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넬료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보면 놀랍습니다. 사도행전 10장 1-48까지 한 장 전체를 할애하여 고넬료에 대해서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겨우 이름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 많고,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 요셉에 대해서도 단 몇 줄로 설명이 끝나버립니다. 그러나 고넬료를 위해서는 장장 48절이나 되는 한 장 전체를 할애해서 고넬료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경건한 사람 고넬료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고넬료는 경건한 사람입니다.
2절에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고넬료에 대한 성경의 첫 서술이 ‘그가 경건하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보통 말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고넬료는 경건생활을 하기 힘든 상황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째, 고넬료는 유대인이 아닙니다. 만약에 유대인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건했다면 우리가 이해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유대인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에서 태어나서 신앙적 분위기에서 자라고 말씀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유대인이 아닙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가 심히 어려운 형편에 살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그의 직업은 군인입니다. 1절에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고 했습니다. 백부장이란 자기 밑에 100명 부하를 거느리는 군대 장교를 가리킵니다. 이 사람은 윗사람의 명령을 받는 사람인 동시에 아랫사람들을 돌보고 관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군대라는 곳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건하게 살기가 힘든 환경입니다. 셋째, 더구나 고넬료는 로마의 식민지로 있는 유대나라에 파견되어 치안을 담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강대국인 로마 사람이면서 군대의 장교인 고넬료가 자기가 지배하고 있는 약소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받아들여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그는 자신 뿐 아니라 온 가족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2절에 보면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것이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신앙생활 잘하는 것은 얼마나 복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7절에 보면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고넬료 밑에 있는 부하 중에 경건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족에게 전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신앙의 영향을 끼치는 일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런데 고넬료는 자기의 직속 부하들을 신앙으로 감화시켜서 하나님을 믿게 만들고 경건한 사람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22절에 보면 고넬료의 부하들이 베드로를 찾아가서 자기들의 상관 고넬료에 대해서 칭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넬료의 신앙에 감화되어 존경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2절에 ‘경건’과 ‘경외’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경외’라는 말은 하나님을 향한 외경심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의미하고, 경건은 그런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삶의 자세와 태도를 말합니다. 즉 마음속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경외이고 그것이 겉으로 나타나면 경건입니다. 따라서 경건한 사람은 세속에 물들지 않고 자기를 잘 지킵니다. 경건한 사람은 죄에 빠지지 않습니다.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뿐입니다. 저는 성도들이 경건에 있어서만은 세상 사람들보다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 성도들보다 뛰어난 것 많습니다.
더 부자도 있고, 더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있고, 권세가 높은 사람도 있고, 재능이 뛰어난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경건함에 있어서만은 성도들이 앞서고 뛰어나야 합니다. 만약 우리 성도들이 불신자들보다도 진실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하다면, 그리고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서로 사랑하지 못한다면, 무엇으로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고 세상을 변화시키겠습니까? 믿는 성도들은 경건에 있어서만은 뛰어나야 합니다. 성도들이 경건을 잃어버리면 생명력을 상실합니다. 성경에 보면 성도들이 경건하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아내를 삼음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타락했을 때 물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소돔 고모라는 왜 멸망시키셨습니까? 한마디로 경건치 아니하다가 멸망을 당했습니다. 예루살렘 성도 의인 한명이 없어서 멸망을 당했습니다. 시편 12:1에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도소이다.” 경건한 자가 끊어지는 것이 이 시대의 위기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시대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공경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이 막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따라 그들이 은밀한 곳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십시오. 그들의 정신 상태를 보십시오. 하루 종일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갑니까? 하루 종일 무슨 말들을 하면서 살아갑니까? 죄를 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악을 악인 줄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시고 내 말을 듣고 계신다는 의식이 없습니다. 이제는 말세가 되어서 ‘옳다, 그르다’의 구분이 별로 없습니다. 나에게 좋으면 선이라고 생각하고 나에게 나쁘면 악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기준이 자기 자신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무서운 사상입니다. 이 사상에 세상 사람들이 오염되어 있고, 기독교인들도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죄에 대한 분명한 시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죄라고 말씀하신 것을 사람들은 죄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죄 속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이것이 말세적인 현상입니다 이러한 때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성도들이 보여주어야 합니다. 사람을 만날 때, 대화할 때, 일할 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느끼게 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배우는 이유는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는 데 있습니다. 성경을 배운 다음, 은혜 받은 다음,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이 생겨야 합니다. 성경을 배웠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 사람은 성경을 잘못 배운 것입니다. 존 칼빈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지식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 지식을 배교에 이용한다.’ 믿는 사람이 타락하면 안 믿는 사람보다 더 악해지고 더 교만해집니다.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경건하게 살아가도록 힘씁시다. 여러분들이 고넬료처럼 경건한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2. 고넬료는 백성을 많이 구제했습니다.
2절에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4절에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하였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로마의 행정관으로 식민지 땅 이스라엘에 와서 다스리면서 무엇이 아쉽고 무엇이 안타까워서 자기 백성도 아닌 식민지 백성을 구제하고 도왔을까요? 무엇 때문에 자기의 돈을 들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많이 구제했을까요? 이것은 그가 하나님을 진실히 섬긴 증거이며, 성경에서 말씀하는 이웃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모든 성도에게 본보기가 되는 보물 같은 사람입니다.
야고보서 1:27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신앙생활은 하나님께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어서 생명과 능력과 은혜와 사랑을 받은 다음에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사랑의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사랑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돈이 많다고 구제할 수 있는 것 아니고 가난하다고 구제 못하는 것 아닙니다. 구제는 믿음과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진정으로 사랑을 베풀어서 원수들에게까지 칭찬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신자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열심은 그래도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에 있어서는 많이 부족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처럼 인간관계가 잘못되어 있고, 망가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믿음이 건강하고 올바른 믿음인지 점검하고 살피려면 인간관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4:20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3. 고넬료는 항상 기도했습니다.
2절에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절에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4절에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고넬료는 기도에 항상 힘썼습니다. 시간을 정해 놓고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 응답해 주실 만큼 진실히 기도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취약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기도입니다. 가장 힘써야 하고, 가장 많이 해야 하는 것이 기도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우주에 있는 모든 것들은 에너지가 있어야 움직입니다. 에너지가 없는 운동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고넬료가 하나님을 경외하여 경건하게 살았고 이웃을 사랑하여 구제를 많이 했는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힘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기도입니다. 기도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능력은 나올 수가 없습니다. 기도를 많이 했기에 능력 있게 신앙을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는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요,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요,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 없이는 진정한 신앙생활은 이루어지지가 않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기도를 쉬는 것은 죄라고 했습니다. 땅 위에 기도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기도를 대치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기도는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피곤해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질 것을 알면서도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기도 생활을 잘 하려면 기도하는 시간을 마귀에게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합시다. 기도 시간은 새벽 시간이 제일 좋습니다. 새벽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기도부터 하는 습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고넬료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주셨습니다(3절). 고벨료를 위해서 베드로에게 부정한 짐승이라도 잡아먹으라는 환상을 보게 하셨습니다. 이방인과 상종하지 않았던 베드로의 마음을 바꿔주시고, 베드로를 그 집으로 가게 만들고,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설교할 때 성령을 내려주셔서 큰 은혜를 받게 하셨습니다. 고넬료에게 은혜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분주하게 역사하시고 일 해주셨습니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 해주시므로 내가 할 일이 줄어듭니다. 기도하면 염려와 근심이 없어지고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기도하면 마귀의 역사를 막아주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죄를 짓지 못하고, 죄를 짓는 사람은 기도를 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은 고넬료 같은 경건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올바른 인간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시대의 고넬료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대전 탄방교회 박석중 목사
http://www.tbch.or.kr/bbs/board.php?bo_table=yp_board04&wr_id=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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