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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眞情)한 경배(敬拜)란 무엇인가?

김영재박사

by 김경호 진실 2020. 12. 10.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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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성탄절(聖誕節)을 즈음하여...

 

진정(眞情)한 경배(敬拜)란 무엇인가?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마태복음 211)

 

2020년 성탄절(聖誕節)을 즈음하여 진정한 경배란 무엇인가?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아담의 죄로 인하여 광명(光明)의 빛을 잃어버리고, 죄악의 어두움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죄악의 어둠으로 가득 찬 세상을 밝하시기 위해서

요한복음 19절의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참빛으로 오신 예수님께 그 어느 누구도 지대(智大)한 관심(關心)을 보이지 않았고, 영접(迎接)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하지만 먼 타국(他國)에 있는 이방(異邦)의 사람들이며,

별을 연구하는 동방박사(東方博士)들이

예수님께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관심은 호기심(好奇心)에 의한 관심을 뛰어 넘어서

아기 예수를 구세주(救世主)로 인정하며,

고백하는 결과에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별을 보고 천기(天氣)를 관찰하는 자들로서

그 어느 누구보다도 신에 대한 관심(關心)이 없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별을 탐문(探問)하는 중에 놀라운 사실을 실제로 목도(目睹)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은 다름 아닌 하늘에 있는 별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별을 관찰하면서 별이 움직이는 것을

수도 없이 많이 보았을 터인데,

그들이 놀란 이유는 단순이 별이 움직인다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별이 앞으로 진행(進行)해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그들이 보아 온 수 많은 별들은

움직이다가 떨어지는 별똥별이라고 하는 유성(流星)이었는데,

그들이 본 지금의 별은 그 유성과는 달리 떨어지지 않고,

앞으로 진행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일평생(一平生)을 별만을 바라보고 연구한 박사들인데,

이처럼 별이 떨어지지 않고, 움직이며, 앞서 진행하는 것에 대해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으며,

자신들이 평생(平生)을 별에 대해서 연구해 온 학식(學識)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기이(奇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별을 따라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별을 따라가다가 예루살렘에 이르러서는

마태복음 22절의 말씀처럼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라고 물으며,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합니다.

이 말에 온 예루살렘에 큰 소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당시에 왕이었던 헤롯은 마태복음24절의 말씀처럼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불러 모으고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라고 묻게 됩니다.

그러자 그들은 유대 땅 베들레헴이라고 정확하게 말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대답은 신앙(信仰)에 의한 말이 아니라

기록된 구약의 말씀을 통해서 언급(言及)한 것이기에

아기 예수님을 찾아가 진정한 경배를 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따라 계속 진행하다가 별이 머문 곳에 들어가

아기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이 예수라는 이름의 의미는 마태복음 121절의 말씀처럼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 예수라는 이름은 주의 사자가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에게

아들을 낳으면 지어 주라는 이름입니다.

이렇듯 이 예수라는 이름은 태어나기 전부터 지어진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처럼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백성들만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자기 백성이란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택함 받은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百姓)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이방인(異邦人)들은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이방인이란

이스라엘 사람들이 말하는 이방인들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닌 다른 민족의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 밖(Out Christ)에 있는 자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In Christ)에 있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인해

영적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백성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백성이란 예수님처럼 육신적인 유대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유대 민족의 혈통(血統)을 타고 난 자들이라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구원에서 제외(除外)된 자들입니다.

이 성탄(聖誕)하신 아기 예수님을 누가 알아보았습니까?

구약성경을 매일 묵상하며 가르치는 종교의 지도자들이었습니까? 아니면 그들에게 말씀을 배우던 유대 백성들이었습니까?

그 둘 중에 어느 누구도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으며,

그러기에 아기 예수님께 진정한 경배를 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인(異邦人)들인 동방박사들은

별이 머문 곳에 있는 집으로 들어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합니다.

비록 모친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과 함께 있었지만

동방박사들은 마리아가 아닌 아기 예수님께만 경배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경배할 대상은 아기 예수를 낳은 마리아가 결코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Only Jesus Christ)인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인 천주교는 마리아를 숭배하고 경배합니다.

이는 지극히 잘못된 처사(處事)이며, 반성경적인 이단사상인 것입니다.

천주교와 기독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마리아를 예수님을 낳은 성모로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단지 예수님을 낳은 여자일 뿐이지

결코 성모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증거(證據)로 동방박사들이 모친 마리아와 아기 예수님이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기 예수님께만 경배를 드린 것입니다.

이러한 경배(敬拜)야 말로 진정한 경배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경배할 대상을 바로 알고,

그 분께만 경배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 지구상(地球上)에 존재하는 모든 자들이 경배할 대상도

바로 동방박사들이 경배를 드렸던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께서만이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동방박사들이 경배했던 아기 예수님이 성장(成長)하여서

요한복음 14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아버지란 영원한 천국에 계시는

성부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고, 자신들이 가지고 온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예물로 드립니다.

경배란 경의나 공경의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공손히 엎드리어 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동방박사들은 지극히 노령(老齡)임에도 불구하고

아기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 아기 예수님이 세성을 구원하러 오신

구세주(救世主)이기 때문입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이 앞으로 진행하여 나아가는 것을 보고,

이는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가 태어났다는 것을

직감(直感-설명이나 증명등을 거치지 않고, 사물의 진상을 곧바로 그 자리에서 순간적으로 느끼어 앎)하고,

오직 왕에게만 드리는 예물을 준비한 것입니다.

초대교회를 지도했던 여러 교부들은

이 동방박사들이 드린 예물(禮物)에 대해서 말하기를,

황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곧 그 분이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며, 유황은 순결, 곧 그 분이 흠과 티가 없고,

죄가 없으신 분이심을 나타내며,

몰약은 시체 방부제로 쓰인 것이기 때문에,

그 분의 십자가 구속의 죽으심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3가지 예물속에 담긴 고백은

그 아기 예수님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다는 의미도 함축(含蓄)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3가지 예물은 서로 간에 주고 받는 선물과는 달리

오직 왕에게만 바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동방박사들이 드린 예물 속에 진정한 의미가 담겨져 있기에 이들의 경배야 말로 진정한 경배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동방박사들의 경배가

진정한 경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엎드림이나 그들이 가지고 온 예물의 값어치가 아니라

그들의 경배속에

아기 예수님께 향한 진정한 고백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동방박사들이 드린 예물의 의미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들은 아기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 뿐만이 아니라

온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남들보다 인생을 많이 살았던 자신들임에도 불구하고

아기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한 것입니다.

이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드린 예물이 진정한 예물인 이유는 그들이 아기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고 경배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무리 거창(巨創)한 예물일지라고

진정한 고백이 담겨 있지 아니하면

그 예물은 값어치가 없는 것이며,

더러운 오염물질(汚染物質)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같은 예물일지라도 그 예물 속에 진정한 고백이 담겨져 있으면,

경의를 표하는 물건인 예물(禮物-경의를 표하는 물건)이 되는 것이고,

진정한 고백이 담겨져 있지 아니하면,

더러운 물건인 예물(穢物-더러운 물건)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흔하게도 앞서 살펴본 바와도 같이,

동방박사들이 드린 예물이 3가지이기에 그들을 3명이라고 하며,

또한 6세시 말경에 학자들은

이 박사들의 이름을 가스퍼, 멜콘, 발사살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근거(根據)없는 추론(追論)에 불과한 것이며,

예물만 3가지 였을 뿐이지 동방에서 온 사람들은 여러명인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한 경배가 무엇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경배란, 바로 자신을 부인(否認)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부인이란 나의 나됨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1510절에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부인이란 자신의 지식을

모두 배설물(排泄物)로 여기고 버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당대에 아주 탁월(卓越)한 지식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자신의 모든 지식을

빌립보서 38절의 말씀처럼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이처럼 동방박사들도 아기 예수님께

진정한 경배를 드릴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들이 평생동안 쌓아왔던

생명과도 같은 지식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니, 배설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동방박사들에게 있어서 지식이란 생명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이러한 지식을 그들은 별이 앞서 진행하는 것을 보고,

송두리째(있는 전부를 모두) 버렸으며,

생명과도 같은 지식을 버렸기에

아기 예수님께 경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며

자신에게 있는 소유를 버리지 못하고 주장하는 자들은

진정한 경배를 결코 드릴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자들의 엎드림과 그러한 자들의 드림은

아무런 가치(價値)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다가오는 성탄절에 우리들도 우리의 가진 것을 송두리째 벗어버리고 진정한 경배를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승리하며 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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