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개신교 신앙은 그 태동에서의 엄밀한 신앙노선과 달리 매우 느슨해져 있는 신앙체계들을 이루고 있는데, 모든 회중들이 공식적으로 모이는 ‘주일’(the Lord's day)의 체계에서부터 다시 개혁해야 할 대상이 되어 있는 실정이다. 특히 안식교(Seventh-day Adventist Church, SDA)도들이 구약의 안식일과 연계되어 있는 제4계명에 대한 철저한 준수를 위해 제칠일에 안식일로서 엄격하게 지키는 것에 대한 반대로 제4계명이 ‘의식법’(儀式法)으로서, 다른 율법들과 달리 모든 민족들에게 제시하시지 않은 것에서 이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고(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며, 오히려 이스라엘 민족으로 들어온 이방인은 이스라엘과 동일하게 안식일 규례를 적용받았다) 주장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청교도(Puritan)들을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개신교회들이 로마가톨릭처럼 미신적인 종교에서 분리되는 과정에 있어서, 주일을 제4계명의 성수로 연계하는 문제는 예배의식들에 대한 개혁과 더불어 아주 중요한 저항(protest)의 주제였다. 그러므로 로마가톨릭과 영국 국교회가 공히 그러한 저항으로 구별되는 청교도들의 순수성을 무너뜨리려고 애를 썼는데, 1618년에 제임스 1세(James I, 1566-1625)의 명으로 출판된 퍼스(Perth)의 5개 조항과 찰스 1세 (Charles I, 1600-1649) 때인 1633년에 포고된 오락의 책(혹은 포고문서, A Declaration to encourage Recreations and Sports on the Lord's Day)을 목회자들에게 강요하여 따르도록 했다.
이러한 역사는 김영규 교수가 그의 『17세기 개혁신학』이라는 책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특히 pp. 52-54에서 소개한 ‘오락에 관한 포고문서(1633)’의 내용은 그 순수성의 근원인 ‘non-conformity’를 전혀 잃어버린 개신교(특히 장로교)의 정체성 상실을 실감할 수가 있다. 특별히 찰스 1세의 오락에 관한 포고문에서 주일날 오락을 허용토록 한 명분은 신민(臣民)들의 복지 차원이었다. 즉 “신민들은 주일 내내(주 중에) 심하게 일하는 천한 자들(흙수저)이다. 그들의 영혼에 새로운 활력을 집여넣기 위해서는 오락을 허용해야 하고, 그것을 금하는 것은 그들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 된다”는 것이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포고는 권고문의 성격이 아니라 법령(法令)으로서, 오늘날의 ‘성소수자(동성애자) 차별금지법’보다도 더욱 엄중한 성격이었다. 그러므로 주일날 오락을 허용토록 하는 법령을 왕과 주교(Bishop)가 일체하여 포고했던 것이다.
그런데 주일날의 오락을 허용하는(장려하는) 포고문은 그처럼 엄중했을 뿐 아니라 교묘하기도 한 것이었으니, 그것은 주일성수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일요일(분명 Lord's day가 아니다) 저녁기도 후(after evening prayer), 일요일 오후(upon the Sunday's afternoon) 혹은 모든 신적인 예배종결 후(after the endung of all divine service)에 그러한 오락이나 스포츠를 즐기도록 허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엄중하고도 교묘한 그러한 포고문에 대해, 당시의 청교도들은 엄격한 이들(Precisians)이었으며, 온종일(24시간) 주일성수를 강조하는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주일에 하는 가벼운 오락이나 건전해 보이는 놀이(honest mirth or recreation)까지도 전혀 수용하지 않고, 왕과 주교들이 일치하여 포고한 것에 순응하지 않은 자(non-conformist)들이었다.
물론 당시에 청교도들 가운데에는 non-conformist들 만이 아니라 conformist들 또한 있었다. 하지만 더욱 순수한 청교도들은 non-conformist들이었다. 그리고 그 때에 포고문에 순응하지 않았던 근거는 제4계명을 의식법으로서가 아니라 도덕법으로 여전히 적용하는 율법의 원리에 있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장로교인들을 포함한 거의 모든 개신교인들의 주일의 모습은 오락에 관한 포고문에 철저히 순응하는 모습이다. 각자의 가정에서 성경과 경건서적을 읽으며 쉬었다가 저녁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던 전통은, 교회성장(사실은 敎勢성장)과 맞바꾸어 주일오후 3~4시 이후로는 오락이나 스포츠, 쇼핑이나 심지어 유흥에 이르기까지 가히 모든 주중의 일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행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제4계명이 도덕법으로 굳건히 있기에, 그렇게 행하는 것은 대놓고 율법을 범하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주일 오후에 모든 공식적인 일정을 마치더라도, 그 이후에 각 가정에서 주일에 합당한 태도가 무엇인지를 여전히 생각하며 안식해야만 하는 것이다.
감사하게도 오늘날에 제4계명을 엄밀히 준수한다고 해서 제재를 당하는 일은 없다. 공권력과 종교적 기득권에 의해 강제되는 포고령이 존재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얼마든지 불순응으로 인한 어려움 없이도 제4계명에 적극 순응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많은 신자들(특히 장로교인들)이 합당한 법집행에는 불순응 할지언정, 전혀 강요되지 않으나 사실은 여전히 중요한 계명으로 있는 제4계명의 순응을 주일날 시행하는 몇 차례의 예배로만 끝내버리고 있다. 그러나 단언컨대 그렇게 하는 것은 순응할 것과 순응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전혀 구별하지 못하여, 오히려 1633년에 순수한 신앙의 확산을 막고자 왕과 주교들에 의해 포고된 오락에 관한 포고문서에 순응하는, 순수하지 못하여 반드시 개혁해야만 하는 ‘죄’와 ‘악’이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3)
장대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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