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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가장 최악으로 보이는 사람’이 ‘가장 본질적인 지체’일 수 있다.|

장대선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9. 5. 1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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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신학대학원에서 역사적 개혁신학을 표방하는 조직신학회원으로 활동할 당시에 흔히 들었던 말이 바로 조직신학회 출신들은 그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해 행동하는 것 때문에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최근까지 S·N·S에서 개혁신학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활동하는 분들 가운데서 똑같이 개혁신학을 표방하는 다른 분들의 비판적이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별로 비판적이지 않은 분들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의 글을 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컨대 그러한 비판은 원리적으로 나는 예수가 아니라 예수를 믿는 자들 때문에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말하는 자들의 비판과 동일한 맥락일 것이다. 참된 신앙은 말하는데 있지 않고 실천하며 행동하는 데에 있다는 맥락 말이다.

 


얼핏 그러한 비판들은 자성(自省)의 목소리로 들리는데, 고전 4:20절에서 사도는 이르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하여 그러한 자성을 뒷받침 해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잘 아는바 고전 4:20절은 분명 하나님의 나라(ἡ βασιλεία τοθεοῦ)”를 언급하는 가운데서 오직 능력에(ἀλλ᾽὿ἐν δυνάμει)” 있다고 하여, 그 능력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인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말로서 확장되는 성격이 아니며, 더구나 우리의 행실로서도 결코 아닌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으로서 확장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니, 19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우쭐대며 무엇이든 부풀리는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라고만 하지 않고 주께서 허락하시면(원하신다면)……이라는 단서(但書)를 달아서 말한다.

 

특별히 고전 12:27절에서 사도는 교회로 모이는 신자들에 대하여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ἐκϏμέρους)”고 말하는데, 그에 앞서 22절에서는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다고 하여 약하다(ἀσθενής)’불완전한지체들, 13절에서 언급한 헬라인(유대인들에 비해)’이나 (자유인에 비해)’들이 한 성령 안에서 오히려 더 요긴하고 없어서는 안될 지체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언급하는 모든 내용들은 교회를 이루는 지체들인 신자들의 은사(χάρισμα)’직분(διακονία)’사역(ἐνρνημα)’들에 관한 것들을 말하고 있다. 교회를 이루는 다양한 신분들(유대인, 헬라인, , 자유인 등)만이 아니라, 다양한 역할들과 직분들에 관하여 모두가 필요(必要)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고전 12:28절 이하에서는 방언(γλσσα)’과 관련하여 언급하고 있으며, 14장에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교회 안에서 방언을 사용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분명히 은밀히 하나님께 말하는 방언하는 자(고전 14:2)’에 비하여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고전 14:3)” ‘예언하는 자(δὲ὿προφητεύων)’를 더욱 사모하라고 하여, 방언하는 자들을 덜 요긴한 지체로서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고린도전서의 맥락 가운데서 보면, 개혁신학을 표방하면서 타인에 대해 지나치게 직선적이거나 도전적인 지체들이 바로 연약한 자들이라 할 것이다. 그들은 개인적인 수준에서의 개혁주의를 표방할 뿐, 아직 남을 세움으로서 교회에 덕이 되는 공적 수준의 사역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한 개혁자인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전서에서 사도는 바로 그러한 자일지라도 여전히 교회 안에서 한 지체이며 요긴한 지체임을 인식하여, 오히려 그(덜 귀히 여길 만 하며 못난 자들)에게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라고(고전 12:23) 말한다. 왜냐하면 이미 귀하고 굳건한 믿음 가운데 있는 자들은 그처럼 귀히 여기는 것이 굳이 필요치 않기 때문(고전 12:24)이다.

 

결국 고린도전서 12장에서 14장은 사도가 교회 안에서 부족하고 연약한 지체들인 헬라인(유대인에 비해), (자유자에 비해), 방언하는 자(예언하는 자에 비해), 여자(남자에 비해)를 더욱 귀히 여기라고(고전 12:23절은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라고 했다) 말하고 있으며, 이로 보건데 날카롭고 투덜대는 것 같은 개혁자들을 오히려 귀히 여기는 것이 개혁된 교회들의 바른 아량(雅量)이라 하겠다. 한마디로 고전 12:25절에서 말하는바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사로 같이 돌보게하신 것이 바로 교회인데, 교회 안에 부족하고 연약한 자들을 섞어 놓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점(“ὁ὎θεςσυνεκρασεν고전 12:24)에서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말틴 부처(Martin Bucer, 1491-1551)1538년에 쓴 참된 목회학이라는 책의 1장 그리스도인들의 교제에 관하여: 교회란 무엇인가?”에서 이르기를 그리스도인들은 한 몸이며, 각 지체는 한 몸 안에 있는 지체들처럼 몸의 공동적 개선을 위한 각자의 특별한 직무와 사역을 가진다고 말하면서, 더욱 이르기를 하나님은 각 그리스도인에게 각자의 직무와 사역을 지정하신다. 직무와 사역에는 많은 종류들이 있다. 그리고 가끔 교회에서 가장 작은 것처럼 보이고, 가장 최악의 의무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의 가장 본질적인 지체들이다. 가장 약한 지체들은 가장 주의 깊게 대우받아야 하며 그리고 모든 지체들은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면서 서로 서로를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성경(고린도전서)에 바탕을 두고서 말틴 부처를 비롯한 아름다운 지체들인 참된 개혁자들(참된 종교개혁의 계승자들인 신자들), 개혁된 신앙을 앞세워서 까칠하게 논쟁하기를 좋아하는 미숙한 개혁자들과 공적인 자리에서도 알 수 없는 소리로 방언하기를 좋아하는 지체들일지라도, 오히려 귀중함을 더하는 자들이어야 마땅할 것이다. 바로 그러한 것이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고전 4:20)”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의 현현(顯現)이니, 바로 그런 것이 눅 17:20-21절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ἐντς὏ὑμν὎ἐστιν) 있느니라.”는 말씀의 의미하는 바다.

 

그러나 모든 것에 앞서서 더욱 명백한 것은,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들의 말과 행동(실천)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하나님의 능력)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바라보는 믿음이 바로 개혁자들의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이 되는 신앙인 것이다.



장대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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