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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주차 <구원론강설> 무엇이 거듭남인가?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20. 7. 16.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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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주차 <구원론강설> 무엇이 거듭남인가? 2020. 5. 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12~1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3:5~8)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1. 영원한 생명, 조에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착한 사람이거나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정도가 아닙니다. 그들은 전혀 새로운 사람들입니다. 이 새로워진 사람들은 새로운 생명을 획득하면서 영생의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성경에는 두 종류의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는 비오스인데 이는 각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육신적 생명을 의미합니다. 이 생명은 시간이 다 되면 죽음으로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러므로 이 생명은 유한한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음식을 먹고 좋은 환경에서 살면서, 때론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되도록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며 육신의 안락함을 누릴 때 안도감과 행복감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음악들은 모두 이 비오스를 위한 것들입니다. 다른 하나는 조에인데 이는 영원히 죽지 않는 영적인 생명을 가리킵니다. 무엇보다 이 생명은 우리가 예수를 믿고 다시 태어날 때 주어지는 생명입니다. 조에를 얻는 것을 두고 성경은 거듭난다고 말합니다. 신학적인 용어로는 중생입니다.(중생에 대해선 다음 주에 강설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선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3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실제로 역사상에서 거듭남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놀라운 업적을 쌓은 믿음의 영웅들이 즐비합니다.

 

 

1) 어거스틴(354~430)

~ 그의 젊은 시절은 방탕이었습니다. 특히 음란에 완전히 도착된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 모니카의 간절한 기도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16살의 나이에 가출하여 19살의 나이에 벌써 사생아를 낳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32살이 되었습니다. 친구 알피우스는 그런 어거스틴에게 이집트 수도사로 유명한 안토니우스의 놀라운 거룩과 희생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며 어거스틴의 마음을 돌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추한 정욕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자신의 고백록에서 이렇게 당시의 심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묵는 집에는 작은 정원이 있었습니다. 가끔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정원으로 나갔습니다. 그곳이라면 저와 자신의 격렬한 싸움을 방해할 사람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반쯤 미쳐 있었고 머리를 쥐어뜯고 두 주먹으로 이마를 쳤습니다. 손가락들을 서로 엇갈려 낀 채 두 무릎을 감싸 안았습니다.”

 

그런 어느 날, 밤새 마신 술기운에 취해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잔 그의 귀에 갑자기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톨레 레게, 톨레 레게)

 

그래서 그는 얼른 친구 알피우스를 찾아가 바울 서신 중 한 구절을 찾아 읽었습니다. 그것이 그 유명한 어거스틴의 회심을 이끈 로마서 1313~14절입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문장을 다 읽고 나자 확신의 빛이 마음에 홍수처럼 밀려들고 모든 의심의 어둠이 물러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로써 마침내 어거스틴은 거듭났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확인할 수 있냐구요? 이후로는 두 번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어거스틴의 심령의 정원에 성령의 바람이 불었던 것입니다. 그 바람은 아이들의 노랫소리로 불었고 성경의 말씀으로 불었습니다. 그러자 어거스틴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던 어둠의 구름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밝은 빛이 비추었던 것입니다. 이 밝은 빛으로 어거스틴은 영원한 생명인 조에를 얻은 것입니다.

 

 

2) 길선주 목사

~ 우리나라 장로교 최초의 7인 가운데 한 사람이자 3.1운동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길선주 목사는 25세 때까지 선도(仙道)를 배웠으나 189628살의 나이에 회심을 하였습니다. 길 목사님은 19세에 병을 고치려 용악산에 입산한 뒤 관성교에 입교하여 주문을 외우며 살다가 마펫 선교사가 건네준 기독교 서적을 읽고 예수가 참 구주인지 알려 달라고 기도했는데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안에 옥피리 소리가 가득하더니 곧이어 천지를 진동할 만큼 요란한 총소리 같은 것이 울려 퍼지더니 공중에서 길선주야 길선주야 길선주야하고 세 번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그때 마음의 문이 열리면서 방성대곡의 울음이 터졌다고 합니다. 이후 길 목사님은 한국 기독교 사상 최초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목회자요 부흥사로 1910년에는 1백만 구령운동을 전개하며 60여 개의 교회를 설립했습니다. 특히 교회당 안의 남녀를 구분하느 휘장을 최초로 없애버린 인물입니다. 1912년에는 105인 사건에 휘말려 장남의 목숨을 잃는 슬픔도 당했습니다. 길 목사님은 교육사업에도 투자하여 숭실학교를 설립했으며, 3.1운동에 관여한 죄목으로 옥고를 치루기도 했습니다. 이후 길 목사님은 전국을 순회하며 부흥집회를 인도하다가 1935년 평남 고창교회에서 축도를 하고 난 다음 숨을 거둔 일화로 유명합니다.

 

역사상에서 어거스틴과 길선주 목사님 외에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거듭난 과정을 겪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이 과정을 거쳤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은 자신이 거듭난 때에 대한 영적인 체험들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영적 체험이 기적이나 신기한 일만을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대부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어떤 말씀이 계기가 됩니다.

 

2. 세속적인 그리스도인들

 

 

그런데 우리 시대에는 거듭남의 의미가 상당히 왜곡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많은 광고들에서 새롭게 변신한 기업이나 상품들을 두고 자신들이 거듭났다고 표현합니다. 어떤 정당도 이름만 갈아치우면서 거듭난 것처럼 국민에게 홍보합니다. 한 연예인이 도박 사건에 연루되어 방송계를 떠났다가 세월이 좀 흐른 뒤에 슬그머니 방송에 출연하면서 자신이 거듭났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일은 기독교회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현재 많은 교인들이 거듭남을 가벼이 여기고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미국에 기독교 여론조사기관인 바나그룹이 있습니다. 여기서 자신을 거듭난 복음주의자로 자칭하는 1,200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 이들 중 겨우 9%만 십일조를 하고,

~ 10대 가운데 80%가 혼전순결을 지키지 않고,

~ 이중 26%는 단순히 육체적 쾌락의 차원에서 여러 명과 혼전 성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미국과 서구에서 폭넓게 정의하는 복음주의 교회는 전체적으로 세상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1980년부터 미국 베들레헴침례교회에서 담임목사를 하고 현재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목회자 겸 신학자로 칭송받는 존 파이퍼는 이러한 복음주의자들에 대해 이렇게 촌평합니다.

 

복음주의자들은 주일에 교회에 감으로써 종교로 겉 포장을 합니다. 그러나 이 종교는 변화를 일으키는 능력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세상과 동일한 방식의 삶에 추가된 부가물일 뿐입니다.”

 

제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닌다 하면서 세상과 구별되지 않는 모습으로 삶을 살며, 세상과 다름없이 죄를 지으며, 세상만큼 불의한 일을 버젓이 행하고, 세상만큼 물질을 탐하고, 세상처럼 이 땅에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려 하고 조금도 자기의 것을 축내지 않으려 하며, 남의 것을 더 가지려 하며, 세상만큼 이웃을 위해 희생하지 않으려 하며, 세상과 같이 오락을 즐기고 거짓말을 하고 약속을 어기고 게으르고 방탕하며 하나님을 무시하고 양심에 가책도 느끼지 못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자신이 거듭났으며 천국에 간다고 믿고 있으며, 그럴듯하게 자신의 신앙을 포장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저는 저 자신을 예수님께 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예수님께 저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저는 확실하게 천국에 가리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성경은 이런 것을 두고 거듭났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사람이 거듭나면 완전히 바뀐다는 절대적 확신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입술로만 자신의 거듭남을 말하는 그리스도인은 실상은 완전히 변화되지 못했음을 깨닫습니다. 거듭났다는 것은 신앙의 행위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음의 신약성경 중 요한일서의 구절들이 이를 입증합니다.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요일 2:2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3:9)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4:7)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5:18)

 

 

이 말씀들이 가리키는 바가 무엇입니까? 거듭났다는 것은 의롭게 되었다는 것이며 죄 된 삶과 단절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거듭남을 단순히 새롭게 된 어떤 것을 염두하거나 그저 수명을 연장받았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듭남이란 용어는 성경에서 아주 귀하고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것은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성경은 거듭남에 관해 많이 말합니다. 그럼에도 거듭남은 신비합니다. 그것이 신비한 이유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고전 13:12)하게 볼 때 모두를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한다 해도 그게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거듭남을 인간의 언어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은 그 일이 오로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거듭남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25)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거듭납니다. 거듭나기 전에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인 줄 모르다가 하나님의 말씀이 심령에 박히면 드디어 영안이 열리고 마음의 문이 열려 하나님이 나를 낳으신 영원한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믿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로부터 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살지 못합니다. 거듭나기 전까지는 밥만 먹고 사는 육신적 생명 안에 갇힌, 죽음을 기다리는 유한한 삶이었지만, 거듭난 후엔 영원한 생명(조에)이 주어졌고 언제나 이 영적 생명은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양식을 먹어야 영적 건강을 유지하고 누리며 살도록 된 것입니다.

 

 

3. 거듭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렇다면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거듭날 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4가지로 정리해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새 생명을 얻습니다.

~ 거듭나기 전까지 모든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상태입니다. 육신의 생명을 가지고 살다가 죽음으로 가는 길에 있었습니다. 이 생명을 가지고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밤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는 눈에 보이지 않는 초자연적인 거듭남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정작 자신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 종교에 대한 의문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생명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니고데모는 우리와 같이 살아 있었습니다. 숨 쉬고 생각하고 말하고 느끼고 행동했습니다. 그 역시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죽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영적 생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 9:60을 토대로 한 가지 더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였으나 아버지의 장례식 때문에 주저하는 사람을 향해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라고 답변한 것을 보세요. 거듭나지 않은 세상 사람들을 두고 죽은 자들이라 표현했습니다.

~ 또 눅 15장에 있는 유명한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는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24)이라 말했습니다.

~ 이 모든 구절들이 무엇을 말합니까? 거듭났다는 것은 이전의 생명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생명을 얻어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바로 이 놀라운 새 생명을 얻은 사람들임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야 합니다.

 

둘째, 당신은 거듭날 때 초자연적인 것을 체험합니다.

~ 3:2절에서 니고데모가 고백하는 내용을 보세요. 그는 예수님을 단순히 랍비(선생)라 하면서도 자신이 알고 있던 단순한 랍비가 아님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사역에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표적과 기사를 보고서 다른 사람은 아무도 예수님을 찾아오지 않았지만 니고데모는 몰래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또한 그날 밤에 거듭남을 체험했을 것라는 것입니다.

~ 타락한 자들은 기적을 보고서도, 초자연적인 기사를 목격하고서도 그저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겠거니 하거나, 이런 일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이런 기적, 하나님 나라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냥 저절로 이 모든 일들이 믿어지게됩니다.

~ 세상에 있는 것으로는 거듭남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바람 소리는 들려도 어디로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듯이 성령의 사역의 결과인 거듭남도 자연적인 현상은 분명 아닙니다. 그러나 이 영적인 현상을 거듭난 사람은 분명히 체험한다는 것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3:6). 성령은 자연 세계의 일부가 아닙니다. 지리산 용문산 계룡산에서 도를 닦으면 나타난다고 믿는 그런 이상한 현상이 아닙니다. 성령은 자연을 초월합니다.

 

셋째, 그리스도와 연합됩니다.

~ 한편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새 생명은 아들 안에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14:6)라고 하셨고 사도 요한은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1~12)고 말했습니다. 당신에게 예수님이 있으면 당신은 영원한 새 생명이 잇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영원한 생명으로 살리신 것입니다. 6: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가 이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신 하나님의 아들과 연결됨으로써 생명을 얻으며 성령의 역사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남의 성령의 사역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 즉 끊어졌던 것을 다시 연결시킴으로 우리에게 새 생명이 주어지는 것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넷째, 새 본성이 창조됩니다.

~ 당신이 거듭날 때 단순히 옛 본성이 조금 개선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옛 본성은 완전히 개조되어 새로운 본성으로 창조되는 것입니다. 이 본성은 죄악에서 물든 당신이 죄의 씻음을 받고 죄 사함을 받은 것을 말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용서받고 깨끗해진 본성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의 내주를 통해 당신 속에 빚으신 참으로 새로운 본성입니다. 니고데모에게 말했듯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본성입니다.

~ 여기서 물과 성령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전통적으로 이것은 세례를 말한다고 배웠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으므로 거듭났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존 파이퍼 목사는 여기서 은 그리스도인의 세례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물세례가 필수조건이라면 요한복음 3장 전반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쓰여져야 합니다. , 15절에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고, 18절에선 그를 믿는 자마다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구원 얻는 조건이 물세례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아기에게 아무리 물을 뿌린다고 하여 아기가 거듭난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 해답의 단초는 에스겔서에서 발견됩니다. 3624~28(참조 렘 31:31~34)입니다.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맑음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이 말씀에서 물과 성령이 주어지는 목적이 뚜렷하게 계시되어 있습니다. 맑은 물을 뿌리는 것은 정결하게 함이며, 새 영을 두는 것은 새 마음을 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물과 성령은 우리가 거듭날 때 얻는 새로움의 두 국면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 성경은 우리가 거듭날 때 우리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6:6),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며“(3:3), 따라서 우리는 자신을 죄에 대해 죽은 자“(6:11)로 여겨야 하며, ”옛사람을 벗어버려야 한다“(4:22)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거듭나기 전의 모든 죄는 깨끗하게 씻음을 받아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씻음은 물과 성령에 의해 육신과 마음의 죄악들이 씻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보다 씻음의 목적은 새로워진 새 피조물을 위함입니다. 새 피조물은 물과 성령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굳은 마음이 변화되어 부드러움 마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고집쟁이가 달라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해 무감각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만 들어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바뀌집니다. 이와 함께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를 받아 회복되어 점점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4. 결어

 

 

분명한 것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가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고 구원을 받지 못하면 지옥에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 마지막 절에서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에 관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다“(3:36)고 경고했습니다.

 

이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결코 한 귀로 듣고 흘려보낼 가벼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때로 진리의 이야기는 나에게 가혹한 문제로 다가옵니다. 너무나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로 인식됩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말씀하실 때에 매우 차디차게 말씀하셨습니다. 지옥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지옥의 문제를 가볍게 다루실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진정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식입니다. 단지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 것은 아부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죄의 자리에 있는 자녀를 그냥 두고 보는 부모가 있다면 그는 자식을 지옥으로 등을 떠밀어 보내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못나고 게으른 부모와 같은 바리새인들을 향해 이렇게 가혹하게 말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죄게 하는도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23:15, 33)

 

거듭남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또 거듭남은 내 인생에 있어서 일부분의 영향을 미치는 문제가 아닙니다. 거듭남은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우리 인생의 핵심주제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걸린 문제입니다. 인생은 언제나 가장 중요한 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자신의 거듭남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묵상하는 한 주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출처] 18주차 <구원론강설> 무엇이 거듭남인가? 2020. 5. 3 (바로선개혁교회) | 작성자 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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