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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자에게서 그분의 성령을 취하셨습니다

이차식목사(김천)

by 김경호 진실 2020. 11. 12. 09:33

본문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자에게서

그분의 성령을 취하셨습니다.(2020.5.3.)

 

본문: 사사기 16:20b

봉독: 사사기 16:1-22 (NKJV)

시편 86:1,4, 51:4, 101:1,2,3,6, 141:1-4, 70:2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사랑하시는 여러분!

 

오늘 본문의 사건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슬픈 말씀 중 하나여야 합니다.

20절 하반에 보면 그러나 그는 여호와께서 이미 그에게서 떠나셨다는 사실을 알지 못 하였더라고 말씀합니다.

 

삼손이 들릴라는 블레셋 여인의 무릎에 누워 잠들어 있습니다.

이발사가 들어와서 그의 머리를 싹둑싹둑 잘라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삼손을 떠나셨습니다.

 

지금 삼손은 여호와께서 떠난 사실도 모릅니다.

들릴라가 블레셋 사람들이 문 앞에 왔다고 소리 지릅니다.

그때야 삼손이 잠에서 깨면서 말합니다.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이 말은 내 신체를 자유롭게 흔들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내 힘을 보여 주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삼손은 여호와께서 자기를 떠나셨다는 사실을 전혀 몰라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때까지 여호와는 삼손과 함께 계셨습니다.

삼손이 잉태되기도 전에 여호와는 그를 나실인으로 따로 구별하시고 여호와께 바쳐지도록 하셨습니다.

 

삼손이 어린 시절부터 여호와의 성령이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블레셋에게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도록 권한이 부여되었습니다.

삼손은 여호와의 성령의 권능으로 사자를 찢었습니다.

삼십 명의 블레셋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당나귀 턱뼈로 천 명을 죽였습니다.

여호와의 영의 권능이 임해서 삼손이 가자성의 문짝과 기둥을 등에 짊어지고 헤브론 외곽언덕까지 갔습니다. (16:3)

(무게가 거의 1000kg, 거리는 60km)

 

그러나 지금 여호와는 그를 떠났습니다.

이제 용감했던 삼손, 힘센 삼손, 여호와께 끔찍했던 삼손은 자신이 잠에서 깨어나면서 이미 약해져 버린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제 그는 다른 사람들과 같았습니다.

그제서야 삼손이 패배당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았습니다.

눈이 멀게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았습니다.

족쇄가 채워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았습니다.

정복당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았습니다.

가자에 잡혀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았습니다.

적을 위해 끊임없이 짐승처럼 곡물을 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았습니다.

그 모든 일이 너무 슬픈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토록 슬픈 것은 삼손의 눈알이 뽑히고 자유를 잃고 인격 모독을 당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너무 가슴 아픈 사건은 무엇입니까?

20그러나 삼손이 여호와께서 이미 그를 떠나셨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더라

이 말씀이 너무 슬픕니다.

 

여호와께서 삼손을 떠나셨다는 이 말씀!

언뜻 읽고 지나쳐버리기에는 너무 끔찍한 말씀입니다.

여호와께 버려지는 것은 너무 끔찍한 일입니다.

여호와와 관계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소름 끼치는 일입니다.

 

우리를 향한 여호와의 사랑과 호의가 없어지고 여호와의 진노를 경험하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이 세상사는 동안에 이런 일이 혹 있을지라도 주님의 그 날에 이 말씀을 듣는다면 상상할 수 없는 공포가 될 것입니다.

나를 떠나가라.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함이라

 

삼손의 경우, 그는 하나님께서 태어난 때부터 어떤 목적을 위해 선택하셨던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도록 하나님께 헌신 된 삼손입니다. 그러나 이제 여호와는 그를 떠났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사사를 잃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구원자를 잃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읽으면 슬퍼집니다.

이 일들은 삼손 개인에게도 슬픈 일이지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훨씬 더 슬픈 일입니다.

 

만약에 여호와께서 그를 떠나지 않으셨다면 어찌 되었겠습니까?

삼손이 나실인으로서 자기 신분을 노골적으로 끝까지 부인했다면 하나님 편에서 어찌해야겠습니까? 삼손이 끝까지 하나님의 구별된 언약의 자녀로서 신분을 부인할지라도 하나님의 신이 삼손과 함께하셔야 하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삼손에게 초인간적인 힘을 계속 부어 주셨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삼손이 나실인 됨을 포기하고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책임을 부인하면 그의 삶이 삼손에게 영원히 어떤 의미였을까요?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증거 해야 하는 사명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책임을 저버리는 삶이 이스라엘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책임을 저버리는 그 삶이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에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오늘 본문에 보면 삼손이 결국 벌을 받습니다. 여호와께서 떠나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삼손이 크게 고통을 받습니다.

 

그런데 16장 후반부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모든 것을 끝내신 게 아닙니다. 블레셋에게 하나님의 하실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는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도 당신의 구원을 아직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삼으신 삼손에게 당신의 성령을 취하시는 그 순간에도 큰 자비 가운데 그분의 백성을 기억하십니다.

이 아침에 저는 다음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분의 성령을 이스라엘의 구원자에게서 취하신다.”

 

삼손의 어리석음

삼손의 타락

 

삼손의 어리석음

 

사람들이 말하기를 약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사람마다 약점이 있습니다. 신체적으로 취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정신적으로 약점이 있고 개인마다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삼손도 그렇고 블레셋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은 아킬레스건이 있습니다(뒷 발꿈치: 그리스 신화).

 

그러면 삼손은 아킬레스건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삼손의 갑옷에 틈새라도 있었습니까?

삼손에게 어떤 취약점이 있었지요?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약점을 알아내려 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들릴라가 그 약점을 알아내면 후하게 보상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비밀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삼손이나 일반인이나 같아 보였지만 삼손은 힘이 대단했습니다.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힘을 가졌습니다.

열 명이 공격해오고 백 명이 덤벼도, 천 명이 동시에 덮쳐도 삼손은 그들을 다 죽일 힘이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정상이 아닙니다.

삼손의 그 큰 힘에는 비밀이 분명히 있습니다.

만약 그 비밀을 안다면 삼손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지도자들이 삼손의 애인 들릴라에게 가서 말합니다.

네가 삼솜을 꾀어서 어디에서 큰 힘이 나오는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를 이기고 결박해서 곤고케 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라. 그리하면 우리가 각각 은 일천 일백을 네게 주리라”(16:5)

 

6절에 들리라가 삼손에게 가서 말합니다.

당신의 큰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 어떻게 하면 능히 당신을 결박하고 곤고케 할 수 있는지 내게 말하라

 

지금 삼손이 어디에 있습니까?

블레셋 여인의 무르팍에 누워 있습니다.

엽기적 사건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삼손은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나실인입니다. 하나님께서 구별한 사람입니다. 블레셋 사람의 문화에 동화된 이스라엘을 빼내기 위한 하나님의 손끝에 있는 사람이 들릴라의 품에서 그녀의 눈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녀가 정을 통한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들릴라가 말합니다.

삼손! 내 눈을 쳐다봐! 빨리 얘기해! 너한테 그 힘을 주는 게 도대체 뭐야?” 이런 식으로 유혹을 했을 겁니다. 삼손은 그 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 답은 그의 머리카락이 아닙니다.

삼손은 자신이 가진 외모의 면면들이 다른 사람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1518절에서 주께서 종의 손으로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이제는 내가 목말라 죽게 생겼다라고 고백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큰 구원은 주님께만 있습니다.

삼손의 힘은 여호와께 구별된 데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블레셋 사람과 이스라엘을 구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에게 큰 힘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삼손은 나를 강하게 한 것은 내가 아니고 내 안의 하나님이시다고 말한 것입니다.

 

천 명이나 죽일 힘을 가진 이는 내가 아닙니다. 주께서 이 큰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내가 의뢰하고 두려워할 이는 나 자신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이십니다.’

이 사실을 삼손은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삼손이 나를 나의 하나님에게서 분리시켜라. 그러면 내가 약해져서 일반인처럼 될 거다라고 정답을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삼손이 말하지 않습니다.

삼손은 들릴라가 만든 게임을 좋아하는 듯합니다.

삼손은 위험을 좋아하는 듯합니다.

또 대담한 성격을 좋아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아끼는 여자에게 정복당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약한척해 보였습니다. 그녀의 팔에 안겨서 약한척하면서도 어떤 때는 강한 힘이 있어 보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삼손은 들릴라와 주거니 받거니 선을 넘나드는 게임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들릴라와의 게임이 아니었습니다. 악마가 그 배후에서 게임을 조종했습니다. 마귀는 삼손의 힘의 비밀을 알았습니다.

만약 삼손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다면 그의 모든 힘도 그로부터 분리될 것입니다.

삼손에게서 그 힘이 분리되면 이스라엘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삼손의 아킬레스건은 여자에게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 여자는 할례 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입니다.

사단이 이방 여인을 도구로 삼았습니다. 과거에 삼손이 딤나에 갔을 때도 사단이 뒤에서 미혹했습니다.

결국, 블레셋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들의 곡식단이 불에 탔습니다. 블레셋의 모든 남자를 삼손이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자에게는 약한 삼손입니다. 삼손은 블레셋 여인들에게 강한 욕망을 느꼈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그 여인들을 취하고 싶었습니다.

이 욕정의 죄에 대해서 성경은 거듭거듭 경고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이교도와 결혼하는 것만을 금하신 게 아니었습니다.

잠언 57~9절에 보면 성적 순결을 요구하고 경고합니다.

그런즉 아들들아, 나를 들으며 내 입의 말을 버리지 말고 네 길을 그녀에게서 멀리하라. 그녀의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마라

55그녀의 발은 죽음으로 내려가고 그녀의 걸음은 지옥으로 나아가나니

삼손이 이런 사실들을 알았을 것입니다. 자기가 방황하면서 블레셋 사람의 마을로 갔을 때 그 위험을 어찌 몰랐겠습니까?

 

그런데도 삼손은 여인들에게 마음을 줌으로써 자기 백성을 거부했습니다.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거부했습니다. 타락했습니다.

나실인의 부름에서 스스로 멀어졌습니다. 블레셋에게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거절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적 죄는 많은 사람을 눈멀게 합니다. 이 죄 때문에 많은 사람이 파산했습니다.

많은 결혼이 찢어졌습니다. 가정들이 파괴되고 교회가 크게 손상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618절에 음행을 피하라고 말씀합니다.

음행을 두려워하고 도망가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도 삼손은 주님 말씀을 버렸습니다.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음행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남자다운 남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게임에서 능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순식간에 자신이 이길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사사기 161삼손이 가사에 가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여기에 보면 삼손이 가사에 갔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한 여인을 봅니다.

기생이었습니다. 기생집에서 그녀와 함께 밤을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그때도 삼손이 자기가 누구인지 잊어버렸습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부인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잊어버렸습니다.

삼손은 나실인이었습니다. 여호와께 거룩히 구별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구별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자기 신분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가사 사람들은 삼손이 누구인지 잊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삼손이 밤새 기생과 함께할 것을 알고 성문들을 잠갔습니다. 성문 빗장을 지르고 못 빠져나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그를 조용히 죽일 요량이었습니다. 그래서 매복하여 새벽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삼손이 밤중에 일어나서 성문으로 가더니 문짝과 기둥과 빗장을 빼서 그것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헤브론 언덕 꼭대기까지 옮겨버렸습니다.

그 무게는 거의 오백 킬로그램에서 일 톤이고 거리는 육십 킬로미터까지 가서 모든 사람이 보도록 꼭대기 언덕에 둔 것입니다. 초월적, 신적 권능이 함께 했습니다.

이것은 삼손이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이면서 블레셋 사람의 모든 힘은 여호와 앞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삼손이 가자에서 밤을 지샌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나실인으로 여호와께 순종한 것도 아닙니다.

삼손은 자기 사생활은 하나님의 공적 직무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생활과 나실인으로서의 삶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사생활이 어떻든 성령님의 권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삼손의 어리석음을 봅니다.

 

삼손은 자기 사생활에서 성령 하나님을 매우 슬프게 했습니다.

삼손은 성적 죄 속에서 살면서도 동시에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삼손만이 그렇게 어리석은 게 아닙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녀요 언약 백성인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들은 당연히 하나님을 섬기며 그 하나님을 온 마음과 영혼과 뜻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 자기들에게 큰 복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등을 돌렸습니다. 주변의 우상을 가까이하고 세상 블레셋 사람의 생활 풍속과 기생 놀이를 따랐습니다.

그렇게 살면서도 자신들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때로 우리도 그렇게 착각하고 그렇게 삽니다.

때때로 우리는 성경의 경고를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섰다고 생각하면 넘어질까 조심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성도들은 죄를 가지고 놉니다. 아슬아슬하게 죄의 위험한 가장자리를 따라 걷습니다. 그 끝에서 오락을 즐기고 취미 삼아 죄의 단면을 조금씩 맛보면서 거기서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삼손도 거기서 떨어졌다고 말씀합니다.

삼손은 자기가 남자다운 남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고 결국 나쁜 일은 안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패가망신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삼손의 타락

 

오늘 본문에 보면 삼손이 아직 죄의 가장자리 근처에 있습니다.

아직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 근처에서 머뭇거립니다. 이제는 가자에서 소렉 계곡으로 갔습니다.

들릴라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집니다.

 

아마도 삼손은 그 여인을 만나는 자체를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부모들은 딤나의 소녀를 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말들이 삼손의 귓가에 울렸을 것입니다.

 

삼손은 들릴라를 자기가 사랑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결혼은 안 했지만 몇 번이고 찾아가서 만났습니다.

그녀를 만날 때마다 마음이 무디어갔습니다. 들릴라가 만나자고 한 곳에 항상 삼손이 있었습니다.

사단이 원한 그곳에 삼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녀 무릎에 취했습니다. 그리고 동네 이발사가 손에 가위를 들고 있습니다.

 

삼손!” 그녀가 삼손을 미혹합니다.

제발 너의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얘기해!”

삼손은 즉시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꺼냅니다.

삼손이 그녀와 게임을 즐깁니다.

7만약 마르지 않는 새 활줄 일곱으로 나를 결박하면 내가 약해져서 다른 사람처럼 될 거야

11만약 사용한 적 없는 새 줄로 나를 묶으면 내가 약해져서 다른 사람들처럼 될 걸!”

13만약 그대가 나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위선에 섞어 짜봐!”

 

여러분!

이 게임이 점점 위험해지고 있습니다.

17절에는 삼손이 어떻게 합니까?

들릴라가 죽기 살기로 계속 귀찮게 요구하니까 결국에 삼손이 진실을 말해버립니다.

내 머리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약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결국, 들릴라가 이겼습니다.

삼손의 아킬레스건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무릎에 삼손이 자도록 잠을 재웁니다.

그리고 이발사를 부릅니다.

삼손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순식간에 밀어버립니다.

그리고는 그녀가 삼손을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이제 삼손의 힘이 떠났습니다.

이제 여호와의 힘이 떠났습니다.

여호와의 힘이 떠난 것은 삼손의 머리카락에 마술적 힘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의 긴 머리는 나실인이요, 하나님의 것이라는 표시였습니다.

삼손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신분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것이어서 그들과 삶의 방식이 다름을 나타낼 사람입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을 분리시키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방 여인에게 자신이 누구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것임을 말했습니다. 그 행위로 자신을 들릴라에게 넘겨버린 것입니다. 그 행위로 자신을 블레셋 민족에게 넘겨버린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의 욕정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힘을 남용했습니다.

나실인의 부름을 경멸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적을 이롭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떠났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서 성령을 거두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나중에 사울 왕에게서도 성령을 거두십니다.

결국, 삼손은 큰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부름을 가지고 놀아선 안 된다는 것을 배웠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게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웠어야 합니다. 위험한 가장자리에서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삼손의 힘은 그가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무조건적인 것이 아닙니다.

삼손의 쾌락을 위해 은사가 주어진 게 아닙니다.

어리석은 삼손이 여호와를 먼저 떠났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도 그를 떠나셨습니다.

삼손이 사람들 앞에서 꼼짝 못하고 쓰러집니다. 삼손의 눈알을 그들이 파버립니다. 그의 발을 쇠사슬로 채웁니다. 삼손이 가자로 끌려갑니다. 블레셋 곡물을 맷돌에 가는 소와 같게 됩니다.

블레셋 사람을 파괴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해야 할 삼손이 처참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사로서 삼손이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이스라엘을 온전히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삼손은 구약의 사사들과 많은 차이가 납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삼손은 생각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삼손이 자신의 사생활과 성령의 사역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참 사사나 구원자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사생활과 공적 부름에 신실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모든 율법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삼손의 최후를 보면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눈알이 뽑히고 쇠사슬에 채인 그를 볼 때 모든 것을 잃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22절에 보면 조그만 희망의 빛이 보입니다.

그의 머리털이 밀리운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 하니라.”

물론 삼손의 머리카락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삼손에게 힘을 준 것을 그의 머리털이 아닙니다.

 

그러나 삼손의 머리털이 다시 자랐을 때 삼손은 깊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과연 누군지, 이스라엘이 과연 누군지, 하나님의 자녀가 누군지.

어려서부터 하나님께 거룩한 사람이 된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는 깨닫고 나름대로 정리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 삼손의 이름도 신앙의 사람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삼손은 소경이 되었지만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삼손은 자기 앞에 있는 자기 손조차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엉망으로 살았는지 이제는 반성하고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가 욕정 때문에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에 실패한 것을 절실히 느꼈을 것입니다. 그동안 생각이 잘못됐습니다. 삶을 잘못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오 여호와 하나님! 나를 용서하소서!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를 용서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베푸셨으며 그를 고치셨다는 암시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우리가 어리석은 죄에 빠지고 심하게 넘어져도, 우리가 돌이키고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히 바라면 기꺼이 구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은 여러분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차식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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