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충원 목사
(한밭교회 부목사)
제 아내와 저는 성격이 사뭇 다릅니다. MBTI 성격 유형 검사에 따르면 저는 ENTJ, 제 아내는 ESFP 유형에 속합니다. 외향적(E)인 부분만 제외하고 모두 다릅니다. 그래도 둘 다 외향적이라서 갈등을 일으킬만한 말이나 행동에 관한 생각을 마음에 오래 담아두지는 않고 바로바로 대화로 풀 수 있어서 좋습니다.
성격의 차이가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 중의 하나는 시간을 지키는 것에 관한 생각입니다. 저는 시간을 맞추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예배나 기도회에는 30분 정도 일찍 가는 것을 좋아하고, 개인적인 약속 장소에는 적어도 10분 정도 일찍 가는 편입니다. 그러니 약속 시간을 잘 지키고, 일찍 오는 사람을 좋아하겠죠? 한편 아내는 시간을 맞추는 것보다 사람에게 맞추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예배나 모임에는 시간에 딱 맞춰서 갑니다. 그리고 타인이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관대합니다. 누군가가 늦더라도 아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면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 줄 압니다.
가정예배를 하면서 초기에 힘들었던 것도 시간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초등학생이 되고, 가정예배 시간을 정해야 할 필요를 느껴서 가족이 함께 의논한 끝에 주일 저녁 시간에 가정예배를 하기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가정예배 시간이 다 되었는데 저만 먼저 와서 기다렸습니다. 저는 “곧 오겠지.”라고 생각하면서 기다렸지만 시간이 다 되어도 오지 않았습니다. 약속된 시간이 지나자 제 혈압이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3분, 5분... 아이들은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하던 일을 멈추고 부랴부랴 왔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식사 준비, 빨래 등등 빨리 마무리하기 어려운 일들을 하던 중이라서 좀 더 늦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가정예배 분위기가 좋을 리가 있었을까요? 저는 가정예배 시간은 일주일에 한 번 우리 가족이 하나님과 약속한 시간이니까 잘 지키면 좋겠다고 잔소리-맞는 말인데 기분 나쁘게 들리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초기에는 이런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실제로 가정예배를 하려고 할 때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시간을 정하고 지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자녀가 미취학 연령이고 부모가 저녁에 일찍 퇴근할 수 있다면 시간을 정하고 지키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대도시에 사는 맞벌이 부부와 초중고생 자녀로 구성된 가족이 바쁜 일상 속에서 가정예배 시간을 꾸준하게 지킨다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쉽지 않습니다. 자녀들의 일상은 학원과 숙제와 시험의 연속이며, 중간에 비는 시간에는 핸드폰을 통해 게임과 랜선에 접속되어 있습니다. 30대, 40대 직장인들은 출장과 야근이 많고, 일요일에 출근해야 할 때도 많습니다. 식사 시간에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하는 것은 정말 큰 마음을 먹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분주한 우리의 일상 속에서 가정예배 시간을 정하고 지키려다 보면 본의 아니게 마음이 상할 때가 있고, 예배 분위기는 시작부터 가라앉아 버립니다.
저희 가정도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 주일 저녁에 모이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저와 아내는 주일 사역으로 저녁이면 녹초가 되고, 저녁까지 심방이나 모임이 잡힐 때도 많았고, 아이들은 모처럼 주일에 이것 저것 하고 싶은 일들을 하다보면 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몸도 피곤하고, 예배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 가족들이 원망스러워서 “이런 분위기라면 차라리 가정예배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미리 아내와 삼형제에게 가정예배 시간을 알려주면 어떨까?” 그래서 생각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가정예배 시작 10분 전이에요~!” 그러자 아내와 삼형제는 알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습니다. 가족들이 하던 일을 정리할 수 있도록 예배 시간 전에 미리 알려주었더니, 덕분에 늦지 않고 기분 좋게 가정예배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편 요즘에는 서울에서 내려오는 첫째에게 알려줄 겸 하루 전이나 몇 시간 전에 가족 단체 ○톡방에 가정예배 시간에 관한 공지를 올립니다. 그러면 혹시 개인 사정이 생기더라도 사전에 시간을 조정해 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어서 좋습니다.
저는 가정예배 시간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 일종의 섬김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전에 제사장이 나팔절 안식일과 대속죄일에 나팔을 불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상을 멈추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알려 주었고, 시골 교회에서는 종을 쳐서 농사로 바쁜 이웃들에게 예배 시간을 알려 주었듯이, 가정예배 시간을 가족에게 알려주어 일상의 바쁜 일들을 잠시 멈추고 하나님 앞에 모일 시간이라고, 하나님과 약속한 시간이라고 알려주는 것은 가족을 위해 유익한 섬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약속한 가정예배 시간을 잘 지키도록 가르치는 것은 분명히 매우 좋은 신앙교육 방법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부모의 인내와 배려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가족이 정한 시간에 꾸준히 모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 아무리 좋은 의미가 있더라도 예배 시간 지키는 것을 다소 율법적으로 엄격하게 요구한다면 예배시간을 자칫 정죄하고 판단하는 분위기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에 임재하시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도 우리가 시간을 맞추는 것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마음을 맞추는 것을 더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시간을 칼 같이 지키기 위해서 가족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불편해하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족 중에서 시간 지키는 것에 은사가 있는 한 사람이 다른 가족에게 예배 시간을 친절히 알려 준다면 하나님과 약속한 시간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기고 - 하나님과 약속한 시간, 가정예배 (reformedj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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