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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하나님이 당신의 왕이시라면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지 마세요

이차식목사(김천)

by 김경호 진실 2020. 11. 12.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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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하나님이 당신의 왕이시라면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지 마세요 (2020.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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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마지막 구절 212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를테면 사사기 176, 181, 191절에도 이스라엘에 왕이 없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던 사사 시대는 무법과 무질서, 강간과 살인, 불경건과 비참, 그리고 재앙의 끔찍한 시기였습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다는 것은 수직적으로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으로부터 독립했다는 의미입니다.

수평적으로 가정이나 일터에서 상대를 배려하고 책임을 지기보다는 모든 도덕적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보다 자유로워졌다는 의미입니다.

그 당시에도 선과 악의 정의를 다시 쓰고자 하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선과 악의 정의를 다시 쓴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 매력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결국은 무법으로 끝납니다. 비참함과 죽음으로 끝납니다.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자유는 인간이 누려야 하는 가장 기본권입니다.

이 기본권은 가정에서부터 보장되어야 복을 받습니다. 교회와 국가가 이 권리를 보장해줘야 합니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 기준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의미가 됩니다.

절대 도덕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각 사람의 삶의 질과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는지와 하나님의 절대 도덕을 인정하느냐의 여부에 따라서 자유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평화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인권의 의미도 달라집니다. (ex 북 인민들의 인권/김정은 정권 중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어느 쪽일까요?)

여러분! 사사 시대에 일어난 일들은 오늘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원래 사람이 사는 사회의 모든 법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10계명은 하나님께서 만든 절대 법입니다.

성경의 율법에서 세상의 모든 법이 생겨났습니다. 중세 천 명의 암흑기를 지나 종교 개혁 때 자유, 민주, 이런 것들을 제도화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입법기관에서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거절한 지 오래입니다.

원래 성경에서 기인한 절대 법들이 오늘날에는 그때그때 변화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또한, 영화나 음악, 게임물 등에서 기독교의 기초들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 허물어진 자리에 집단 이기주의와 개인 이기주의가 난무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 소견에 옳은 것들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세상을 비난하지 맙시다. 비난 대신에 우리 자신을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왕이 없는 것처럼 처신하지 않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담의 타락 이후에 모든 인류는 숨어 있는 원죄가 있습니다.

그 죄는 여호와의 길을 따르기 싫어합니다. 자기 눈에 좋은 대로 선택하려 합니다. 자기에게 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나를 누군가가 제지하거나 무시할까 두려워합니다.

그런 속성이 우리 각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죄는 무법을 추구하고 질서를 경멸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자기들 눈에 좋은 대로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의 질서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습니다. 무법을 따랐습니다. 그러므로 타락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절대적 진리와 우주적 규범들을 거부하는 것은 우리 삶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정말로 존귀한 자인데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면 스스로 짐승처럼 되는 것입니다.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습니다. 각 사람이 자기 눈에 옳은 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 엘리멜렉이라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엘리멜렉은 나의 하나님이 왕이시다는 의미입니다. 좋은 이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그는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이름이 엘리멜렉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졌잖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 의미는 그리스도께 속했다, 그런 의미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왕이십니다.

그렇다면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가고 계십니까?

살다가 위기가 닥치고 역병이 돌고 전쟁이 올 때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처신합니까?

 

그래서 저는 다음의 주제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왕이시라면 왕이 없는 것처럼 살지 마세요.

엘리멜렉이 이스라엘의 곡창지대를 저버림

모압의 불모지를 향함

 

1. 엘리멜렉이 이스라엘의 곡창지대를 저버림

 

불과 몇 세대 전에 이스라엘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갔습니다. 출애굽기 38절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여 그 땅에서 빼내셔서 젖과 꿀이 흐르는 넓고 좋은 땅으로 이끌어 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 그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민수기 13장에 모세가 열두 정탐꾼을 보냅니다.

정탐꾼들에게 그 땅을 조사하도록 했는데 27절에 보면 이들이 그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보고합니다.

 

그때 정탐꾼들은 어깨에 두 사람이 멜 수 없을 만큼 무거운 무화과, 석류, 포도송이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고 왔습니다.

 

그 후 40년이 지났습니다. 여호수아가 통치할 때 이스라엘은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어갑니다.

각 지파가 그들의 유산을 받습니다.

각 가정이 자기 자리를 배정 받습니다.

엘리멜렉 조상은 베들레헴에 있는 에브라다의 밭 일부를 받았습니다.

그곳은 유다의 언덕에 있는 좋은 땅이었습니다.

밀과 보리를 재배하고 양을 키우는 땅이었습니다. 그곳은 풍요롭고 베들레헴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땅이었습니다.

베들레헴은 이스라엘의 곡창지대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룻기 11절에 보면 그 곡창지대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고 말씀합니다.

 

그 땅은 어떤 일반적인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특별한 기근이 일어났습니다.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함께 거하려고 선택하신 땅이었습니다.

주님은 만약 이스라엘이 주님을 자기들의 왕으로 섬기면 그들을 축복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레위기 263~5너희가 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철 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수목은 열매를 맺을지라.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 땅에 안전히 거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른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과 심판을 얕보거나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그분의 언약을 깨트리면 다음과 같은 일이 생길 것입니다.

 

레위기 2619, 20내가 너희 하늘로 철과 같게 하고 땅으로 놋과 같게 하리니 너희 수고가 헛될지라. 땅은 그 산물을 내지 않고 땅의 나무는 열매를 맺지 아니하리라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기근은 일반적인 자연재해가 아닙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기근은 하나님을 거역해서 생긴 것입니다.

당시 기근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불쾌감의 표현이었습니다. 기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들로 회개하게 하고 다시 한 번 주님을 그들의 왕으로 섬기라는 사인이었습니다.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잊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언약에 따른 순종의 삶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사사기 2장을 읽었습니다.

거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을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얼마나 빨리 잊어버렸는지 매우 충격입니다.

 

여호수아는 그의 말년에 여호수아 2416절에서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모든 백성이 우리도 여호와를 섬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210절에 보면 그 세대 사람이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 하였더라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정기적으로 읽고 주님의 길로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를 잊어버렸습니다. 마음이 미혹되어서 하나님 말씀에 주목하지 못했습니다. 그들 주변의 우상에게 절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사기에 기록한 것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이 한 결 같이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여호와의 화를 유발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그들에게 원수를 보내셔서 형벌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들의 손에서 크게 고통을 당하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은 자비와 은혜를 베푸시고 이스라엘의 탄원 소리를 들으십니다.

그들의 원수에게서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사사들이 죽고 나면 이스라엘은 다시 예전처럼 반역의 길로 돌아섭니다. 또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다시 우상을 섬깁니다.

사사기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주기를 묘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주목하지 않고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들의 소용돌이 삶을 보여줍니다.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사는 쾌락의 삶이 과연 얼마나 비참한지를 보여줍니다.

 

17~21장에는 상황이 너무 나빠져서 온갖 악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본문 룻기 1장에 베들레헴 떡집이라는 곡창지대에 기근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때의 정확한 시기를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기드온의 시절이라고 말합니다. 그 당시 식량이 부족했습니다.

미디안 인들이 이스라엘 나라를 황폐케 했습니다.

훔칠 수 있는 것은 다 훔쳐갔습니다.

 

기근이 와서 베들레헴에 곡식이 비었을 때 엘리멜렉은 그의 백성과 함께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가 상속받은 땅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모압 땅에서 살기 위해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 말룐과 기룐을 데리고 갔습니다.

 

아마도 엘리멜렉의 물질관에 의하면 그 생각이 상당히 일리 있고 논리적 타당성이 있습니다. 베들레헴에는 곡식도 없고 일거리도 없습니다.

요단 반대쪽 모압에는 먹거리와 일자리가 있습니다. 그의 가족을 위해서 기회를 살려야 합니다. 모든 것이 더 풍성한 곳으로 이사하는 것이 더 현명합니다.

 

그러나 모압으로 이사하는 것은 합당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엘리멜렉이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눈에 옳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주신 곳은 모압 땅이 아니라 가나안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신명기 29절에서 이스라엘에게 특별히 말씀하셨습니다.

모압을 괴롭게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왜냐하면, 내가 그들의 어떤 땅도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그 모압 땅은 이스라엘이 취할 땅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거기서 살 권리가 없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모압 사람은 불경건한 이교도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들과 구별되어야 할 나라입니다. 여호와께 거룩한 백성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을 떠나서 모압으로 가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었습니다.

엘리멜렉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엘리멜렉은 이사 가는 대신에 그 기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어야 합니다. 그 기근은 여호와의 징계였습니다.

그의 백성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르게 믿으라는 징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다시 한 번 하늘 하나님께 모든 필요를 공급해 달라고 부르짖었어야 합니다.

 

엘리멜렉은 현실을 알기 전에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알았어야 합니다.

그의 가족과 베들레헴 사람들이 여호와를 그들의 왕으로 섬기는 법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초월적인 경제관을 인정했더라면 엘리멜렉 가정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멜렉은 현실과 세상이 하나님보다 커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곡창지를 떠나서 모압을 향해 감으로써 자기 자신의 이름을 부인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왕 하나님을 부인했습니다. 마치 왕이 없는 이방 사람처럼 자기 눈에 옳은 것을 행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으로서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언약과 교회에 속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어려울 때 주님께 속하는 자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삽니까?

여러분이 일터에서, 결혼 생활에서, 직업과 친구 관계에 있어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가장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게 무엇입니까? 여러분을 누군가 멸시할까 두려운가요? 누군가에게 대우를 못 받을까 걱정이 되는가요?

아니면 여러분 안에 평안이 없습니까?

여러분의 장래에 대한 보장이 안 되어 있나요?

가정 식구를 위한 이 땅의 돈이 필요한가요?

여러분의 행복이나 성공이 가장 중요한가요?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성경에서 그토록 경고하는 현실주의자가 아닙니까?

무신론, 유물주의자가 아닙니까? 입술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고백하는데 삶과 행동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삶은 위험한 삶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삶을 전혀 살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신데 실제 삶은 왕이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것만큼 더 몇 배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주님의 길에서 걷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주님이 버리시는 것을 봤나요?

 

물론 엘리멜렉에게 일어난 일은 우리에게 동일하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서면 항상 풍요한 삶이 약속되었습니다. 기근은 그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릴 때 온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른 시대에 삽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우리에게 육체적 빵을 바라보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빵 곧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불신실의 삶은 죽음으로 이어진다고 경고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여호와께 돌이키고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잠언 35, 7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마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2. 모압의 황무지

 

엘리멜렉이 베들레헴을 떠나서 모압으로 갔습니다.

모압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입니다.

롯의 딸들과 롯이 근친상간을 했습니다. (19)

모압 사람들은 요르단 계곡과 시리아 사막 사이에 약 20Km 넓이의 땅에 살았습니다.

그 땅의 대부분은 가파른 비탈, 협곡, 사해 쪽의 불모지가 많고 일부 지역은 경작할 수 있는 땅도 있는데 평균 강수량은 적지만 베들레헴 지역의 에브라타와 유사했습니다.

엘리멜렉이 자기 가족을 데리고 간 곳은 그 땅이거나 그 부근 도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엘리멜렉이 거기서 하려고 했던 일은 분명치 않았습니다. 아마도 유목을 하러 갔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양 떼를 키우는 사람들과 합류했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무엇을 하려면, 조그마한 땅에서 농사라도 지으려면 어느 정도의 돈이 들어갔을 것입니다.

 

처음에 엘리멜렉은 그곳에서 살면서 더 번성하고 행복하게 될 좋은 땅이라고 믿으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좋은 땅이 아니라 나쁜 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가족이 더 풍성하게 된 게 아니고 죽음을 만났고 행복보다 고통과 괴로움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엘리멜렉이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를 알고 있었다면 이스라엘의 곡창지 베들레헴을 떠나서 모압을 향해 가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갈 때 모압 땅을 통과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모압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잘 대우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음식과 물을 판매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모압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 땅으로 통과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길은 약속의 땅으로 가는 지름길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압의 왕 발락이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기 위해서 발람 선지자를 고용했습니다.

더 악한 것은 민수기 25장에서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모압 여인과 매음을 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 후에 모압 여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우상을 숭배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것은 너무 끔찍한 죄였습니다.

그래서 그 죄에 참여한 자들 24,000명이 죽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모압 사람이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고 앞으로 10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23:3)

 

신명기 236너는 평생에 그들의 평안과 형통을 영영히 구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엘리멜렉은 이 모든 하나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하찮게 여겼습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모압에 가서 살았습니다.

그가 일시적으로 갔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 가족과 함께 그가 그곳에 정착했습니다.

 

2그들이 모압 나라에 들어가서 거기에 우거하였더라.”

하나님의 초월적 경제관을 무시했고 하나님의 주권과 영적 삶을 하찮게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모압으로 이사 간 엘리멜렉을 여호와께서 축복하지 않으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엘리멜렉의 가족은 번영과 행복 대신에 죽음과 가난과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먼저 엘리멜렉이 죽습니다.

그때 그 아들들은 모압 여인을 아내로 얻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이었습니다.

그 후 10년간 말룐, 기룐은 어떤 자녀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말룐이 죽었습니다. 기룐도 죽었습니다.

오직 나오미만 두 모압 며느리와 함께 뎅그러니 남았습니다.

너무 슬픈 일입니다.

 

만약 모든 이야기가 여기서 끝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오미는 이국 땅, 나쁜 땅에 홀로 버려져서 죽음을 맞게 되겠지요.

하나님의 백성,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서 분리될 것입니다.

언약 백성의 삶 속에서 지워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에서 외인이 될 것입니다.

그의 가족은 그들의 왕 하나님을 순종치 않고 인생의 결과는 비참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는 말씀은 이것을 두고 한 말씀일 것입니다. 그때 뎅그러니 남은 나오미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아브라함과 이브가 낙원에서 죄를 지은 후에도 그런 심정이 아니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가서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거짓말한 후에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심정도 나오미와 같은 심정이 아니었겠습니까?

 

약속의 땅으로 가는 도중에 적을 제압하는 승리를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신뢰하지 못한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그런 심정이 아니었겠습니까? 사사 시대에 번번이 실패한 이스라엘 민족도 그런 감정이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가 이국 땅에서 돼지 먹이를 주워 먹던 때의 심정이 그와 같지 않았겠습니까?

오늘 여러분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번영과 행복 대신에 죽음과 고통 앞에 홀로 뎅그러니 남은 나오미와 같을 것입니다.

이것이 룻기가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을 그들의 왕으로 섬기는 데 실패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는가를 룻기가 보여줍니다.

 

그 실패한 사람들이 한 번 더 그분과 함께 언약의 자녀로서 살 수 있게 하십니다. 또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한 왕을 예비하십니다.

우리는 다음 주에 룻기를 통해 여호와께서 그분의 은혜를 나오미에게 어떻게 보여주시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룻에게 그리고 이스라엘과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여호와의 은혜가 어떻게 나타나게 하시는지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나오미는 모압의 척박한 곳에 남편을 잃고 아들도 잃고 미래도 소망도 없이 남겨진 나오미입니다.

그러나 룻기 1장에서 벌써 나오미는 그곳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그녀는 일어났습니다. 그녀의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베들레헴 자기 백성에게 돌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반역한 가운데서도 우리를 만나주신 결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반역을 초월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발걸음을 되짚어 볼 수 있게끔 문을 열어 놓으시고 언제나 우리의 어리석음을 보도록 우리 마음을 자극하시고 환영하는 팔을 벌리고 우리가 돌아서기를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자녀 한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갈 때마다 그분의 팔은 언제나 그들을 환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왕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을 때도 그분께 돌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할 때도 그분께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했든지 한 걸음만 내디디면 주님이 맞아 주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왕이시라면 나 혼자 뎅그러니 남아 있는 것처럼 마음대로 살아선 안 됩니다. 만약 어느 날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교회로 첫발을 내디뎌야 하고 하나님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일에 주변 사람들 때문에 흔들려선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언약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주님의 교회의 멤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 완전한 자리를 차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오미와 룻이 돌아올 때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나중에 룻에게서 다윗이 태어납니다. 그 뿌리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궁극적으로 출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시고 여러분은 그분의 딸이요 아들입니다.

 

 

이차식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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