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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주차. <교회설립 6주년 기념설교> 우리의 사명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4. 4. 10.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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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주차. <교회설립 6주년 기념설교> 우리의 사명

 

 

 

본문: 28:19-20

 

 

 

1. 빛의 자녀

 

 

 

올해로 아리엘교회가 설립된 지 6년이 됩니다. 참으로 은혜롭게도 지난주에 우리는 벌써 하나님으로부터 큰 축하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스코틀랜드 프리처치교회의 이안 캠벨 목사님을 모시고 트리니티와 한마음, 그리고 아리엘교회가 연합하여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렸습니다. 우리는 캠벨 목사님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빛을 받아 어둠으로부터 해방되고 빛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감사함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둠에서 해방된 빛의 자녀는 많은 것들을 얻게 됩니다. 이 사실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둠 안에 살 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빛이 비추이자 환하게 보이듯이 주님의 빛으로 거듭나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고 몰랐던 일들이 알게 되어지고 깨달아지고 자신의 존재가 누구인지 의식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나를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이시고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구속주이시며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분임을 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빛이 주는 효력입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빛이 비추어지자 얼었던 마음의 얼음들이 봄 햇살에 눈처럼 녹아져 어느새 강퍅했던 마음이 부드러워집니다. 이기적이고 자기애로 똘똘 뭉쳤던 자가 드디어 눈을 돌려 다른 사람의 형편을 살피게 되고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가장 위대한 일은 빛으로 인하여 자신의 죄가 얼마나 추하고 더러운 것인가를 깨닫게 되는 일입니다. 이것이 빛의 자녀가 얻는 최고의 특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자는 바로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마음으로 회개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다윗은 고난을 겪으면서 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아비멜렉 왕 앞에서 미친 시늉까지 한 사람입니다. 그 와중에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그 때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34:18)

 

 

 

이제 주님은 우리를 빛의 자녀라고 인정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빛의 자녀처럼 행하고 살아야 합니다. 빛의 자녀는 무엇보다 빛의 열매를 맺고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차디찬 로마감옥에서 죽음을 앞두고 우리에게 빛의 열매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5:8-9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여러분은 착한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의로운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정직한 사람입니까? 이 질문을 다시 나에게 직접 물어 봅니다. 나는 착하고 의롭고 정직한 사람인가? 하고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이 질문에 어느 누구도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미 하나님은 나의 이런 형편에도 불구하고 나를 의롭다고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시어 나 같은 죄인의 모든 죄 값을 다 치루시고 나를 구속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목숨 값을 치루고 나를 사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을 획득한 하나님나라의 백성입니다. 이 사실을 보증하기 위해 하나님은 성령님으로 내 안에 오시어 나와 함께 동거하십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입니다(1:21). 이 말이 주는 유익이 무엇입니까? 나는 온전한 존재가 아닌데 그럼에도 나는 주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주님의 소유물을 불완전하고 더럽고 흠이 있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대우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아무리 여전히 거짓말하고 바르지 못하다 해도 사단은 그 점에 대해 나를 비난하고 고소하지 못합니다. 나는 여전히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이제 나는 사단에 속한 존재가 아닙니다. 사단은 나에 대해 더 이상 권리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물론 전에는(거듭나기 전에는, 주님이 나를 구속하기 전에는) 나에 대한 주권은 사단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2;3입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그러나 이제 나는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큰 사랑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어둠과 죽음을 주관하던 사단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나에 대한 모든 재판권은 오직 하나님만이 가지십니다. 나를 죽이시든 살리시든 복을 주시든 고통을 주시든 그것은 이제 하나님의 몫입니다. 나는 거짓말한 만큼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을 받을 것입니다.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1:10)이 도리이지만 비록 그러지 못한다 해도 사단이 나서서 저런 사람을 어찌 하나님의 자녀라 하느냐고 항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2. 진리의 삶

    

 

한편으로 빛의 자녀는 진리 안에 거하고 진리를 수호하기 위한 사명을 지니게 됩니다. 그래서 빛의 자녀는 진리가 아닌 것을 안타까워하고 진리를 대적하는 일에 분개합니다. 우리가 기독교를 생명처럼 지키고 보존하려고 몸부림치는 것도 바로 진리를 수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WCC같은 기독교파괴세력에 대해 단호하게 맞서 싸우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기독교는 하나님의 진리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유일한 종교입니다. 이에 세상은 왜 너희만 진리를 독점하느냐고 대항하지만 그들이 뭐라 하든 진리는 그냥 진리일 뿐입니다. 2+24라고 하니까 35가 왜 4냐고 우기면 답이 달라지는 것입니까? 이와 같이 진리는 유일한 답을 가집니다. 이것을 진리의 유일성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이 유일성은 반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인정한다는 뜻에서 보편성이고, 이런 사실은 영원불변하다고 하여 진리의 불변성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진리는 유일성과 보편성, 불변성이라는 대원리를 가져야 진리가 됩니다. 이 세 가지 원리를 가진 유일한 진리는 하나님에게만 존재합니다.

 

 

 

그런데 모든 종교가 각자의 진리를 말합니다. 분명히 앞서서 이야기한대로 답은 하나인데 모든 종교는 서로 다른 답을 말하면서 자기 답이 정답이라고 우깁니다. 논리상 유신론과 무신론이 동시에 정답으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둘 중 하나는 틀린 것입니다. 또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원인 없이 발생한 것은 없습니다. 원인은 최초의 시작입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세상의 많고 많은 종교들이 모두 정답을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직 정답은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우리의 구속주이신 하나님에게만 존재합니다.

 

 

 

이 사실을 영원토록 잊지 말라고 하나님은 당신의 진리를 기록해 두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이 성경을 수호해야 합니다. 우리는 한 마디로 성경의 진리를 세상에 전파하고 증거 하기 위해 부름 받은 사명자들입니다. 이것이 기독교회가 세워지고 우리가 부름을 먼저 받은 최우선적인 목적이고 사명입니다. 아리엘교회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이 사명을 더욱 마음에 새기기 위해 우리는 마 28:19-20의 말씀을 다시 살펴야 할 것입니다. 함께 봉독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3. 주님의 명령과 우리의 사명

 

 

 

여기서 우리는 3가지 중요한 주님의 명령을 듣습니다.

 

첫째, 우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야 합니다.

- 먼저 가라는 명령을 들어야 합니다. 이 명령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사도행전 1:8에 언급된 명령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기 위해 우리는 땅 끝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가라“(포류텐테스)는 명령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어떤 차별도 없습니다. 백인, 흑인 동양인 할 것 없이 모든 백성들이 주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입니다. 누가 택함을 받은 자인지 하는 문제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입니다. 우리 할 일은 주님 명령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모든 민족을 대상으로 주 예수를 믿으라고 전파해야 합니다.

- 그러나 여기서 살펴야 할 것은 제자라는 단어입니다. 영어로 disciple이고 헬라어로는 madetes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몇 가지 뜻을 가집니다. 이는 1) 먼저 학파 또는 종파의 가르침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22:16, 9:28). 따라서 세례 요한을 따랐던 사람들도 제자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동양으로 치면 이른바 도제교육을 받는 일단의 무리와 비슷한 사람들을 일컫습니다. 2)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어디까지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사용됩니다. (6:13, 1:35-50). 특별히 눅 6:17에서는 예수님의 설교를 듣기 위해 들판에 모였던 무리를 통틀어 이 단어로 호칭하고 있습니다. 3) 부활 이후에 이 단어는 초대교회의 일원을 칭하는 대표적인 단어로 정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마데테스라는 용어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용어와 거의 동일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 한편으로 제자라는 용어에는 학문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제자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잘 매우고 익히고 행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제자로서 하나님을 아는 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힘써 여호와를 알라”(6:3)고 당부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은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손에는 늘 성경이 쥐어져 눈으로 읽고 입으로 소리 내고 머리로 암송하고 기억하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우상숭배자들과 다른 존재라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 성경 읽을 필요 없다, 신학도 필요없다, 그저 기도하면 된다, 등등의 주장들은 기독교를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철저히 학문하는 종교입니다.

 

둘째,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야 합니다.

- 초대교회 이후 우리의 선조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사도들은 그리스도인과 이단을 구별하기 위해 사도신경을 만들어 우리의 신앙고백의 지침으로 삼았습니다. 이 사도신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물론 훗날 아리우스 일파의 공격이 극심해지자 교회는 325년 니케아회의를 열고 니케아신경을 자시 만들어 삼위일체 교리를 더욱 확고하게 했습니다. 그만큼 삼위일체 교리는 기독교의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지금도 여호와의 증인들 같은 이단들은 이 교리를 부정합니다. 분명한 것은 칼빈이 언급했듯이 이 교리는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해 불가능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삼위일체 신앙을 인정하지 않고 이해하지 못하고 고백하지 않는 사람은 성령의 사람이 아닙니다. 이는 마치 성경의 초자연적인 역사들을 신화로 취급하며 부정하는 자유주의자들의 가짜 신앙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부활 등의 사건을 실제 역사로 믿지 못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성령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이런 초자연적 하나님의 역사를 믿지 못합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믿음이 아니고선 믿기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비록 교회 안에 들어와 예배를 드리는 시늉을 하고 복음을 전한다면서 행세를 한다 해도 그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하는 일은 상령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그가 제 아무리 착한 일을 하고 봉사를 하고 다른 이를 섬기고 인류의 평화와 인권과 자유 평등 사상을 가지고 사람이 보기에 훌륭한 일을 한다고 해도 그는 성령님과 무관한 사람입니다.

-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삼위의 하나님으로 존재하셨습니다. 영원 전부터 죄인의 구속을 협약하시고 하나님나라의 일을 논의하셨습니다. 이 일을 우리는 문자적으로 정확히 논하지 못합니다. 다만 인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 뿐입니다. 가령 댐을 건설하기로 했다고 합시다. 성부 하나님은 계획, 즉 설계를 하시고 성자 하나님은 댐을 직접 지으시고, 성령 하나님은 댐을 관리하시는 것으로 이해하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다음으로 우리는 세례에 대해 알아보아야 합니다. 세례는 한 마디로 씻는 것입니다. 밖에서 집에 오면 먼저 씻습니다. 씻어야 밥을 먹고 침대에 누워 잠을 잡니다. 씻는 일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물로 씻고 하나는 성령으로 씻는 것입니다. 먼저 물로 씻는 것은 하나의 임시적인 방편입니다. 성령으로 씻기 전에 임시적으로 씻는 것을 상징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성령 씻는 것은 완전히, 영원히 씻었다는 것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다시 씻을 필요가 없이 이제는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즐거운 만찬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이것을 교회로 말하자면 물세례는 교회의 회원이 되었다는 것을 상징하고 성령세례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물론 물세례는 사람이 하는 일이지만 성령세례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또 이 둘은 순서상 뒤바뀌거나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회원이 되었다고 하여 그가 성령의 세례를 받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 양식으로 삼아 부지런히 먹고 영적으로 자라는 현상을 보입니다. 매일 자신을 개혁하여 나날이 성화되어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고 목사님을 중심으로 교회의 일에 즐거이 참여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믿음으로 극복하고 하나님의 섭리의 때를 기다리는 겸손과 인내의 영성으로 열매를 맺어 갑니다. 모든 일의 배후에 하나님이 개입하고 있음을 의식하고 살게 됩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음을 믿음으로 인정합니다. 결국 이런 과정을 통해 신자는 성령의 9가지 열매(5:22)를 맺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의 세례로 나타나는 일들입니다.

 

셋째,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이 구절에서 먼저 살펴야 할 것은 주님이 분부하셨다는 것입니다. 분부를 영어성경에는 ‘have commanded’로 해석했습니다. 시제로는 현재완료 계속용법입니다. 주님은 특별히 우리가 반드시 시행해야 할 일에 대해선 이렇게 명령체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선 현재완료 계속용법으로 명령을 하셨는데 이것은 지금도 이 명령이 유효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만약 과거완료형을 사용했으면 주님의 이 명령을 듣는 당시 제자들에게만 국한된 명령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명령은 지금도 나에게 적용됩니다. 우리는 각자 주님의 이 명령을 수행해야 할 의무를 가집니다.

- 다음으로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합니다. 흔히 우리는 복음을 전한다는 차원에서 복음사명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기서 우리에게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차원에서 한 차원 더 높은 이무를 부과하십니다. 이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에 복음을 들려주어야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택자들이 생겨납니다. 전파하는 자가 있어야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을 듣고 회심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하나님은 그렇게 조치를 해 두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여기서 우리가 멈추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차원에 머물 것이 아니라 복음을 들은 사람에게 복음을 이제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아직 믿음을 가졌든 가지지 못했던 간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복음 즉, 성경을 가르치는 일을 잘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가르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것은 본인이 먼저 공부해야 합니다. 본인이 성경을 모르고서 성경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를 가꾸로 하면 그리스도인은 먼저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다음으로, 인간은 자기가 확신하는 것만을 지킵니다. 자신이 소중하다고 판단하는 것을 아끼고 소중히 다루고 보호합니다. 가르침을 받고 배우고 깨달음을 얻어 확신을 가진 사람만이 복음을 지킵니다. 복음을 지키는 자가 주님을 위해 순교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가르침을 받은대로 이 귀한 복음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4. 결론

 

 

 

교회설립 6주년을 맞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매우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 우리가 정확히 알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기본에 충실한 사람이 가장 강건하고 확고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기본은 오늘 주님이 분부하신 이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항상 복음을 들고 다녀야 합니다. 만나는 모든 이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 복음을 들은 사람들을 잘 가르쳐 그들이 복음 위에 견고히 서서 복음을 지키며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바로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주의 제자라고 칭하십니다. 하나님나라는 주의 제자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내년에는 더 많은 주의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이 교회당이 차고 넘치는 역사가 있도록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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