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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주차. <사마리아여행> 서로 사랑하자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9. 7. 3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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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주차. <사마리아여행> 서로 사랑하자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13:10~17)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주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 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며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그들이 이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하니라”(14:1~6)



배경



오늘은 안식일에 일어난 두 개의 기사를 다룹니다. 하나는 18년 동안 귀신들려 꼬부라진 여인의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수종병 환자의 이야기입니다. 원래는 하나씩 살펴보아야 하지만 두 내용 다 안식일에 일어난 일을 다루므로 함께 다루기로 했습니다.



먼저 13장의 장면은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것에 대한 기록인데 회당에서의 사역으로는 거의 마지막에 해당합니다. 물론 우리는 이 회당이 어느 지역에 소재한 것인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헨드릭슨은 동선으로 보아서 주님은 지금 베레아의 어느 곳이며 그 시기는 마지막 몇 달 중에 있는 어느 안식일로 추정합니다. 시기적으로는 십자가 사건 일주일 전에 예루살렘에 마지막으로 입성하는데 누가복음의 기록상으로 보면 1928절에 이르러서야 예루살렘에 들어서는 것으로 보아서 지금의 시기는 아마 한두 달 이전쯤으로 보여집니다.



다음으로 14장의 장면은 13장의 것과 같이 안식일에 병 고치는 일이 가하냐 아니냐 하는 동일한 문제를 다루지만 장소가 회당이 아니라 종교지도자의 집이라는 점에서 다릅니다. 그렇다면 먼저 13장을 다루겠습니다.



2. 본문해설



13:10~17



13장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선 회당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당시 유대 사회의 종교적 규례와 관습으로는 중앙에 예루살렘 성전이 있고 모든 유대인들은 일년에 최소 3번 이상은 성전을 방문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안식일에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 지역에 마련된 회당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기서 잠시 회당(쉬나고게)에 대해 알아보고 이야기를 진행하겠습니다.

~ 회당의 시작은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살았을 때 고국의 예루살렘 성전 대신에 임시로 제사를 드리던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다 주후 70년 로마장군 티투스가 이끌고 온 4개군단에 의해 왕궁 망대를 제외한 모든 성전시설이 파괴된 후부터는 실질적인 유대교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 이후 회당은 기존의 제사장과 레위인들에 의해 드려지던 제사의 형식에서 벗어나 최고 지식인들인 서기관들에 의해 주도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회당의 기능은 이제 율법을 가르치는 학교가 되었습니다. 특히 안식일에는 율법의 명령 부분을 가르치는 일이 주된 일이었고, 평일에는 율법을 연구하는 곳으로 역할을 했습니다.

~ 이러한 회당의 관리는 회당장이 도맡았습니다. 그는 회당업무를 감독하고 예배 때에 사회를 맡고(13:14), 선지서를 읽고(4:16-17), 기도를 하고, 설교를 할 사람을 택하는 일(13:15)을 도맡았습니다. 무엇보다 회당장은 그 지역사회의 유력인사였고 대표자였습니다. 신약성경의 야이로(5:22, 8:41)나 그리스보(18:8), 소스데네(17) 등이 대표적인 회당장들입니다.

~ 점점 회당은 유대 사회에서 공동체의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율법을 위반한 유대인을 재판하는 기능으로 발전하여 형벌을 결정하기도 하였습니다.(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순회재판소 같은 기능입니다).

~ 성경에 등장하는 유명한 회당으로는 가버나움(1:21, 7:5, 6:59), 나사렛(13:53, 6:2, 4:16), 그리고 바울이 선교했던 여러 지역의 회당들, 즉 비시디아 안디옥회당(13;14), 이고니온회당(14:1), 데살로니가회당(17:1), 베뢰아회당(17:10), 아덴회당(17:17), 고린도회당(18:1-4, 19:8) 등이 유명했습니다.

~ 회당이 없는 곳에서는 어떻게 유대인들이 모임을 가졌을까요? 성경에는 기도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 이르니 기도모임을 가지고자 하였으나 회당이 없자 루디아라는 자주장사하는 여인이 자신의 집을 기도처로 제공하였습니다(16:11-15).

~ 회당이 오로지 주님을 위한 장소로만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소아시아의 두 회당을 일러 계시록은 사단의 회(회당)’라 부릅니다. 겉만 회당이지 이곳은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을 방해하는 사단의 기지였습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2: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3:9)



아무튼 회당은 지역사회의 구심점으로서 유대인들은 안식일마다 이곳에 함께 모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기타, 지역의 현안들을 의논하고, 결의하고, 재판하며 자기 마을을 지키고 돌보는 기능을 다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 어느 안식일에 베레아 어느 회당에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1) 10

~ , 안식일에 예수님과 일행들이 회당에 나타났습니다. 회당장을 비롯한 사람들은 금방 예수님을 알아보고 설교를 예수님께 부탁드린 모양입니다. 10절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기꺼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2) 11

~ 그런데 회중 가운데 참으로 보기에 불쌍한 한 여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11절을 보니, 그녀의 상태는 참으로 비참한 지경이었습니다. 귀신은 그녀를 18년 동안 장악하고 그녀를 꼬부라진 상태로 바로 펴지도 못한 상태로 만들고 심하게 앓게 했습니다.

~ 랜들 쇼트(Randle Shorts)라는 학자는 오늘날로 치면 기형성 척추염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이는 척추뼈가 굳은 덩어리로 뭉쳐졌으며 이중으로 구부러져 도저히 곧바로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옛날 할머니들은 나이를 먹으면 대개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저희 할머니도 60을 넘기시면서부터 허리가 휘어져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 성경주석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왜 18년 인가를 생각합니다. 단순하게 문자적으로 해석해도 무방하지만 앞의 4절에서 실로암 망대 붕괴로 인해 죽은 열여덟 명의 사망자를 또올리면 18이라는 숫자는 죽음 혹은 불행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3) 11-12

~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은 지금 말씀을 강론 중이십니다. 그런데 말씀 중에 예수님의 눈에 이 여인이 목격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여자를 앞으로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말씀을 중단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사역의 우선순위를 볼 때 무엇보다 예수님은 병자나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시는 일에 최우선적인 방점을 두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교훈을 시사합니다. 오늘날 번드르하게 설교의 기술만 익히어 현란한 언변과 감성의 자극으로 회중을 흥분시키고 그런 기분을 조장하는 감성팔이 설교자들이 즐비합니다. 미국의 웬만한 복음주의 계열의 교회들의 설교자들은 마치 자신이 무대 위의 스타인 듯 이리저리 누비고 다니며 청중들의 반응을 유도하고 스스로 고무되어 한편의 드라마, 혹은 연출된 연극무대를 보는 듯한 풍경을 자아냅니다. 도무지 예배라 할 수 없는 쇼비즈니스의 한 장면을 감상토록 하고 있습니다.

~ 만약 예수님이 이런 설교가였다면 설교를 중단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 껏 분위기에 고조되어 한 여인의 비참한 상태에는 안중에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주님은 사랑이십니다. 진자 사랑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 피하거나 외면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짜 사랑은 돌보아야 할 사람을 목격하고 회피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짜 사랑은 나의 모든 능력과 재능을 다해 불쌍한 이들을 돕는 것입니다. 진짜 주님의 사랑을 깨달은 하나님의 사람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돈을 만지작거리며 줄까 말까 하고 망설이지 않습니다.

~ 주님은 여인이 앞으로 나오자마자 즉시 여자여 네 병이 나았다고 선포하시고 이어 안수하시니 거짓말처럼 여자의 몸이 곧바로 펴졌습니다.

~ 이에 이 여인을 보세요. 그녀는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회당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즉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것은 병 고침을 받은 것은 사탄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임을 공개적으로 증언한 것입니다. 한편으로 이 장면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주님은 이 여인의 믿음을 미리 보신 것입니다. 비록 사람들이 보기엔 등이 꼬부라지고 귀신에 사로잡힌 불쌍한 여인에 불과해 보였지만 주님만은 이 여인이 가진 굳센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나님께 영광을 올린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아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4) 14

~ 보통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감격하여 눈물 바다를 이루고 기쁜 탄성이 터지고 모든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님을 경배해야 할 것입니다. 축구 경기 하나 이겨도 전국민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거리를 활보하는데 18년간 병마에 시달린 한 여인이 눈 앞에서 고침을 받은 현장을 목격하면서 아무런 감동이 없다면 그건 죽은 영혼들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 이어지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옮겨 간 인물은 바로 주님에게 말씀을 부탁한 회당장이었습니다. 그는 이 마을의 최고 어른이자 감독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고 싶어도 회당장의 반응을 먼저 지켜보아야 합니다. 회당장이 할렐루야 했으면 오늘 이 장면은 하나의 축제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악한 회당장을 보세요. 하나님의 이 놀라운 치유의 현장을 목격하고서 그의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 것은 이 일이 안식일 규례을 위반한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노여움을 띠고서 한 마디로 병고치는 일은 평일에는 가능한 것이나 안식일에는 불가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여기서 자신의 율법 지식을 드러냅니다. 율법에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언뜻 듣기엔 맞는 이야기입니다. “일할 날이 엿새가 있다는 말은 십계명의 말씀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20:8-10, 5:13)



~ 그러나 회당장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였습니다. 이와 관련된 다른 구절을 참고하는 것을 무시했습니다. 몇 구절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라”(2:3)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 입의 말씀이니라“(58:13-14)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으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6:8)



~ 우리 주변에는 회당장처럼 격식을 중시하고 형식주의로 모든 일을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골치 아픈 사람입니다. 이런 부류는 대개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옳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외골수 같은 신념으로 다른 모든 것을 판단하는 지렛대로 삼아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합니다. , 이런 사악한 사람에 대해 주님이 어떻게 판정하십니까?



5) 15-16

~ 주님은 회당장을 향해 외식하는 자들아“(Υποκριται, You hypocrites!)하고 즉시 소리치십니다. 영어 성경은 느낌표를 추가하고 있어 더 강력한 어조를 강조합니다. 또 단수가 아니라 복수인 점을 미루어 회당장의 말에 동조하는 무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그런 다음 주님은 회당장의 주장이 얼마나 모순된 것인가를 지적하십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안식일에 동물들에게 짐을 지우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동물들을 마굿간에서 끌어내어 물을 먹여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동물들에게 필요한 것을 하는 일은 허용되고 사람에게 필요한 일은 허용되면 안 된다는 주장은 전혀 합당한 주장이 아닙니다.

~ 특히 주님은 16절에서 이 여인을 아브라함의 딸이라 칭합니다. 여인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가족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이 딸이 소나 나귀보다 못한 존재라는 것입니까? 이 여인은 지난 18년 동안 귀신에 매여 시름시름 앓고 있었던 불쌍한 우리 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를 고치는 날이 안식일이라 해서 그녀를 계속 사탄의 포로로 놔두는 것이 과연 이치에 맞는 것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이런 주장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안식일이야말로 아무런 일도 하지 말라는 문자적인 해석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온 백성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탄의 권세에 맞서 싸우기 위해 온 힘을 다 쏟아야 하는 날입니다.

~ 또 하나 본문에 숨겨진 하나의 일을 말한다면 회당장과 마을 사람들은 분명히 귀신에 붙잡힌 그녀를 매일 목격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과연 그들은 평소에 그녀의 해방을 위해 그녀의 치유를 위해 얼마나 간구하고 합심 기도하고 그녀를 위로하였을까요? 불쌍한 사람을 돕지는 못할망정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며 시시비비를 가리는 사람이야 말로 악인 중에 악인일 것입니다.



6) 17

~ 이제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주장은 좌중을 압도하였습니다. 이렇게 진리의 힘을 이길 논리는 없습니다. 주님의 책망에 사람들은 일순간 굴복하였습니다. 회당장을 비롯한 모든 반대자들의 입들이 잠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숨기고 살았던 자신들의 양심에 불이 켜지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자신들의 부끄러움이 밀려들었습니다. 고개를 숙였습니다. 한편으로 추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제야 기뻐했습니다. 이것이 양심있는 사람들의 본 모습이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하고 찬양의 소리가 터졌을 것입니다.



14:1~6



13장과 14장의 차이점은 앞서 말한 바대로 장소가 다르다는 것 외 대화의 대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13장에서는 회당에 모인 지역 주민들이 그 대상이라면 14장은 바리새인 지도자와 그의 집을 찾은 율법사들(서기관들)이 그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식사 자리는 지역유지이이자 유력 인사들과의 모임이므로 한층 그 격이 높다 할 것입니다.



바리새인 지도자가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입니다. 왜냐하면 1절에 보니 초대한 사람을 환대하기는커녕 그가 무슨 잘못을 하는지 엿보고 있었기”(watching carefully) 때문입니다. 헬라어로는 파라테루메노이인데 단어 하나씩 뜯어보면 먼저 파라옆에서입니다. 이 사람들은 주님을 식사 자리에 초대해 놓고선 그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혹은 어떤 일에 그가 어떻게 대처할지 오직 그것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바로 옆에서 지켜본다는 것은 섬뜩한 느낌을 줍니다. 다음으로 테루메노(watch)‘는 손금보듯이 낱낱이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와 기독교회에 대한 악인들의 기본적인 인식이요 본질입니다. 사람들은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쓰러지고 넘어지는 것을 기뻐합니다. 교회의 넘어짐에 대해 박수를 칩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의 정체가 바로 마귀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식사 자리는 모르긴 몰라도 매우 근엄하고 정중한 자리였을 것입니다. 대개 잘난 체하고 있는 체 하고 걷름 피우는 양반들의 행세가 그렇습니다. 매우 고상하고 우아하고 멋과 풍류를 즐깁니다. 우리나라 전역을 돌아보세요. 풍치 좋고 수세 좋고 오늘 말로 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양반들과 한량들의 쉼터이자 놀이터인 정자들이 서 있습니다. 서민들은 그 시간에 땀 흘리며 농사 짓고 온갖 잡일을 도맡으며 죽어라 사는데 그들은 그 시간에 풍류를 즐긴답시고 시를 짓고 술을 부어 권커니 잣커니 한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자기들 자리에 다른 부류(그들은 이것을 잡종이라 부릅니다)가 섞이는 것입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부자 주인이 운전기사로 채용된 사람에게서 좋지 않는 냄새가 난다고 푸념하는 장면은 이런 부자들의 고상한 갑질을 콕 찝은 것입니다.



오늘도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갑자기 근엄한 자리에 한 사람의 환자가 찾아든 것입니다. 그는 수종병(dropsy) 환자였습니다. 옛날에는 이 병을 고창병이라 불렀습니다. 이 병은 신체의 세포조직이나 각종강막에 혈장액이 비정상적으로 축적된 상태를 가리키는데 대개 심장에 결함이 있거나 신장이 병들었을 경우에 이런 증상이 나타납니다. 그리하여 얼굴이 부어오르고 팔과 다리도 크게 부풀어 살갗이 물러져 손만 대도 고통을 느끼는 질병입니다. 요즘에는 치료약이 개발되어 문제가 안된지만 예수님 당시에 이런 질병은 불치병이었습니다. 특히 씻지 못하므로 이 환자에게선 심한 냄새가 동반됩니다. 그러니 식사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얼마아 싫어했는가 상상이 갑니다.



예수님은 일단 좌중을 먼저 돌아보십니다. 그런 다음 이번엔 이들이 어떤 시비를 걸어올지 미리 아시고 선수를 치십니다. 그들이 질문할 것을 먼저 물어보신 것입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는 것이 합당한가 아닌가?” 한 마디로 이들은 급소를 찔린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이 잠잠할 수 밖에 없는 일이지요.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13장과 마찬가지로 환자를 고치시고 안식일의 의미를 재확인시켜 주셨습니다.



3. 결어



주님의 관심은 형식적이거나 비본질적인 것에 있지 않습니다. 주님은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추방시키시고 병든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고치시고 잘못 생각하는 자의 생각을 바로 잡아 주시고 악인들을 고발하시고 무섭게 질책하시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자기 백성에게 배푸시는 분이십니다. 무엇보다 주님은 자기 백성의 처지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돌보시고 소원을 들어 주시고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우리 또한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두 사랑을 해야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 사랑입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예배하고 봉사하고 구제하고 섬김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음 사랑은 이웃사랑입니다. 무엇보다 주 안에서 형제와 자매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같은 주의 자녀들이며 형제자매들이며 성도들이며 천국 백성이요 하나님 나라의 시민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기쁜 일일 있을 때 함께 기뻐하고 슬픈 일이 있을 때 함께 슬퍼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도란 서로 남이 아닙니다. 진짜 영원히 함께 살아갈 천국 가족입니다. 육신의 가족은 잠시 이 땅에 있을 때 유효한 가족이지만 천국 가족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끼리 서로 사랑하는 것은 정말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저를 감동시키는 이 구절을 소개하면서 오늘의 설교를 마칠까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7-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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