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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1:2-11 / 세례 요한

박석중목사(대전)

by 김경호 진실 2019. 8. 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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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요한은 제사장 사갸랴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편안한 삶을 포기하고 빈들에 가서 살았습니다. 광야에서 약대 털옷을 입고,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을 때 그는 순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앞길을 예비하는 선지자의 사역을 감당한 사람입니다. 요한은 오직 그리스도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며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1. 요한의 갈등과 질문


2절에 “요한이 옥에서....” 요한이 왜 옥에 갇혔습니까? 헤롯왕이 자기 동생의 아내를 취했는데 그것을 요한이 책망했습니다. 이것은 요한이 죽음을 각오한 용기있는 행동이고 믿음으로 한 일이었습니다. 요한은 왕도 두려워하지 않고 의를 위해 살았습니다. 그러자 폭군 헤롯은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의로운 사람은 감옥에 갇히고, 큰 죄를 지은 헤롯은 왕궁에 있습니다. 그 요한이 감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들었습니다. 기적을 행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고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갈등하고 의심하는 마음이 생긴 것으로 봅니다. ‘큰 죄를 지은 헤롯을 그냥 두시는지, 의를 행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다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나를 왜 건져주지 않는지, 기적을 행하고 죽은 사람도 살리시는 예수님에게는 나를 건져주는 일이 어려운 일이 아닐텐데’ 이런 고민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다가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 물었습니다. 3절에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선생님이 정말 구약 성경에 예언된 메시아입니까? 정말 그 주님이십니까? 정말 그리스도입니까?’라고 물은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메시야인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외치며 그리스도를 소개했습니다. 세례를 베풀면서 “내 뒤에 그리스도가 오실 터인데 그는 나보다 먼저 계신 자요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이다.” 증거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기를 구해주지 않고 또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면 악한 헤롯을 멸하고 이스라엘 나라를 구하실 것으로 기대했는데 오히려 악한 헤롯은 더욱 잘되고, 의로운 요한 자신은 옥에 갇혀 고통당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요한의 갈등은 시작된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답변


첫째. 4-5절에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이사야 35:5-6에 보면 메시야가 오시면 이런 일을 할 것이라고 예언해 놓았습니다. 이 예언대로 예수님이 병든 자들을 고치고 기적을 베풀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둘째. 6절에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요한이 일시적으로 신앙이 잠들어 있는 것을 예수님이 지적하면서 실족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의롭게 살다가 실족하지 마십시오. 의롭게 살고 있다면 그 자체가 복입니다. 예배 빠지지 않고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 자체로 복입니다. 십일조 열심히 하고, 선한 일에 내 물질을 바르게 사용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 우리는 이미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늘 착한 일에만 힘쓰고, 나쁜 일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여러분은 복된 사람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시험에 빠지지 맙시다. 사탄은 착한 사람, 의롭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 선한 일에 힘쓰는 사람을 시험하여 넘어뜨리려 합니다. 그렇게 살아봐야 너만 손해라고 속삭이며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세례 요한도 잠시 흔들렸으나 결국 말씀으로 이겼습니다. 의를 위해 고난당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 알았습니다. 우리가 힘들 때가 있습니다. 착하게 살아서 힘들고, 정직하게 살아서 힘들고, 말씀대로 바르게 살려고 하는 것이 힘들고, 열심히 봉사하느라 힘들고, 순수한 신앙 지키느라 힘들 수 있습니다. 힘들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복임을 확인하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6:9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3. 요한에 대한 주님의 평가


요한의 제자들이 돌아간 후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7절에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세례요한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여론에 따라 움직이거나 사람의 요구에 의해서 움직이는 나약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8절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세례요한은 왕에게 아부하고 권세를 얻어 호화로이 연락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에 대하여 바로 알고 바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9절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예수님은 요한을 선지자보다 나은 자라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직접 소개했기 때문입니다.


7절에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8절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9절에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같은 말씀을 반복한 것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해봅시다. 우리는 무엇을 바라고 예수님께 나옵니까? 우리의 관심거리는 무엇입니까? 무엇에 초점을 맞춥니까? 우리는 무엇을 보려고 예배당에 나왔습니까? 진정한 예배는 드렸습니까? 주님을 제대로 만났습니까? 천국을 경험했습니까?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고 도전을 받았습니까? 우리의 시선을 어디를 향합니까? 주님을 제대로 만나야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해야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세례요한에 대한 주님의 평가입니다. 11절에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세례요한을 제일 크다고 하신 것은 그가 깨달은 진리가 크다는 뜻입니다. 그 때까지 예수님에 대하여 제일 많이 깨닫고 증거한 사람이 요한입니다. 11절 끝에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이 말씀은 신약시대에는 지극히 작은 성도라도 세례요한보다 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보다 더 많은 진리를 깨달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큰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신 자리에서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을 잘 감당합시다. 주님께서 인정하실 큰 자가 됩시다. 하나님 나라의 큰 자로 살아갑시다.




대전 탄방교회 박석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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