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사도이면서 선교사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의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서 밀레도라는 섬을 지나가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바울은 지난 3년간 목회했던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불러서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씀을 전하면서 자기가 지난날 어떻게 하나님을 섬겼고 어떠한 자세로 하나님의 일을 했는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사역자들과 성도들이 본받아야 할 중요한 내용입니다.
1. 모든 겸손.
19절에 “모든 겸손과” 그냥 겸손이 아니라 ‘모든 겸손’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겸손했으면 겸손했지 ‘모든 겸손’은 무슨 의미입니까? 모든 시간, 모든 장소, 모든 사람, 모든 환경에서 겸손했다는 것입니다. 보통은 겸손했다가 겸손하지 못했다가, 겸손했다고 교만했다가 이렇게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항상 겸손했습니다. 누구에게나 겸손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시종일관 겸손의 자세로 하나님을 섬겼다는 말입니다. 온전한 겸손을 의미합니다. 일이 잘될 때도 겸손했고 일이 안 될 때도 겸손했고, 성공할 때도 겸손했고 실패할 때도 겸손했고, 평탄할 때도 겸손하고 험난할 때도 겸손했습니다. 그는 항상 겸손했습니다. 우리도 믿음 생활을 잘하려면 무엇보다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겸손이 왜 중요합니까? 믿음은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믿음이란 영접하는 것 즉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내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불신앙은 무엇입니까?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이 없으면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옳지 않아서 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겸손하지 않기 때문에 안 받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은혜와 많이 부어주셔도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겸손한 마음이 신앙생활의 기본입니다.
그뿐 아니라 주님의 일은 전부가 섬기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도 섬겨야 합니다. 그렇게 섬기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 섬길 수 없습니다. 주님의 일은 모든 욕심을 버리고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섬기고, 기도로 섬기고, 물질로 섬기고, 몸으로 섬겨야 합니다. 따라서 겸손한 마음이 없이는 주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이런 일을 왜 해야 하나, 내가 왜 사람들을 찾아가고, 내가 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고, 왜 도와주어야 하고, 왜 욕을 먹어야 하고, 왜 비난을 받아야 하고, 왜 희생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면 하나님의 일 못 합니다. 주의 일은 낮아져서 섬겨야 합니다. 이렇게 하려면 겸손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빌립보서 2장에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지만 동등 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스스로 자신을 비우고 낮아지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죽기까지 복종하여 십자가를 지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주의 일을 하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항상 겸손한 자에게 은혜 주시고 겸손한 사람을 쓰셨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절대로 쓰신 적이 없습니다. 쓰다가도 사울 왕처럼 교만해지면 버렸습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생각대로 일하고 자기 맘대로 살아갑니다. 따라서 교만한 사람은 주님께서 쓰시기가 거북합니다.
2. 눈물.
19절에 “눈물이며”라고 했습니다. 31절에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바울은 눈물로 하나님을 섬겼고 눈물로 주의 일을 했습니다. 사람이 언제 눈물을 흘립니까? 감동받을 때입니다. 마음이 뜨거워질 때입니다. 따라서 바울이 눈물로 섬겼다는 것은 뜨거운 가슴으로 열정을 가지고 주님을 섬겼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해서 눈물 흘리고, 자신의 부족함과 지은 죄를 생각하며 눈물 흘리고, 복음을 전했는데 그 사람이 믿지 않으면 안타까워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사역 자세였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가 공관복음에 다 나와 있는데 누가복음 8장에만 나오는 독특한 말씀이 있습니다. 바위 위에 떨어진 씨가 말라 죽었는데 “습기가 없어서” 말라 죽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8:6에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식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흙도 있어야 하고, 좋은 거름이나 비료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물입니다. 마찬가지로 영혼이 살아나고 영혼이 자라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눈물입니다. 눈물이 없이는 참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눈물이 있어야 회개가 됩니다. 눈물이 있어야 변화가 됩니다. 눈물이 있어야 전도가 됩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 주님께서도 여러 번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나사로의 무덤 옆에서 믿음 없는 사람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셨고, 망해가는 예루살렘을 보면서 우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는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왜 우셨습니까? 우리 때문에 우셨고 우리를 사랑해서 우셨습니다. 그 주님께서 예루살렘 여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서 울라” 나 자신을 위하여 울어야 합니다. 자녀들을 위하여 울어야 합니다. 교회를 위해서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울어야 합니다. 눈물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눈물이 사람을 만듭니다. 울면서 기도한 것이 언제 적 이야기입니까? 말씀 읽다가 울어본 적 있습니까? 우리 눈물이 마르지는 않았는지 점검합시다.
3. 참음.
19절에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대인들이 바울의 전도를 방해하려고 아주 간교한 방법으로 계책을 세워서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대적하고 시험했습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이 따라다니면서 죽이려고 하였고 별별 흉악한 계획을 세우고 방해하고 대적했습니다. 그럴 때 바울은 참았습니다. 그들과 싸우지 않고 참으며 주님의 일에만 힘썼습니다. 신앙생활에 승리하는 비결은 참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시험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도 무슨 일을 만나든지 참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원수들이 칼과 몽치를 들고 예수님을 잡으려고 왔습니다. 베드로가 졸다가 일어나서 예수님을 보호한다고 칼을 빼어 휘둘렀습니다. 그러나 칼이 빗나가서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가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고의 귀를 만져 고쳐주시면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51에 “이것까지 참으라” 사람들은 종종 다 참아도 이것만은 참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까지 참아야 합니다. 참는 것이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참지 못해서 실패하고 후회합니다.
4. 거리낌 없이 전하고 가르침
20-21절에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바울은 교인들의 신앙생활에 유익하다고 생각이 되면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 거리낌이 없이 말씀을 전하고 가르쳤습니다. 26-27절에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다는 것은 책임을 다했다는 뜻입니다. 전도의 책임을 다하고, 가르쳐야 할 책임을 다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것이 없었습니다. 남의 눈치나 보고 체면을 차리고 부끄러워하고 게으름 피우고 마지못해서 억지로 했다면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다고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거리끼는 마음 때문에 교회도 못 나오고, 예수님도 못 믿고, 전도도 못 하고, 기도도 못하고, 봉사도 못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5. 사명감.
24절에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달려갈 길은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자기의 달려갈 길을 잘 달렸습니다. 빌립보 3:12에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갔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붙잡아 끌고 갈 때 나도 그것을 잡으려고 따라가야 합니다.
로마서 1:1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바울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뭘 하라고 부르셨는지 알았습니다. 이 세상에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왜 나를 세상에 보냈는지, 뭘 하라고 부르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일군들은 주님께 부름을 받았다는 확신, 분명한 사명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자들은 절대로 낙심하는 법이 없습니다. 일시적으로 넘어지기는 해도, 반드시 다시 일어나 주님을 따라갑니다. 바울은 사명을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충성했습니다.
6. 주와 및 은혜의 말씀에 부탁함
28절에 보면 바울은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삼가라고 권면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삼가야 합니다. 우선은 자기를 위해서 삼가야 합니다. 남을 돌보고 교회 일 한다고 자기를 돌보지 않으면 실패합니다. 자기 영혼을 관리하고 자기 관리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온 양 떼를 위해서 삼가야 합니다. 하고 싶은 것도 안 해야 하고, 먹고 싶은 것도 안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말도 조심하고, 행동도 조심하고, 모든 일을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29-30절에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바울은 자기가 떠난 후에 에베소 교회 안에 사나운 이리들 즉 이단자들이나 거짓 선생들이 들어와서 성도들을 아끼지 않고 해칠까 봐 걱정했습니다. 또 에베소 교인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까 봐 걱정했습니다. 바울이 있을 때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있다가 바울이 떠나면 어그러진 말을 하면서 자기를 따르게 하려는 자들이 일어날 것을 염려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들을 주와 및 은혜의 말씀에 부탁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31-32절). 바울이 전해준 그 말씀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말씀이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교인들을 붙들어 줄 것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사는 성도는 그 말씀이 붙잡아 주고 요동하지 않게 든든하게 세워줍니다. 바울은 참으로 아름답고 훌륭한 사역 자입니다. 우리가 바울의 아름다운 사역 자세를 본받아 믿는 일에 승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대전 복용교회 박석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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