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이방의 여러 지방으로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시다가 다시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주님이 태어나신 곳은 유다 땅, 베들레헴입니다. 그러나 사역은 주로 갈릴리에서 하셨습니다. 첫 사역지가 갈릴리였고, 마지막 기적을 행하신 곳도 갈릴리입니다. 갈릴리는 시골입니다. 촌구석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장소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있고, 기적이 있고, 치유가 있는 장소입니다. 우리 교회가 갈릴리와 같은 은혜 받는 장소, 축복의 장소가 되기를 원합니다. 은혜가 넘치는 곳,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레는 곳, 힘들 때 돌아보면 다시 힘을 얻고 위로가 되는 그런 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1. 귀먹고 말 더듬는 자
주님께서 갈릴리로 가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32절에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이 사람은 이중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귀먹었습니다.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말을 더듬는 자였습니다. 듣지 못하면 말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사람들과 대화할 수 없고 교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이 사람이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주님은 이 귀먹고 말더듬는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2.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침
33절에 보면 예수님은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조용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이 병자에게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하고 예수님께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환자와 인격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갖기 원하신 것 같습니다. 이 병자가 시끄럽고 복잡한 곳에서는 주님이 만져주시는 감촉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할 수 있는 은밀한 장소가 얼마나 귀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신자들이 주님과 깊이 교제하고 은혜 받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으로 가야 합니다. 조용한 곳으로 가신 주님은 그를 치료하기 시작했습니다.
33절에 보면 자신의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으시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주님은 능력이 많으셔서 환자에게 손을 대지 않고, 말씀만 하셔도 환자를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방법을 사용하신 것은 환자와 직접 접촉하며 뜨거운 사랑을 표시하신 것입니다. 이 병자는 주님의 부드럽고 따뜻한 손길을 경험했습니다. 주님은 문제가 있는 곳마다 직접 만져주셨습니다. 귀와 혀를 만지며 안수하셨습니다. 외롭고 답답한 생활을 해왔던 이 병자에게는 은혜의 순간이고 감동적인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것은 이 사람에게만 사용하신 독특한 방법입니다. 우리들에게 은혜주시는 것도 이렇게 독특한 방법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특별한 방법으로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드리지만 주님은 각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은혜를 주십니다.
34절에 보면 주님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탄식은 단순한 한숨을 쉰 정도가 아니고 깊이 탄식하신 것입니다. 고통 받는 병자와 마음으로 하나 되어서 대속적인 탄식을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탄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귀먹고, 말더듬는 사람, 얼마나 답답한 세월을 살아왔겠습니까? 세상의 소리를 듣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도 들을 수 없었고, 그의 혀가 무엇인가에 묶인바 되어서 기도하지 못하고, 찬양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은 이처럼 영적으로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시며 탄식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보고도 탄식하실지 모릅니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우리를 보면서 탄식하실 것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이 말은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능력이 많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신 주님이 외쳤습니다. “에바다” 에바다는 아람어입니다. 그 뜻은 “열리라”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아람어를 사용한 것이 몇 번 있습니다. “고르반”, “달리다굼”,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리고 “에바다” 입니다. 주님이 명령하시자 즉시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렸습니다(35절). 주님의 명령으로 이 사람의 병은 즉시 나았습니다. 신적인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기적이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3. 열리고 풀려야 할 것들
첫째. 귀가 열려야 합니다. 세상 소리 말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합니다. 정말 신령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셔도 듣지 못하던 자들이 있어서 주님은 답답해하며 외쳤습니다. 마가복음 4:9에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라” 하셨고, 요한계시록에 보면 일곱 교회를 향해서도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잘 듣고 있습니까? 우리가 왜 하나님과 교제하지 못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을 못해서 기도하지 못하는 것 아닙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으니까 기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말씀을 듣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로마서 10:17에 보면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생기고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자랍니다. 말씀을 들을 때 죽은 영혼이 살아나고, 구원을 받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은혜를 받게 되고,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사명이 생깁니다. 영적으로 듣는 능력이 깊어지면 남들이 듣지 못하던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러나 영적인 귀가 좋지 않으면 남들이 다 듣는 소리도 못 듣습니다. 설교를 들어도 듣지 못하고 남 얘기로 생각합니다. 내가 깨닫고 변해야 하는데 그런 은혜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듣지 못하면 깨달을 수 없습니다.
둘째. 입이 열려야 합니다. 이 사람은 혀가 굳어 있고 입이 닫혀 있었습니다. 마음속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나 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입이 열리지 않아서 말을 못하고 산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기도하고 싶은데 기도가 안 나온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 하면 되는데 이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주여” 이렇게 부르면 되는데 이 말이 안 나옵니다. 찬양의 입이 열리지 않은 분들이 있습니까? 예배를 드리면서도 찬송을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찬양의 입이 열려야 합니다. 전도의 입이 열리지 않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세상 말을 할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말하면서 말씀을 전할 때는 벙어리가 되어서 한 마디 못하는 분들이 없습니까?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비로소 듣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셋째. 눈이 열려야 합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고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가 넘치는데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은 것입니다. 천국이 분명히 있지만 보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마땅히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야곱이 나이가 많아 늙었을 때 육안은 어두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영안은 아주 밝아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분별하고 요셉의 아들들에게 축복할 때 하나님의 뜻대로 올바르게 축복했습니다. 에베소서 1:18에 보면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위해 기도하면서 마음의 눈을 밝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시편 119:18에서 다윗은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기도했습니다.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도록 기도합시다.
넷째.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이 사람은 남의 말을 듣지 못하고 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못하므로 이웃과의 교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랑을 나눌 수 없고 깊은 교제도 어려웠습니다. 항상 외톨이로 혼자 지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사람의 귀를 열어주시고 입을 열어주신 결과 이웃과 대화하며 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을 나누며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을 보면 왜 그렇게 열리지 않은 것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막혀 있고, 굳어 있고, 닫혀 있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과 막혀 있고 사람 간에도 막혀 있습니다. 가정을 보십시오. 부부간에 막혀 있습니다. 부모 자식 간에 막혀 있습니다. 자기 말만 하고 상대방의 말은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정당 간에 막혀 있습니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세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열리게 하실 줄 믿습니다. 주님이 하시면 됩니다. 주님을 만나면 됩니다. 주님께 나아가 엎드립시다. 주님께서 열어주시도록 기대합시다. 마음도 열어주시고 맺힌 것도 풀어주시기를 기대합시다. 우리 사업도 열리고, 가정도 열리고, 자녀들의 문제도 열리고, 우리의 길이 열리기를 기도합시다. 은혜의 문, 축복의 하늘 문이 열리기를 기도합시다. 오늘 이 시간 닫힌 것이 열려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대전 탄방교회 박석중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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