀에서도 또한 먼저 하나님의 아들이 누구인지를 말해주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반역한 죄인들로부터 받은 고난을 참아내신 분이십니다.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예수님은 자신을 거역한 죄인들의 반역을 참으신 분이십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거역하는 자들로부터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로부터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를 자신들의 구주로 믿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그 신앙 때문에 당하는 고난으로 인해 낙심하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피곤하다고 하는 말은 주 예수를 믿는 신앙을 그만두고 좌절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낙심하는 것은 피곤하게 된 이유, 즉 심령이 절망에 빠진 상태로 다시 뒤를 돌아 볼 정도로 낙담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결국 주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지 말고, 세상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성도들의 상태는 이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모든 시대 속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끝가지 이길 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피곤하고 낙심하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때때로 우리 이웃의 형제들이 피곤하며 낙심하여 마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처럼 그렇게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면 우리 자신들 또한 피곤하고 낙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한결 같이 먼저 거역하는 죄인들로부터 고난을 받으시고 참으신 분을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어쩌면 이 말씀이 피곤하고 낙심하여 하나님을 등지고 살려고 하는 우리모두를 치료하여 주는 처방전일 수 있습니다. 

환난과 고난 가운데 빠져 피곤하고 낙담하고 있는 인생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위로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으며, 격려를 할 수 있겠습니까? 자식을 먼저 보내고, 아니면 남편을 먼저 잃어버린 여인에게,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것이 잘된다고 하는 것을 들었는데 교회에 나오자마자 힘든 일들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복음만을 선포하고 교회를 바르게 세워야 하겠다고 하는 목양일념으로 목회를 하는데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사역자들에게 우리는 어떤 메시지로 위로를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 가운데서도 참으신 순종만이 인간의 모든 연약하고 피곤하며 낙심한 것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든 고난의 삶을 산다고 해도 죄 때문에 죽기까지 하겠습니까? 죄 때문에 우리가 피를 흘려 죽을 수 있는 상황까지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백성들의 죄를 위해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는 고난과 환난을 격고 싸울 수도 있지만, 또 죄와 싸우기는 하지만 죄를 이기기 위해 아직은 피를 흘릴 정도로 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를 이기기 위해 피를 흘려 싸우신 분이십니다. 

먼저 자신의 자녀들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피를 흘려 고난을 받으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도는 자신이 당하는 고난과 환난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도 참고 인내하시면서 피를 흘려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이것을 생각한다면 성도의 고난은 고난이 아닙니다.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로마 정치인들과 유대인들로부터 예수 믿는 믿음 때문에 고난과 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죄에 대하여 지적하여 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을 핍박하는 것은 육안으로 볼 때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이지만 진실로 성도들 대적하는 것은 죄입니다. 죄는 진리를 싫어합니다. 따라서 유대인들과 로마정치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그렇게 학대하고 죽이는 것은 진리에 대한 증오와 맹목적인 종교적 열심과 시기와 잔악한 행위의 죄악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사람과 싸우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죄와 싸우고 투쟁하는 것입니다. 성도들 괴롭고 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들과 싸우지 않습니다. 성도들을 환난가운데 몰아놓고 있는, 사람을 통해 그 일을 하게 하는 죄와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진리를 바르게 깨닫게 된다면 오늘날 혼잡하게 된 교회의 질서들이 바로 잡혀나갈 것입니다. 죄는 계속 사람을 유혹하고 사람을 조정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을 지적하고 그 사람과 싸우게 되면 죄는 금방이라도 다른 사람을 찾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사람과 싸우면 안 됩니다. 죄라고 하는 영적 실체와 싸울 때 교회와 성도는 거룩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눈에 보이는 사람들과 싸우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교회의 어떤 지도자가 거짓 복음을 전한다고 합시다. 아니면 그 사람이 돈에 탐욕이 있다면 성도들은 그 지도자와 다투지 말고, 그 지도자를 그렇게 만든 죄의 세력과 싸워야 합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죄라고 하는 것을 교회공동체가 인식하고 있다면 그런 거짓 지도자가 강단에 설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거룩한 공동체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구성원들이 이러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사람과 다투고, 또 다투는 것입니다. 끝이 없는 싸움이 계속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계속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혼란과 싸움에 빠져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언제 우리는 죄의 실체를 올바르게 볼 수 있습니까? 이러한 죄의 실체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열심과 헌신을 성실하게 나타내지 않는다면 시험을 당할 때 우리의 믿음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마땅히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난당하는 삶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지킬 수 있는 또 하나의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것을 잊어 버렸습니다. 125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식들에게 말씀하셨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그 말씀을 잊어 버렸습니다. 그 말씀은 잠언의 말씀입니다(3:11-12).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에게 징계와 채찍이 주어집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지금 이 말씀을 하여주시는 것은 현대교회 안에 들어온 번영신학과 기복주의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우상숭배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이 없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에게 징계를 하십니다. 그리고 환난과 고난이라고 하는 것을 통해 그들의 신앙을 계속 연단시키시고 하나님만이 자신들의 전부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런데 번영신앙을 가르치는 거짓목사들은 성도가 고난을 받고, 환난을 받으면 마치 욥을 정죄한 세 친구들처럼 그런 정죄로 성도들 대합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면 성공하고 잘되는 것인데 신앙생활을 잘 못하니깐 그렇게 지지리 못산다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질병이 생기면 더더욱 정죄합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몸이 아프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때론 징계도 하십니다. 또한 채찍도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징계는 자신의 자녀들이 신앙 안에서 더 거룩하게 되어지며,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하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 믿는 믿음으로 이끄시는 징계입니다. 이것을 시편 기자 알고 시편에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유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119:71). 성도에게 고난이 없다면 하나님의 법을 올바르게 깨닫지 못합니다. 율례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신 신앙의 법칙입니다.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에게 고난이 없다면 성도는 교만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고난 가운데 있다는 것은 우리의 뜻을 꺾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세우기 위한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그 고난을 통해 성도는 계속 자라게 되며 거룩한 모습으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1세기 성도들은 형벌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들의 죄 때문에라도 형벌을 당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형벌을 이미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셨기 때문입니다. 형벌은 하나님과 원수된 자들이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징계는 하나님의 자녀들만 받습니다. 이 당시 성도들은 로마와 유대인들로부터 형벌을 받고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죄목 때문에 죽음의 형벌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들이 형벌을 받는다고 하지 않습니다. 징계를 받는다고 하십니다. 이 징계는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주어집니다. 그것을 쉽게 이해해주기 위해 육신의 부모들이 자식을 징계하는 것에 비유하여 주고 있습니다. 육신의 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올바로, 그리고 온전한 자로 성장하며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녀를 징계합니다. 이렇듯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믿음의 자녀들에게 동일한 마음으로 자녀들을 징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고난을 당하는 자들에게 그것이 형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라고 하는 것을 알라고 하십니다.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형벌을 내리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것으로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비록 그 징계가 받는 당시는 받기 힘들고 어렵지만 하나님은 오직 자신의 자녀들의 유익을 위하여 그 징계를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 하게 하시기 위해 징계를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이 육신의 눈에 보이는 것과 싸우지 말고 죄와 끝까지 싸우라고 하십니다. 성도는 죄와 싸울 때 고난 가운데 처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비록 힘든 인생의 굴곡진 길을 가게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녀들을 끝까지 보존하여 주십니다. 늑대와 사자의 굴속에서도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모든 택함 받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고난을 주십니다. 그리고 징계도 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언제나 유익합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은혜의 방편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징계도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은혜라고 하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세상과 죄는 우리들을 괴롭게 하고 고통을 주며 때론 생명도 빼앗아 갑니다. 그러나 성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늘 승리합니다. 힘들고 어렵고, 육체의 고통 가운데 있을지라도 기뻐하시는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아멘.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 <현대 칭의론 논쟁>, <요한계시록 설교>(우리시대, 2018)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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