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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세워지는 교회로서의 장로교회

장대선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9. 1. 16.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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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안에서 뿐 아니라 구약성경의 경우에 더욱이 이 땅에 세워지는 교회는 유기적으로 조직된 어떤 체계를 이룬 것을 볼 수 있다. 예컨대 바빙크가 유기체적인 교회에 대해 처음에 족장들의 가족들에게, 그 후에는 이스라엘 민족 안에, 그리고 그리스도의 임재 이후에도 땅 위에 그가 자신의 교회에 세우신 특별하고 항존적인 다양한 직책들이 있었다.”고 설명했던 것에서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듯이, 족장들의 시대로부터 신약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상의 교회는 일정한 체계를 정립하면서 계속해서 어떤 유기체적인 특성을 유지해 왔던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는 최종적으로 교회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체계가 확립되었으니, 영원 전부터 중보자로 정해진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왕이요 제사장이며, 또한 선지자이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어 다 이루었다”(19:30)고 하신 말씀은 단순히 구속의 완성만을 내포한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있는 교회의 체계까지도 다 완성(성취)하심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오르사 성부의 우편에 앉아 교회의 모든 일들을 완성하셨지만, 그의 권위를 그의 사람들(제자들과 교회의 사역자들)을 세워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17:18)다고 말씀하셨다. 그 때에 또한 이르시기를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22)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하신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20)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뒤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사람들 가운데서 특별히 베드로에게 이르시기를 내 양을 먹이라”(21:17)고 하셨으니,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6:19)고 하신 말씀을 여전히 베드로에게 두셨던 것이다. 물론 교회가 선 진정한 반석은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께서 그를 세우셨으나(17), 분명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과 그의 여로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기셨다(25:14).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는 그의 일꾼(직분)들에게 위임하심으로써 착하고 충성된 종”(21)으로 삼으셨고, 그들을 통해 복음을 모든 피조물들에게 전하며 선포하시기를 기뻐하셨던 것이다(28:18-20). 따라서 그리스도에 의해 최종적으로 완성된 교회는 결코 어떤 형태와 체계로서의 정치(교회정치)가 없이는 세워질 수 없는 것이며, 그런 정치체계에 대해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는 유일한 원천이었다. 그러므로 가장 나중에 사도로 부름을 받은 바울은 이르기를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karin, karis)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고전 3:10)고 말하면서, 더욱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라고 했다. 물론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나, 그런 예수 그리스도의 터는 그의 제자들인 사도들이 닦은 터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터, 곧 사도들이 닦아 두매 다른 이(이후의 다른 교회의 사역자들)가 더욱 확고히 세웠던 교회의 틀(교회정치 형태)은 무엇이었을까? 바빙크는 그의 개혁교의학 4권에서 교회에 관해 진술하는 가운데 이르기를 성경적이고 초대교회(사도시대의 교회)의 순수한 교회정치제도로서 귀족적인 장로교회정치제도(aristocratisch-presbyterale kerkinrichting)가 있었음을 언급한 바 있다. 아울러 그처럼 순수하고 성경적인 장로교회정치제도가 점차 타락하여 나타났던 것이 군주적인 감독교회정치제도(monarchisch-episcopale kerkinrichting)임을 말하면서 각각 구별하여 다룬 것을 볼 수 있다.

고전 12:28절에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해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임을 전제하는 가운데 이르기를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heafayta)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본문에서 교회의 일꾼들로 제일 우선시하는 것이 바로 사도와 선지자, 그리고 교사인데, 2세기 중엽 이전에 작성되어 널리 읽힌 문서들 가운데 하나인 디다케(Didache)에서부터 이미 선지자직과 교사직이 감독의 직분으로 통합되었음을 기록하고 있고, 사도직은 바울 사도와 나머지 다른 사도들의 죽음 이후로 존속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디다케에서 이미 선출된 감독들이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하던 일들을 대신했고, 그들을 선지자들이나 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존경할 자들로 교훈하고 있다고. 그러므로 그러한 양상들 가운데서 타락하여 오용하고 만 것이 군주적 감독교회정치의 형태임을 바빙크는 설명한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지교회의 독립성은 최대한 인정되었고, 다만 그 후로 신속히 장로회의 조직과 기능이 사도들의 교회에 뿌리를 내려서 지교회들의 대표회의가 법적인 효력과 기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빙크에 따르면 키프리아누스 시대까지도 주교회는 장로회의 의논과 회중의 동의를 필요로 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나중에 성직계급제도가 발달하게 되면서 회중의 동의는 점점 감소하고 지교회의 다스리는 직분으로서의 장로들과 집사들까지도 사라져버리게 되면서 오직 주교들만으로 이뤄진 공의회(synode)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나중에 그처럼 성직계급제도로 부폐한 교회정치의 형태를 개혁하여 1528년에 당시 프랑스의 지역이었던 쮜리히(Zürich)에서 열린 쮜리히 공의회에서부터 각 교회로부터 목사와 두명의 교회 대표(보통은 장로)들이 초대되어 회의에 참석했다. 그리고 1559년에 파리 공의회부터는 오늘날 장로교회정치제도와 거의 동일한 형태였는데, 이후로 지역 공의회로서의 지방회’(대회)가 소개되었고, 1572년에는 노회(classis)가 소개되었다. 그러므로 원래의 순수하며 성경적인 교회정치의 형태를 따라 더욱 확고히 세워진 것이 바로 장로교회정치의 형태인데, 로마 가톨릭교회가 확고하게 형성되었던 시기까지는 주로 그러한 장로교회정치와 다른 군주적 감독교회정치제도가 오래도록 교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바빙크는 초기 프랑스에서 확고하게 다시 형성되었던 장로교회정체의 형태에 대해 반대하는 세력들이 로마 가톨릭교회의 감독주의정치체제 외에도 있었다고 밝힌다. 즉 총회의 소집권과 총대권, 그리고 의장직까지도 관원에게 두는 에라스투스주의(Erastianism)와 재세례파의 지속적인 영향으로 지교회가 철저히 독립적이라고 생각하는 독립교회파에 의해 계속적인 반대가 있었다고 한다. 특히 에라스투스주의는 쯔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와 항론주의자들이 지지했었는데, 바젤의 종교개혁자 오클람파디우스(Johannes Oecolampadius, 1482-1531)는 관원에 대한 교회치리의 독립성을 제안하여 장로교회정치로서의 독특한 교회정치의 형태를 고수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처럼 장로교회정치의 형태는 군주적인 감독주의정치체제에 기반을 두는 로마 가톨릭교회로서의 오용과 부패가 나타나기 전부터,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를 닦은 사도들에 의해 이미 신약시대로부터 잘 소개되었던 이 땅에 있는 교회의 실제적인 정치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감독주의정치 뿐 아니라 에라스투스주의나 독립교회파 등에 의해 지속적인 반대를 받았던 형편 가운데서 면면히 존속해 오고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과정들 가운데서 영향을 받거나 다시 오용되고 만 부분들에 대해, 말씀(성경)을 근거로 하는 지속되는 개혁의 교회로서 장로교회정치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 바로 교회를 세우는 길이며, 그러한 교회에 속하게 될 때에 비로소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한 것을 확신하며 또한 더욱 드러내는 역할을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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