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실 구원 사역을 예언한 것인데 그 중에 하나가 상한 마음을 고치는 것입니다. 1절에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2절에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절에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다 마음이 상하여 슬퍼하는 자를 고친다는 내용입니다. 우리 마음은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잡을 수 없지만 그 마음이 우리의 삶을 지배합니다. 또한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음이 중요합니다. 신명기 6:5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앙생활은 마음을 다해서 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 마음에 상처가 있고 마음이 깨어져 있다면 그 마음을 치료받아야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고,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1. 사람의 마음은 온전한가?
사람들은 마음속에 상처를 가지고 있고 치료가 필요한 상태임에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육체적인 상처는 보이기도 잘하고 치료하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잘 알기가 어렵고, 또 안다고 해도 치료하는 법도 잘 모르고 치료하려는 생각도 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육체적인 신체적인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가 우리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 가정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마음의 상처로 인한 것들입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도 마음의 상처로 인한 것들이 많습니다.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하다가도 한번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다가도 마음에 문제가 생기면 아무것도 못 하게 되기도 합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도 마음의 상처가 곪아 터지고, 쌓였던 감정과 분노가 폭발해서 문제가 커지고, 가정이 파괴되고, 교회에 큰 시험이 되기도 합니다.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이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일생을 살아가면서 받은 아픈 상처들이 마음속이 남아있습니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 형제들로부터 받은 상처. 자라면서 친구들이나 이성으로부터 받은 상처. 부부 사이에 받은 상처. 자식들을 통해서 받은 상처들이 나이테처럼 내 마음속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같이 모든 사람은 어려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아왔으며 상처받은 사람들끼리 만나서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도 이것을 치유 받지 못하고 덮어놓고 감추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러울 때 예수님께 나와서 치유 받고 평안과 위로를 얻어야 합니다.
여러분 마음의 아픔, 감정의 상함은 하나의 신호입니다. 신체의 통증과도 같은 것입니다. 아픈 신호가 없으면 우리 몸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알 수 없습니다. 누가 내 팔을 비틀면 아픕니다. “아프다”는 신호는 그만 비틀라는 신호입니다. 만약 통증을 못 느낀다면 계속 비틀어서 팔을 부러뜨리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속의 아픔과 고통도 하나의 신호입니다. 마음에 미움, 시기, 질투, 욕심, 불안, 외로움, 고통이 있다면 내 마음에 문제가 생겼고 치료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때는 영혼의 의사이신 예수님께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며, 슬픈 자를 위로하시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한다고 하셨습니다.
2. 상한 마음은 어디서 오는가?
첫째, 죄로부터 옵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와서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 여기서 상했다는 말은 깨졌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 살게 하셨을 때는 상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하나님과 사람과의 바른 관계는 깨어졌고 인간은 하나님에게서 버림을 받습니다. 이때부터 사람의 마음에는 상처가 생기고 온전했던 마음이 깨어졌습니다. 인간은 이 상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여러 가지 죄를 짓습니다. 타락 이전에는 아담이 하와를 향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범죄 이후에는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원망하며 불평합니다. ‘저 여자 때문에 내 신세가 이렇게 되었다. 내가 남편을 잘못 만나서 이렇게 되었다.’ 말합니다. 이렇게 서로에게 큰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살아갑니다.
둘째, 인간관계의 잘못에서 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인정받고 보호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받지 못하고 버림을 받을 때 큰 상처를 받습니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소년 때는 친구로부터, 청년 때는 이성으로부터, 어른 때는 사회로부터, 버림을 당한 때가 가장 상처를 받는 순간입니다. 개나 고양이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멀리 있는 저 아프리카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는 일은 없습니다.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에게는 상처받지 않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받습니다. 따라서 가족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 가족 중에도 부부간에 가장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 교인들 간에 상처받습니다. 직장 동료들에게서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 친구들에게서 상처를 받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서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
3. 상한 마음을 고치지 않으면?
첫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잃어버립니다. 우리가 교회를 오래 다녀도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고 늘 결핍 속에서 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의 그릇이 깨어져서 은혜가 새 나가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의 상처 즉 깨진 그릇이 고쳐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아무리 부어주어도 늘 굶주리게 됩니다. 마태복음 13장에 씨 뿌리는 비유가 있습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고, 밭은 사람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씨는 완전하고 다 좋은 씨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 상태에 따라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기도 하고, 싹이 나지 못하기도 하고, 잘 자라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마음 상태를 좋게 고쳐야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 상태는 보지 않고 씨만 얻으러 다닙니다. 아무리 좋은 씨를 받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둘째, 대인관계에 영향을 끼칩니다. 몸에 상처 난 곳은 조금만 건드려도 아픕니다.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은 상처를 잘 받습니다. 사람들이 저쪽에 모여서 이야기하면 ‘내 얘기 하나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목사님이 평범하게 설교해도 ‘나 들으라고 하나보다’ 이렇게 오해합니다. 상처가 있는 사람은 남에게 상처를 많이 줍니다. 말도 상처 주는 말만 골라서 합니다. 어떤 경우는 사람을 만나서 또 상처를 받을까 두려워서 안 만나려고 합니다. 상처받기 싫어서 결혼 안 하겠다는 사람도 있고, 상처받기 싫어서 교회 안 나가겠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곳으로 가서 혼자 살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서 남들을 과도하게 비판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자신을 파괴합니다. 마음이 상하면 두려움, 죄책감, 의심, 분노, 미움 등의 감정이 생깁니다. 이것들을 통해 생기는 것이 낮은 자존감입니다. 우리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그래서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무척 애를 씁니다. 반면에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안 씁니다. 특히 마음에 상처 있는 사람일수록 자신을 낮게 평가합니다. 그래서 열등감이 심합니다. 민수기 13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12명의 정탐꾼을 뽑아서 가나안땅을 정탐하게 합니다. 정탐꾼들이 돌아와서 말했습니다.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그런데 그 땅에 거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 메뚜기 같았고 그들의 보기에도 그랬을 것입니다” 열 명의 정탐꾼은 자기들을 메뚜기처럼 평가했습니다. 이것은 가나안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고 자기 스스로 그렇게 평가한 것입니다. 열 명의 정탐꾼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울기 시작했고, 모든 백성도 두려워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을 메뚜기로, 그렇게 형편없는 존재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키가 큰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들은 우리 밥입니다. 올라갑시다.”라고 했습니다. 열등의식은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거룩하고 존귀한 자들입니다. 하늘나라의 보배들입니다. 열등감은 절대로 겸손이 아닙니다. 열등감은 믿음이 아닙니다.
4. 상한 마음을 치유하는 법은?
첫째. 드러냄을 통한 치유.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다음 죄책감과 불안과 두려움을 감추려고 나무 뒤에 숨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엮어 부끄러운 부분을 가렸습니다. 그런데 감추려고 할수록 무거운 짐이 되고 큰 고통이 됩니다. 우리가 이것은 고침 받기 위해서는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님 앞에 가지고 나와서 자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이것이 치료의 시작입니다. 호세아 7:1에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나도다.” 잠언 28:13에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상처를 인정하고 드러내야 합니다. 그래야 치료가 이루어집니다. 죄도 자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용서를 받습니다. 죄는 감출수록 세력이 강해집니다. 숨길수록 힘이 세어집니다. 곰팡이균 중에 햇빛만 비취어도 죽는 균들이 많습니다. 죄가 그러합니다.
둘째. 십자가를 통한 치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으며 또한 죄로 인하여 상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하신 사역 중에 중요한 것 한 가지가 병든 자를 고치는 일이었습니다. 주님은 배반과 멸시를 당하셨습니다. 억울한 일을 많이 겪으셨습니다.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고 뺨을 맞으셨습니다. 말로 다 할 수없는 멸시와 수치를 친히 당하셨습니다. 불의한 재판으로 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을 받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왜 이런 일들을 당하셨습니까? 우리를 고치고 치유하기 위함입니다. 마음에 혹 상처가 있다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이 십자가를 경험하면 마음의 상처는 사라질 것입니다. 십자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죄를 사하는 능력, 구원하는 능력, 치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십자가의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용서를 통한 치유. 마태복음 6:14-15에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내가 용서받습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으면 마음속에 죄책감, 두려움, 불안, 고통,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습니다. 치유는 용서와 동시에 일어납니다. 상대방을 용서하면 내가 자유로워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와 복을 주셨는데 우리 스스로 이것을 막고 있습니다. 이것을 여는 열쇠가 용서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내 속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고 새 생명을 얻었으면서도 왜 믿음이 잘 성장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기쁨과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지 못할까요?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 아직도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 시간 용서하십시오. 상한 마음이 치유되는 은혜가 임하고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대전 복용교회 박석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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