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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 1장 1-4절/그러나 요나가

박석중목사(대전)

by 김경호 진실 2020. 2. 18.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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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운데 ‘요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도망가다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고, 3일 만에 다시 살아온다는 이야기는 재미도 있고, 그 극적인 요소 때문에 모두가 좋아합니다. 이번에 요나서 말씀을 증거 하려고 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선지자입니다. “요나”라는 이름의 뜻은 비둘기입니다. 비둘기는 온순하고 순결한 새이며,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는데 사용됩니다. 눈동자가 항상 눈물에 잠겨 있으면서 구슬프게 우는 새입니다. 요나가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죄를 보고 눈물 흘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라고 지은 이름인 것 같습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 임함
1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세상을 다스리시고, 말씀으로 일하시고, 말씀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름을 받은 것이 복이고,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것이 큰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개인적으로 요나에게 임했습니다. 말씀이 임한 것이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 중에서 요나를 택하여 말씀을 주시고 사명을 주신 것은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어느 시대나 말씀이 임해야 은혜를 받고, 말씀이 임해야 복을 받습니다. 말씀이 임하면 사명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내가 할 일을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2절에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요약하면 “일어나라” “가라” “외치라”는 것입니다. 먼저 요나에게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일어나면 세상은 달라질 것입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니느웨는 하나님이 정해준 사역의 장소입니다. 요나가 일할 곳은 니느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정해준 사역지가 있습니다.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고 했습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질 것이라고 외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해야 합니다. 죄를 버리고 회개하라고 외쳐야 합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싫어할 수 있습니다. 핍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가서 전해야 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선교명령입니다. 나중에 요나가 니느웨로 가서 전도했을 때 니느웨 성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1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우리도 일어납시다. 그리고 가서 외칩시다. 우리가 다 나가서 외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리겠습니까?
하나님은 왜 요나를 니느웨로 가라고 하셨습니까?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입니다. 당시 앗수르는 세계를 지배하는 강대국이었고 니느웨는 그 수도였습니다. 나훔 2:8-9에 보면 니느웨는 금 은 보화가 풍부한 도시였습니다. 많은 물이 모인 곳처럼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었습니다. 그 저축한 것이 무한하고 아름다운 기구가 풍부하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풍부하고 잘 살게 되니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심히 교만하고 악하여 사치하고 방탕하면서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나훔 3:1-3에 니느웨 성을 피의 성읍이라고 했습니다. 거짓과 포악이 가득하고 탈취가 떠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죽임 당한자의 떼가 가득하고,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진다고 했습니다.
니느웨 성 사람들의 죄악이 하늘에 상달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어서 40일 후에 심판하기로 작정하고 요나에게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니느웨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기도 합니다. 죄인들을 갑자기 심판하면 멸망하고 말 것인데 그래도 회개할 기회를 주시려고 요나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노 중에도 긍휼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악한 죄인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자비하신 분이십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들었고 특별한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요나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을 피해 도망함
3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 요나의 반응은 한마디로 “그러나”였습니다. “그러나”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지만 그러나 내 생각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니느웨로 가라고 하지만 그러나 나는 그곳에 가기 싫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전도하라고 하지만 그러나 나는 전도 못합니다.’라는 뜻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니느웨로 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14:16-20을 보면 하나님께서 천국 잔치를 베풀고 사람들을 초청하는데 그 사람들의 반응 역시 “그러나”였습니다. “나는 밭을 샀으나 나가봐야 합니다. 나는 소를 샀으니 시험하러 가야 합니다. 나는 결혼했으니 갈 수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한결같이 “그러나” 하면서 핑계대면서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에 ‘그러나’라고 반응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예”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18-19에 보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미쁘시고 변함이 없는 분임을 말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항상 ‘예’만 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항상 ‘예’만 했습니다. 한번도 ‘아니요’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무조건 ‘예’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는 일까지 ‘예’하고 순종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예’라고 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받아들이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못합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복을 받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쓰시기 편한 종입니다.
더 나아가 요나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려고 했습니다(3절). 하나님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 자체가 믿음 없는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에 충만하시고 안 계신 곳이 없습니다(렘 23:23-24,) 시편 139:7-10에는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지 말고 반대로 하나님의 낯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시편 27:8에 “여호와의 낯을 구하라” 시편 105:3-4에는 “여호와의 낯을 항상 구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낯을 구하는 자가 은혜와 복을 받습니다.
더 나아가 요나는 다시스로 도망하려고 했습니다(3절). 요나는 니느웨와 반대 방향에 있는 다시스로 도망가려고 욥바 항구로 내려갔는데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있었습니다. 3절에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마침’ 이라는 말은 쉽지 않은 일인데 딱 맞아 떨어져서 잘 해결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 당시에 배가 자주 운항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가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있었습니다. 일이 착착 잘 맞아 떨어집니다. 요나는 ‘참 잘 됐다.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일이 착착 맞아 떨어지고, 만사형통 하다고 다 좋은 것 아닙니다. 이 배는 죽음으로 가는 배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잘못된 길로 가는데도 일이 잘될 때가 있습니다. 죄를 짓는대도 형통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기뻐하지 마십시오. 악인의 형통입니다. 잠언 21:4에 악인의 형통은 죄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잘못된 길로 갈 때는 오히려 그 일이 잘 안되어야 합니다. 죄악의 길로 가고 멸망의 길로 갈 때는 하나님이 그 길을 막아주셔야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일만 잘 진행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일이 꼬이고, 어려움이 많고, 아무리 힘써서 잘 안될 때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보다’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런 것으로만 찾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악인의 형통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의인의 고난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말씀 순종해야 합니다. 믿음의 길, 사명의 길로 가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칠 때 요나는 계속해서 내려갔습니다. 욥바로 내려가고, 배 밑층으로 내려가고, 바다 속으로 내려가고, 물고기 뱃속으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2장을 보면 스올의 깊은 곳으로 내려갑니다. 이것은 요나의 영적인 상태 즉 그의 신앙생활의 형편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피하고, 자기의 사명을 피하려다가 이렇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물고기도 살아 있는 물고기는 물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나 죽은 물고기는 떠내려갑니다. 신앙은 올라가야지 내려가서는 안 됩니다.

3. 요나가 큰 바람을 만남.
요나가 타고 가는 배가 큰 바람을 만났습니다(4절). 이 큰 바람은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자연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재수가 없어서 풍랑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강한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징계하고, 회개 시키고, 바로 세워서, 다시 쓰시려고 큰 바람을 보내셨습니다. 요나가 탄 배는 거의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큰 바람이 오면 모든 것이 깨집니다. 가정이 깨어지기도 하고, 사업이 깨어지기도 하고, 인생이 깨어지기도 합니다. 요나는 풍랑 때문에 다시스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 풍랑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왜 풍랑이 왔습니까? “요나” 때문입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도망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큰 바람을 보내 그를 막으신 것입니다.
요나 때문에 같은 배에 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당합니다. 요나가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치고, 믿음으로 살지 않으니까 수많은 뱃사람들이, 애매한 이웃들이 고난을 당합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인류 전체가 고통을 당하고, 아간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고통을 당한 것처럼 요나 한 사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큰 고통을 당합니다. 오늘날도 이런 일이 있습니다. 한 사람 때문에 가족들이 다 고생하고,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나라가 혼란스러워지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나 한사람쯤이야” 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귀하게 쓰임 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대전 탄방교회 박석중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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